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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만에 세계 1위가 된 폭스바겐

2008년 10월 28일 화요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의 시세 화면에는 좀처럼 믿기 어려운 숫자가 떠 있었습니다. 폭스바겐 보통주 한 주의 가격이 1,005유로였습니다. 나흘 전 금요일 종가가 210유로 남짓이었으니, 주말을 끼고 영업일 이틀 만에 주가가 다섯 배 가까이 뛴 셈입니다. 그 순간 폭스바겐의 시가총액은 2,900억 유로대로 부풀었고, 서류상 세계에서 가장 비싼 회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세계 1위였던 정유 공룡 엑슨모빌도 그 아래로 밀려났습니다.

이상한 점은 그 이틀 사이 폭스바겐이 대단한 신차를 내놓은 것도, 놀라운 실적을 발표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세계 경제는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후의 가장 어두운 구간을 지나고 있었고, 자동차는 그해 가장 안 팔리는 물건 축에 들었습니다. 회사의 가치가 이틀 만에 다섯 배가 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 가격을 만든 것은 폭스바겐을 사고 싶었던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팔아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한 스포츠카 회사가 자기보다 훨씬 큰 회사를 삼키려다 거꾸로 먹힌 기록입니다. 동시에 파생상품이 시장의 눈을 어디까지 가릴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가장 극적인 숏스퀴즈를 이야기할 때 이 사건이 먼저 호명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스포츠카를 팔던 회사의 이상한 야심

포르쉐는 생산 대수로 보면 폭스바겐의 수십 분의 일에 불과한 회사였습니다. 한쪽은 고급 스포츠카를 소량 만들어 비싸게 팔았고, 다른 한쪽은 전 세계에 공장을 두고 대중차를 쏟아내는 거대 제조업체였습니다. 다만 두 회사는 창업자 가문으로 얽혀 있었습니다. 폭스바겐의 상징인 비틀을 설계한 사람이 페르디난트 포르쉐였고, 그 후손들이 포르쉐를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포르쉐가 폭스바겐 지분을 본격적으로 사 모으기 시작한 것은 2005년 무렵입니다. 명분은 방어였습니다. 폭스바겐이 외국 자본에 넘어가면 포르쉐도 부품과 플랫폼 공급에서 곤란해진다는 논리였습니다. 여기에 폭스바겐법이라는 독특한 제도가 얽혀 있었습니다. 니더작센 주정부가 보유한 20%가량의 지분에 사실상 거부권에 가까운 힘을 실어주는 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포르쉐의 매집은 방어라고 보기 어려운 규모가 되어갔습니다. 지분율이 20%를 넘고 30%를 넘어서는 동안, 시장에서는 포르쉐가 아예 지배권을 가져가려 한다는 관측이 돌았습니다. 포르쉐 경영진은 그때마다 말을 아끼거나 관측을 부인했습니다. 최고경영자 벤델린 비데킹은 회사를 흑자 체질로 바꿔놓은 스타 경영인이었고, 그의 판단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회사 안에 많지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분, 현금결제 옵션

상장회사 지분을 일정 비율 이상 확보하면 공시를 해야 합니다. 누가 얼마나 들고 있는지 시장이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대량 매집을 조용히 진행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포르쉐는 공시된 지분율이 30%대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도 실질적으로는 훨씬 많은 폭스바겐 주식에 손을 걸쳐두고 있었습니다. 그 도구가 현금결제 옵션이었습니다.

옵션은 미리 정한 가격에 주식을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정산 방식이 있는데, 하나는 만기에 실제 주식을 주고받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가 현금결제 방식입니다. 현금결제형은 주식을 실제로 넘겨받지 않고 약정 가격과 시장 가격의 차액만 현금으로 정산합니다. 주식을 받지 않으니 법적으로는 주식을 보유한 것이 아니고, 따라서 당시 독일 규정상 지분 공시 대상에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장부 밖에서 벌어지는 일이었습니다. 포르쉐에 옵션을 팔아준 은행들은 나중에 차액을 물어줘야 할 위험을 떠안게 되는데, 이 위험을 없애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미리 폭스바겐 주식을 사서 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헤지, 즉 위험 회피 거래라고 부릅니다. 결국 포르쉐가 옵션을 사 모을수록 은행들은 시장에서 실제 폭스바겐 주식을 걷어 금고에 넣었습니다. 공시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는 주식은 조용히 말라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기간 포르쉐의 손익계산서도 기묘해졌습니다. 폭스바겐 주가가 오를수록 보유 옵션의 평가이익이 불어나면서, 자동차를 팔아 번 돈보다 금융거래에서 잡히는 이익이 더 커 보이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자동차도 만드는 헤지펀드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 이때입니다.

일요일 오후에 나온 보도자료 한 장

2008년 10월 26일 일요일, 포르쉐는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폭스바겐 보통주의 42.6%를 보유하고 있으며, 여기에 더해 31.5%에 해당하는 현금결제 옵션을 들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두 숫자를 더하면 74.1%입니다. 포르쉐는 2009년에 지분을 75%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뜻도 함께 밝혔습니다. 주말 오후에 조용히 나온 이 한 장짜리 발표가 이틀 뒤 시장을 뒤집어 놓게 됩니다.

발표가 나온 뒤 투자자들이 한 일은 간단한 뺄셈이었습니다. 포르쉐가 74.1%를 쥐고 있고, 니더작센 주정부가 20%가량을 들고 있습니다. 둘 다 어떤 가격에도 팔 생각이 없는 주주입니다. 더하면 94%를 넘고, 시장에서 실제로 사고팔 수 있는 주식은 6%가 채 되지 않는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여기서 공매도가 등장합니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서 먼저 팔고, 나중에 더 싼 값에 되사서 갚는 거래로, 주가가 내려야 이익이 나는 구조입니다. 2008년 가을의 폭스바겐은 공매도 대상으로 더없이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자동차 수요는 얼어붙었고, 주가는 포르쉐의 매집 탓에 실적에 비해 비싸 보였습니다. 그래서 상당수 헤지펀드가 폭스바겐을 빌려 팔았고, 발행주식의 12%가량이 공매도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빌려서 판 주식이 12%인데 시장에 남은 주식은 6%가 안 됩니다. 산술적으로 모두가 갚을 방법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럴 때 벌어지는 현상을 숏스퀴즈라고 부릅니다. 공매도한 쪽이 손실을 끊기 위해 급하게 주식을 되사고, 그 매수가 주가를 더 밀어 올리고, 오른 주가가 다시 다른 공매도 투자자를 되사기로 몰아넣는 악순환입니다. 일요일 저녁, 수많은 펀드매니저가 그 악순환의 입구에 서 있다는 사실을 동시에 깨달았습니다.

이틀 만에 다섯 배

월요일인 10월 27일 장이 열리자마자 폭스바겐 주가는 수직으로 뛰었습니다. 210유로대에서 출발한 주가는 그날 517유로까지 올라 두 배 이상이 되었습니다. 다음 날인 28일에는 장중 1,005유로를 찍었습니다. 이틀 사이 시가총액은 2,960억 유로 수준까지 불어났고, 폭스바겐은 잠시 세계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기업이 되었습니다. 자동차가 가장 안 팔리던 해에 벌어진 일입니다.

이 가격에 폭스바겐을 산 사람들은 회사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해서 산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은 빌린 주식을 갚아야 하는 쪽이었습니다. 손실이 불어나면 증거금을 더 넣으라는 요구가 들어오고, 그것을 감당할 수 없으면 어떤 가격에든 되사서 거래를 끝낼 수밖에 없습니다. 가치 판단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매수였고, 파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손실 규모를 정확히 집계한 자료는 없습니다. 다만 공매도 세력이 입은 손실이 200억 유로 안팎이라는 추정과, 넓게 잡아 300억 달러 규모라는 추정이 함께 거론됩니다. 어느 쪽이든 개별 펀드로서는 회복하기 어려운 금액이었고, 실제로 이 거래 하나로 문을 닫은 헤지펀드가 여럿 나왔습니다. 독일의 기업가 아돌프 메르클레도 폭스바겐 관련 거래에서 큰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고, 이듬해 1월 스스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숫자 뒤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잊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독일 금융감독청 바핀은 10월 28일 시세조종 여부를 들여다보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인 29일, 포르쉐는 시장의 긴장을 풀기 위해 보유 지분 가운데 5%에 해당하는 물량을 풀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한마디에 주가는 급격히 내려앉기 시작했고, 며칠 만에 고점 대비 절반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12월 무렵에는 대체로 사건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습니다. 이틀 동안의 1,005유로는 그렇게 기록으로만 남았습니다.

이긴 쪽이 먹혔다

장부상으로 보면 포르쉐는 엄청난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익은 대부분 평가이익이었고, 지분을 사 모으는 데 들어간 돈은 대부분 빌린 돈이었습니다. 금융위기가 깊어지면서 은행들은 만기가 돌아온 대출을 연장해 주기를 꺼렸습니다. 포르쉐 지주회사가 짊어진 부채는 100억 유로 규모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무너진 것은 공매도 세력이 아니라 포르쉐였습니다. 2009년 7월 23일 비데킹은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그가 받은 퇴직 패키지는 5,000만 유로 규모로 전해져 독일 사회에서 논란이 됐습니다. 회사는 카타르 국부펀드 등에서 자금을 수혈받았고, 동시에 폭스바겐과의 통합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삼키려던 쪽과 삼켜지려던 쪽의 자리가 완전히 뒤바뀐 것입니다.

통합은 단계적으로 진행됐고, 2012년 8월 1일 폭스바겐은 포르쉐 AG의 나머지 지분 50.1%를 사들이며 인수를 마무리했습니다. 자동차를 만드는 포르쉐는 폭스바겐 그룹의 브랜드가 되었고, 한때 폭스바겐을 삼키려던 지주회사는 폭스바겐 지분을 들고 있는 투자회사로 남았습니다. 4년 전 일요일 오후의 보도자료가 만들어낸 결말치고는 지독한 아이러니입니다.

법적 후일담도 길었습니다. 독일 검찰은 비데킹을 비롯한 전직 경영진을 시세조종 혐의로 기소했지만, 재판은 2016년 유죄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종결됐습니다. 손실을 본 헤지펀드들이 제기한 민사소송도 상당수가 기각됐습니다. 시장을 뒤흔든 사건이었지만 법정에서 책임으로 확정된 부분은 생각보다 적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남는 것

이 사건이 개인투자자에게 남기는 첫 번째 교훈은 시가총액보다 유통 물량을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발행주식이 아무리 많아도 실제로 시장에서 손바뀜하는 물량이 적으면 가격은 아주 작은 매수와 매도에도 크게 흔들립니다. 지배주주와 정부, 우호 지분이 겹겹이 묶여 있는 종목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호가창이 얇다는 말은 가격이 현실에서 떨어져 나갈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두 번째는 공시가 모든 것을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포르쉐는 규정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시장이 알아야 할 정보를 오랫동안 가려둘 수 있었습니다. 규정은 언제나 사건 다음에 고쳐집니다. 실제로 독일을 비롯한 여러 나라는 이 사건 이후 현금결제형 파생상품까지 지분 공시 대상에 넣도록 제도를 손봤습니다.

세 번째는 방향이 맞아도 버티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는 점입니다. 폭스바겐에 공매도를 걸었던 펀드들의 판단은 길게 보면 틀리지 않았습니다. 주가는 몇 주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고, 자동차 업황에 대한 그들의 전망도 대체로 맞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몇 주를 견디지 못했습니다. 빌린 돈이나 빌린 주식이 끼어 있는 순간, 투자의 승패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버틸 수 있는 기간이 결정합니다.

마지막으로, 시장 가격은 기업의 가치를 비추는 거울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날의 가격은 그 순간 반드시 사거나 팔아야만 하는 사람들의 사정이 만들어낸 숫자입니다. 1,005유로라는 가격표에는 폭스바겐의 미래가 아니라 궁지에 몰린 사람들의 다급함이 적혀 있었습니다. 화면에 뜬 숫자 뒤에 누가 어떤 이유로 서 있는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습관, 2008년 가을의 이틀이 남긴 가장 실용적인 교훈은 그것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