100조 달러로 버스도 못 탔던 나라
2026-09-07 · 6분 읽기
2008년 11월 중순, 짐바브웨에서 미국 1달러를 바꾸려면 짐바브웨 달러 26억 2,198만 4,228달러가 필요했습니다. 소수점 아래까지 적힌 이 숫자는 어느 블로그의 과장이 아니라 당시 기록으로 남은 환율입니다. 상점 계산대의 가격표는 하루에 두 번, 세 번 바뀌어 붙었고, 사람들은 월급을 받으면 은행 문을 나서자마자 무엇이든 사들였습니다. 돈을 들고 있는 시간 자체가 손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2009년 1월 16일, 짐바브웨 중앙은행은 100조 짐바브웨 달러 지폐를 발행했습니다. 100,000,000,000,000이라고 적힌 지폐였습니다. 영국 BBC는 이 지폐가 유통 첫날 미국 달러로 약 30달러 가치였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몇 주 지나지 않아, 이 지폐 한 장으로는 시내버스 요금도 낼 수 없게 됐습니다.
짐바브웨 이야기가 경제사에서 반복해 인용되는 이유는 단순히 숫자가 커서가 아닙니다. 한 나라의 돈이 종잇조각이 되는 과정이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진 사고가 아니라, 10년 넘게 쌓인 선택의 결과였다는 점이 기록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 출발점은 2008년이 아니라, 11년 앞선 어느 금요일 오후였습니다.
모든 것이 시작된 네 시간
짐바브웨 달러가 무너진 날짜를 하나만 고르라면, 현지에서는 2008년이 아니라 1997년 11월 14일을 지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날 짐바브웨 달러는 미국 달러에 대해 단 네 시간 만에 72퍼센트 가까이 가치를 잃었습니다. 짐바브웨 증권거래소도 같은 날 시가총액의 46퍼센트를 날렸습니다. 현지 언론은 지금도 이 하루를 '검은 금요일'이라고 부릅니다.
방아쇠를 당긴 것은 전쟁이나 외부 충격이 아니었습니다.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이 독립전쟁 참전용사 5만여 명에게 일시금을 지급하라고 재무부에 지시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규모는 42억 짐바브웨 달러, 당시 국내총생산의 약 3퍼센트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습니다. 예산에 없던 지출이었고, 그 돈을 어디서 가져올지에 대한 설명도 없었습니다.
시장은 그 빈칸을 스스로 채웠습니다. 세금으로 메울 수 없는 지출을 정부가 결정했다면, 결국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서 메울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중앙은행은 보유한 외화를 풀어 환율을 방어했지만 동원할 수 있었던 금액은 1,500만 달러 수준이었고, 며칠 만에 밀려났습니다. 통화가 무너지는 과정은 보통 이렇게, 정부가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것이라는 계산에서 조용히 시작됩니다.
농장이 사라지고 인쇄기가 돌기 시작했다
1990년대 말부터 짐바브웨는 급진적인 토지 재분배에 들어갔고, 2000년대 초에는 속도가 한층 빨라졌습니다. 담배와 곡물을 수출하던 대규모 상업 농장들이 짧은 기간에 몰수되고 쪼개졌습니다. 문제는 농업이 단순히 한 산업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농업은 짐바브웨가 외화를 벌어들이는 가장 큰 창구였고, 농장과 농지는 은행이 돈을 빌려줄 때 담보로 잡는 자산이기도 했습니다.
수출이 줄자 외화가 마르고, 담보 가치가 흔들리자 은행 대출이 얼어붙었습니다. 여기에 1998년부터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에 병력을 파견하면서 군사비 지출이 늘었습니다. 세금으로 걷히는 돈은 줄고 써야 할 돈은 늘어나는 상황이 수년간 이어졌습니다.
이때 정부가 선택한 방법이 이른바 '적자의 화폐화'입니다. 쉽게 말해, 정부가 모자란 돈을 세금이나 국채로 조달하지 않고 중앙은행이 새로 찍은 돈으로 메우는 방식입니다. 한두 번이면 응급처치로 끝나지만, 이것이 상시적인 재원 조달 수단이 되면 돌이키기 어렵습니다. 물가가 오르니 정부 지출도 늘어나고, 늘어난 지출을 또 찍어낸 돈으로 메우는 고리가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물가를 통계가 아닌 명령으로 잡으려 했습니다. 2007년 6월 26일, 산업부 장관은 짐바브웨 내 모든 상품과 서비스 가격을 절반으로 내리라고 지시했습니다. 따르지 않은 상인 1,300명 이상이 체포됐습니다. 결과는 예측 가능한 쪽이었습니다. 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팔 수 없게 된 제조업체들이 생산을 멈추면서, 식용유와 소금 같은 기초 생필품부터 진열대에서 사라졌습니다.
0을 지우는 나라
숫자가 손으로 셀 수 없을 만큼 커지자 중앙은행은 화폐단위를 잘라내기 시작했습니다. 2006년 8월에 0을 세 개 지웠고, 2008년 7월에는 100억 짐바브웨 달러를 1달러로 바꾸면서 0을 열 개 더 지웠습니다. 2009년 2월에는 한 번에 0을 열두 개 지웠습니다. 3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사라진 0이 스물다섯 개입니다.
그 사이 중앙은행은 정식 지폐가 아닌 '무기명 수표'를 돈처럼 돌렸습니다. 2003년 9월 26일 5,000달러권으로 처음 나온 이 종이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더 이상 돈이 아니게 되는 날짜가 미리 인쇄돼 있었던 것입니다. 정식 지폐를 찍는 절차보다 수표를 발행하고 취소하는 절차가 훨씬 빨랐기 때문에 택한 방식이었습니다. 마지막 무기명 수표는 2008년 5월 15일에 나온 5억 달러권이었고, 유효기간은 그때마다 계속 연장됐습니다. 5,000달러권 하나만 해도 유효기간을 바꿔 네 번 다시 인쇄됐습니다.
0을 지우는 일은 물가를 잡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10만 원짜리 물건의 가격표를 100원으로 고쳐 쓰는 일에 가깝습니다. 원인을 그대로 둔 채 표기만 바꾸면, 지워낸 0은 머지않아 다시 붙습니다. 실제로 짐바브웨에서는 매번 몇 달 안에 같은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더 현실적인 벽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짐바브웨 지폐에 쓰이는 특수 용지를 공급한 곳은 독일 뮌헨의 지폐 인쇄 전문 기업 기제케운트데브리엔트였습니다. 2008년 6월 말, 독일 외무장관이 이 회사 최고경영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고, 회사는 유럽연합의 제재 요구를 이유로 공급을 중단했습니다. 돈을 찍어내던 나라가 돈을 찍을 종이를 구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24.7시간마다 두 배
짐바브웨 정부가 마지막으로 발표한 공식 물가 상승률은 2008년 7월의 연 2억 3,100만 퍼센트였습니다. 그 뒤로는 통계 발표 자체가 멈췄습니다. 숫자를 집계하는 일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스티브 행키 교수는 남아 있는 가격 자료를 모아 정점을 추정했는데, 2008년 11월 14일 연 89.7 섹스틸리언 퍼센트, 즉 9 뒤에 0이 스물두 개 붙는 수치였습니다.
이 추정치를 사람이 체감할 수 있는 말로 바꾸면 이렇게 됩니다. 물가가 24.7시간마다 두 배가 됐습니다. 아침에 본 가격이 다음 날 아침 두 배가 되는 속도입니다. 월급을 월 단위로 받는다는 개념이 무의미해지고, 외상이나 할부 같은 거래는 아예 성립하지 않습니다.
당시 타임지는 짐바브웨에서 우유 한 파인트 값이 30억 짐바브웨 달러였다고 전했습니다. 미국 달러로는 30센트 남짓이었습니다. 구할 수만 있다면 말이지요. 같은 기사는 그 우유조차 매대에서 찾기 어려웠다고 적었습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실제 모습은 비싼 물건이 아니라, 아예 없는 물건입니다.
주식시장이 문을 닫은 석 달
물가가 이렇게 오르는 나라에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는 피난처는 주식입니다. 돈의 가치가 녹아내리는 동안 기업 지분은 실물 자산에 연결되어 있으니, 현금을 들고 있는 것보다는 낫다고 보는 것입니다. 2008년 짐바브웨 증권거래소의 주가지수는 천문학적으로 뛰어올랐습니다. 다만 그 상승은 기업이 돈을 더 벌어서가 아니라, 가격을 매기는 자의 단위가 무너져서 생긴 숫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피난처마저 문을 닫았습니다. 2008년 11월, 중앙은행이 부도 가능성이 있는 수표로 주식을 사들이는 거래를 단속하면서 거래소가 폐쇄됐습니다. 다시 열린 것은 석 달 뒤인 2009년 2월 19일이었고, 이때부터 거래 통화가 미국 달러로 바뀌었습니다.
석 달 동안 투자자들이 겪은 일은 수익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보유한 주식을 팔 방법 자체가 없었습니다. 당시 현지 애널리스트들은 거래 재개를 기다린 투자자 상당수가 주식을 사려는 쪽이 아니라 팔아서 생활비를 마련하려는 쪽이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거래가 다시 시작됐을 때는, 살 사람의 손에 달러 현금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자국 화폐의 장례식
2009년 1월, 짐바브웨 정부는 미국 달러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 등 외국 통화의 사용을 공식적으로 허용했습니다. 그리고 4월 12일 짐바브웨 달러의 효력을 정지시켰고, 그달 안에 화폐 발행 자체를 멈췄습니다. 자국 통화를 포기하고 남의 나라 돈을 쓰는 '달러화'는 주권 포기에 가까운 선택이지만, 이미 아무도 받지 않는 돈을 계속 찍는 것보다는 나은 길이었습니다.
공식적인 장례식은 6년 뒤에 치러졌습니다. 2015년 6월 15일부터 9월 30일까지, 중앙은행은 남아 있는 짐바브웨 달러 예금을 달러로 바꿔주는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통장에 175조 짐바브웨 달러 이하가 남아 있던 사람은 전부 묶어 미국 5달러를 받았습니다. 그보다 많은 금액에는 35조 짐바브웨 달러당 1달러라는 환율이 적용됐습니다. 중앙은행 총재는 이것이 '보상이 아니라 교환 절차'라고 설명했습니다.
장롱 속 현금에는 따로 기준이 적용됐습니다. 2008년에 발행된 지폐는 250조 짐바브웨 달러를 미국 1달러로, 액면을 열두 자리나 잘라낸 2009년 지폐는 250짐바브웨 달러를 1달러로 계산했습니다. 한 사람이 현금으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은 50달러까지였고, 그 이상은 계좌로 입금됐습니다. 수십 년간 모은 저축이 지폐 다발 그대로 몇 달러가 되는 경험을, 한 나라의 국민 전체가 같은 해에 했습니다.
이후 짐바브웨는 자국 화폐를 되살리려 여러 차례 시도했습니다. 2019년 6월에 새 짐바브웨 달러를 다시 도입했고, 2024년 4월 5일에는 외화와 금, 다이아몬드를 준비자산으로 삼은 ZiG라는 통화를 내놨습니다. 출발 당시 금 준비는 1.1톤, 1억 7,500만 달러 규모로 발표됐습니다. 그러나 ZiG는 같은 해 9월 27일 하루에 43퍼센트가 평가절하됐습니다. 미국 달러당 13.56에서 24.4로 바뀐 것입니다.
금을 쌓아두고, 이름을 바꾸고, 발행 한도를 약속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번 무너진 신뢰를 되찾는 일이 화폐를 새로 찍는 일보다 훨씬 어렵다는 사실만 반복해서 확인됐습니다. 2008년을 직접 겪은 사람들이 여전히 상당수 생활비를 달러로 주고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남는 것
경제학에서 하이퍼인플레이션의 기준선은 보통 '월간 물가 상승률 50퍼센트'로 잡습니다. 1956년 경제학자 필립 케이건이 제시한 기준인데, 한 달에 물가가 절반 넘게 오르는 상태가 시작되는 순간을 경계로 본 것입니다. 짐바브웨가 정점에서 보여준 수치는 이 기준선을 비교 대상으로 삼기조차 어렵게 만듭니다. 중요한 건 그 사이에 넘어선 문턱이 하나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1997년의 네 시간, 2007년의 가격 명령, 2008년의 통계 중단은 각각 돌아갈 수 있었던 지점이었습니다.
짐바브웨 사례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교훈은 '돈을 함부로 찍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투자자의 자리에서 보면 더 실질적인 대목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숫자가 오른다고 가치가 오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2008년 짐바브웨 증시의 지수 상승률은 어떤 기준으로도 세계 최고였지만,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의 양은 줄고 있었습니다. 수익률을 재는 단위 자체가 녹아내릴 수 있다는 사실은 평소에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다른 하나는 '팔 수 있다'는 전제가 늘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석 달간 문을 닫은 거래소 앞에서 투자 판단의 정확도는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자산을 고르는 일과, 필요할 때 그 자산을 돈으로 바꿀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후자는 평온한 시장에서는 거의 눈에 보이지 않다가, 가장 필요한 순간에 사라집니다.
짐바브웨의 지폐들은 지금 수집가의 책상 위에 놓여 있습니다. 100조 달러 지폐는 액면가보다 훨씬 비싼 값에 거래되는, 기념품이 됐습니다. 그 지폐가 기념품이 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그것이 더 이상 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종이에 적힌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를 보증하기로 약속한 쪽에 대한 믿음이 돈을 만든다는 사실을, 이보다 분명하게 보여주는 전시물은 드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