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광고로 뽑은 23명에게 돈을 맡겼다
2026-10-12 · 18분 읽기
1983년 늦가을, 월스트리트저널과 배런스의 구인란 한구석에 광고가 하나 실립니다. 리처드 J. 데니스가 상품선물 트레이더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조건이 묘했습니다. 매매 경험은 고려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전화 문의는 받지 않으니 이력서와, 왜 지원하는지를 한 문장으로 적어 시카고의 주소로 보내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합격하면 2주 동안 매매 개념을 배우고, 자기 돈이 아니라 광고를 낸 사람의 돈을 굴리게 된다고 했습니다.
광고를 낸 사람은 당시 삼십대 중반의 시카고 트레이더였습니다. 가족에게 빌린 1,600달러로 시작해 수억 달러를 벌었다고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이 광고를 낸 이유는 사람이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동업자와 오래 말다툼을 하다가, 그 다툼을 실제 돈으로 판정해 보기로 한 것입니다. 쟁점은 하나였습니다. 트레이더는 타고나는가, 아니면 길러낼 수 있는가.
그래서 1983년 12월, 시카고의 한 사무실에 블랙잭 프로 도박사와 던전 앤 드래곤 게임을 만든 디자이너, 하버드 MBA 출신 회사원, 공군 조종사 출신, 거래소 경비원이 한 교실에 앉습니다. 2주 뒤 이들은 각자 계좌를 받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다음에 벌어진 일에 관한 것이고, 흔히 전해지는 결말과는 조금 다릅니다. 절반은 성공담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같은 규칙을 받고도 무너진 사람들의 기록입니다.
신문 뒷면에 실린 이상한 구인 광고
광고는 한 번만 실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데니스의 회사 C&D 커머디티스는 1983년 늦가을과 이듬해 1984년에 걸쳐 월스트리트저널, 배런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같은 성격의 광고를 냈습니다. 광고비로 15,000달러를 책정했다고 전해집니다. 1984년판 광고에는 접수 마감이 10월 1일로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금융권 채용 공고와 비교하면 황당할 정도로 설명이 부족한 문서였습니다.
조건을 하나하나 읽어보면 묘함이 더 커집니다. 합격자는 데니스가 쓰는 매매 개념을 교육받습니다. 그런데 그 개념으로 자기 돈을 굴릴 수는 없었습니다. 오직 데니스의 돈만, 데니스를 위해서만 매매해야 했습니다. 보상은 매매 이익의 일정 비율과, 생활비 수준의 소액 고정급이었습니다.
지원자 입장에서는 꽤 불리한 거래로 보입니다. 비법을 배우지만 그 비법으로 독립할 수 없고, 돈을 벌어도 대부분은 자본을 댄 사람의 것입니다. 실제로 한 참가자는 뒷날 자신이 받은 고정급이 연 18,000달러였고 식료품값을 내기에 충분한 정도였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런데도 광고는 1,000명이 넘는 지원자를 끌어모았습니다. 한 합격자는 그 광고를 보고 받은 인상을 뉴욕 양키스가 주전 유격수를 구한다는 공고처럼 보였다고 표현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광고가 채용 공고이면서 동시에 실험 공고였다는 사실입니다. 광고를 낸 사람은 애초에 일손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이 맞는지를 확인하려 했습니다. 지원자들은 자신이 실험 참가자가 된다는 사실을 모른 채 서류를 보냈습니다. 이 비대칭이 뒤에 벌어지는 모든 일의 배경이 됩니다.
두 친구가 다툰 것: 데니스와 에크하르트
리처드 데니스는 1949년 1월 시카고에서 태어났습니다. 열일곱에 시카고상업거래소 플로어에서 주문을 전달하는 러너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가족에게 1,600달러를 빌려 미드아메리카 상품거래소의 회원권을 1,200달러에 샀고, 1973년에는 자본이 10만 달러를 넘겼습니다. 1974년 대두 매매로 50만 달러를 벌어 그해 백만장자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드폴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대학원 진학 대신 피트로 돌아간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피트의 왕자라고 불렀습니다.
윌리엄 에크하르트는 데니스의 고등학교 때부터의 친구였습니다. 시카고대학에서 수리논리학으로 박사 과정을 밟았고, 논문 지도 체계가 바뀌는 과정에서 학위를 마치지 않고 1970년대 중반에 같은 거래소 플로어로 갔습니다. 자료에 따라 그가 학교를 떠난 해를 1973년으로도, 1974년으로도 적습니다. 두 사람은 C&D 커머디티스의 동업자가 되었습니다. 데니스가 감각으로 때려 맞히는 쪽이었다면, 에크하르트는 그 감각을 수식으로 옮겨 적는 쪽이었습니다.
둘이 늘 부딪힌 지점이 있었습니다. 데니스는 자기가 하는 일에 특별할 것이 없다고 봤습니다. 규칙으로 적어낼 수 있고, 적어낸 규칙은 가르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에크하르트는 반대였습니다. 분석과 감정은 떼어낼 수 없고, 기질은 수업으로 심어줄 수 없다고 봤습니다. 머리가 좋은 것과 매매를 잘하는 것 사이에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널리 퍼진 이야기에서는 이 다툼이 돈을 건 내기로 묘사됩니다. 다만 두 사람이 실제로 금액을 걸었다는 기록은 분명하지 않고, 실험 자체가 판정 방식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잭 슈웨거의 책에 소개된 열 명에게 각자 100만 달러를 맡긴다는 식의 설정도 실제 조건과는 다릅니다. 널리 알려진 판본과 기록이 어긋나는 첫 번째 지점입니다.
역할도 통설과 다릅니다. 통설에서 데니스는 스승이고 에크하르트는 회의론자입니다. 그런데 교육생들이 배운 기계적 규칙의 설계에 에크하르트가 깊이 관여했고, 선발과 관리에도 참여했다고 전해집니다. 가르칠 수 없다고 주장한 사람이 교재를 함께 만든 셈입니다. 두 사람은 2016년에 시카고상품거래소그룹에서 함께 상을 받았습니다.
1,000명 중 23명, 그리고 거북이라는 이름
선발은 이력서 한 장과 한 문장으로 시작했습니다. 1차를 통과한 사람에게는 편지와 시험지가 갔습니다. 시험은 참과 거짓을 고르는 문항 63개와 서술형 11개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대학 입학시험 점수를 적어 내거나, 왜 점수가 없는지를 설명하라는 요구도 있었습니다.
참거짓 문항은 매매 지식을 묻는 척하면서 사실은 성향을 묻고 있었습니다. 큰 하락 뒤 바닥에서 사야 큰돈을 번다, 살 때는 평균 단가를 낮추는 것이 좋다, 이익을 실현해서 망하는 일은 없다, 거래의 아주 높은 비율이 이익이어야 한다 같은 문장들이 줄지어 나왔습니다. 하나같이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맞다고 느끼는 문장이고, 출제자가 기대한 답은 그 직관의 반대였습니다. 트레이더는 손실을 받아들이기를 좋아해야 한다는 문장도 있었습니다.
서술형은 더 노골적이었습니다. 당신이 한 위험한 일을 하나 적고 왜 그랬는지 쓰라. 희망과 두려움과 탐욕이 트레이더의 적이라고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매매에서 당신은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운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지식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관찰을 요구하는 질문들이었습니다.
이렇게 걸러 뽑힌 23명의 면면이 이 이야기의 재미 중 하나입니다.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의 블랙잭 프로 도박사, 던전 앤 드래곤 게임을 만든 디자이너, 하버드 MBA 출신 회사원, 공군 조종사 출신, 변호사 겸 자영업자, 시카고상품거래소 건물의 경비원, 열여섯에 학교를 떠난 전직 배우가 있었습니다. 이력서를 꾸며 낸 사람도 있었고, 데니스의 사무실에서 이미 일하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뉴욕의 사우나에서 신문을 보다가 광고를 발견했다고 전해집니다.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조합입니다. 전공은 경영학 경제학 음악 회계 지질학 역사학에 언어학 박사까지 걸쳐 있었고, 직전 직업에는 캐터필러 영업사원, 식당 부점장, 교사, 교도소 상담원, 배달원, 웨이터가 있었습니다. 지원서에 직업을 무직으로 쓴 사람도 있었습니다. 여성은 두 명이었습니다. 데니스가 왜 이런 조합을 골랐는지는 그가 믿은 가설을 보면 짐작이 됩니다. 매매 경력이 길수록 버려야 할 습관도 많고, 반대로 블랙잭이나 스포츠 베팅으로 확률을 다뤄본 사람은 한 번의 결과가 아니라 여러 번의 분포로 생각하는 훈련이 이미 되어 있습니다.
이 집단에 붙은 이름이 터틀, 즉 거북이였습니다. 가장 널리 퍼진 설명은 싱가포르의 거북이 양식장 이야기입니다. 데니스가 그곳을 방문했다가 거북이를 길러내듯 트레이더를 길러내겠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마이클 코벨의 책에 그렇게 적혀 있고, 선물업계 명예의 전당 소개문 같은 공식 성격의 자료에도 싱가포르의 거북이 농장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수준으로 실려 있습니다.
다만 이 일화는 관계자의 회고를 인용한 형태로 전해지는 것이고, 방문 날짜나 농장 이름 같은 뒷받침 기록이 공개된 적은 없습니다. 게다가 다른 설명도 함께 전해집니다. 교육생 중 한 명은 처음 붙은 이름이 제자들이라는 뜻의 다른 단어였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참가자는 데니스가 1960년대 팝 그룹 더 터틀스를 좋아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기억했습니다. 이름의 유래를 따지는 일이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이 실험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가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럴듯한 통설이 있고, 출처는 대부분 관계자들의 회고이며, 숫자든 일화든 교차 검증이 쉽지 않습니다.
2주 동안 가르친 것
1983년 12월, 첫 수업이 열립니다. 기간은 2주 남짓이었습니다. 교육 내용은 뜻밖에도 단순했습니다. 어떤 신호가 나오면 들어가고, 어떤 신호가 나오면 나오고, 들어갈 때는 얼마를 걸고, 틀렸으면 어디서 포기하는지. 경제 전망이나 수급 분석은 거의 없었습니다.
들어가는 신호의 뼈대는 돌파였습니다. 가격이 최근 일정 기간의 최고가를 넘어서면 상승 흐름이 시작된 것으로 간주하고 따라 들어갑니다. 반대로 최근 일정 기간의 최저가를 깨면 하락 흐름으로 보고 반대 방향에 섭니다. 선물시장에서는 가격이 내려갈 때 이익이 나는 포지션도 올라갈 때 이익이 나는 포지션과 똑같이 취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규칙은 양쪽 방향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교재에는 기간이 짧은 체계와 긴 체계가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이 발상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리처드 돈치안 같은 선배들이 이미 비슷한 개념을 다듬어 두었습니다. 터틀 수업의 특징은 발상의 독창성이 아니라, 모든 판단을 숫자로 못 박아 사람의 재량을 지워버린 데 있었습니다. 어떤 시장을 다룰지도 미리 정해져 있었습니다. 거래가 활발한 금리, 통화, 지수, 금속, 에너지 상품이 대상이었고, 포지션 한도 규제가 걸린 곡물과 거래 관행이 문제가 되던 축산물은 빠졌습니다.
나오는 규칙도 같은 식이었습니다. 흐름이 반대로 꺾인 것으로 볼 수 있는 수준까지 가격이 되돌려지면 기계적으로 나옵니다. 손실을 끊는 기준은 가격의 절대 수치가 아니라 변동성에 연동되어 있었습니다. 핵심은 손실 한도를 얼마가 빠지면이 아니라, 그 시장이 평소 흔들리는 폭의 몇 배까지로 정했다는 점입니다. 손절 주문을 증권사에 미리 걸어두는 대신, 도달하면 반드시 지키는 가격으로 머릿속에 두게 했다는 점도 특이했습니다.
여기서 분명히 해둘 것이 있습니다. 이 글에 적은 내용은 40년 전 교실에서 어떤 생각으로 규칙을 짰는지에 대한 설명이고, 지금 따라 하면 되는 지침이 아닙니다. 실제 규칙 문서에는 시장별 계약 수 상한, 추가로 포지션을 늘리는 간격, 서로 비슷하게 움직이는 시장끼리의 합산 한도 같은 조건이 빼곡히 붙어 있었습니다. 뒤에서 보겠지만, 그 규칙을 그대로 받은 사람들의 결과조차 극단적으로 갈렸습니다.
가장 중요한 수업은 얼마를 걸 것인가였습니다
교육생들이 뒷날 입을 모아 지목한 핵심은 들어가는 신호가 아니었습니다. 베팅의 크기였습니다. 같은 신호를 봤을 때 1계약을 살지 10계약을 살지를 정하는 규칙이, 성적 곡선의 모양을 사실상 결정했습니다. 신호는 교재의 한 장이었고, 크기 조절은 교재의 뼈대였습니다.
규칙의 발상은 이렇습니다. 먼저 그 시장이 하루에 평균적으로 얼마나 출렁이는지를 숫자로 잡습니다. 최근 약 20일 동안의 하루 변동폭을 평균한 값인데, 교재에서는 이것을 N이라고 불렀습니다. 변동성이란 가격이 오르내리는 폭의 크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조용한 시장은 N이 작고, 난폭한 시장은 N이 큽니다.
그다음이 중요합니다. 포지션의 크기를, 가격이 N만큼 불리하게 움직였을 때 계좌의 1퍼센트가 줄어드는 수준으로 맞춥니다. 난폭한 시장에서는 자동으로 적게, 조용한 시장에서는 자동으로 많이 들어가게 됩니다. 종목마다 다른 성질을 같은 위험이라는 공통 단위로 환산해 버리는 장치입니다. 손실을 끊는 선도 N의 배수로 잡았기 때문에, 한 번 틀렸을 때 날아가는 금액이 어느 시장에서나 대체로 비슷했습니다.
비유하자면 바람이 센 날에는 돛을 줄이고 잔잔한 날에는 돛을 펴는 것과 같습니다. 바람의 세기가 어떻든 배가 기울어지는 각도는 비슷하게 유지하자는 생각입니다. 같은 1,000만 원을 걸어도 하루에 1퍼센트씩 움직이는 대상과 하루에 5퍼센트씩 움직이는 대상은 실제로 감수하는 위험이 다섯 배 다릅니다. 터틀 교재는 이 차이를 눈대중이 아니라 계산으로 처리했습니다.
이 설계가 왜 중요한지는 반대 사례를 떠올리면 금방 이해됩니다. 많은 개인투자자는 확신이 들 때 크게 걸고 자신이 없을 때 작게 겁니다. 문제는 확신의 세기와 적중 확률이 서로 별로 상관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교재는 확신이라는 변수를 계산에서 아예 빼버렸습니다. 다만 이 발상을 안다고 해서 결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 바로 다음에 벌어진 일이 보여주는 바입니다.
성과, 그리고 엇갈리는 숫자들
수업이 끝나고 1984년 1월, 교육생들은 계좌를 받습니다. 처음에는 시장별로 12계약이라는 제한을 둔 시험 기간이었습니다. 통과한 사람에게는 25만 달러에서 200만 달러 사이의 자금이 배정되었습니다. 1984년 12월에 두 번째 기수가 같은 과정을 밟았고, 두 기수를 합쳐 스물한 명의 남성과 두 명의 여성이 되었습니다.
결과로 전해지는 총액은 자료마다 다릅니다. 4년에서 5년 동안 터틀 전체가 거둔 이익을 1억 달러 이상으로 적은 자료가 있고, 1억 5천만 달러로 적은 자료, 1억 7천 5백만 달러로 적은 자료도 있습니다. 데니스 본인은 총 1억 5천만 달러를 벌어 그중 1억 1천만 달러가 남았다는 식으로 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세부 회계가 공개된 적이 없으니 어느 숫자도 확정된 사실로 다루기는 어렵습니다.
개인별 수치는 더 흐릿합니다. 교육생 중 한 명은 자신이 집단 전체 이익 가운데 3천만 달러 이상을 벌었다고 주장했지만, 이 주장은 다른 관계자들에게 반박당했습니다. 또 다른 참가자는 1986년에 65퍼센트 수익을 냈다고 밝혔습니다. 30년 뒤 인터뷰에서 몇몇은 손해를 보지는 않았다고만 말하고 구체적인 숫자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데니스와 에크하르트는 그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그러니 이 실험을 평균 연 몇 퍼센트로 요약하는 문장은 대체로 믿기 어렵습니다. 널리 인용되는 높은 연평균 수익률은 특정 몇 명의 특정 기간을 전체에 덧씌운 결과인 경우가 많습니다. 공개된 기록을 가진 터틀은 나중에 운용사를 세워 감사받은 성적표를 남긴 소수에 한정됩니다. 나머지의 숫자는 본인의 회고 외에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한 가지는 비교적 분명합니다. 1980년대 중반 선물시장에는 몇 달씩 한 방향으로 밀고 가는 큰 흐름이 자주 있었습니다. 달러의 급등과 급락, 금리의 장기 하락, 원유와 곡물의 큰 파동이 그 시기에 겹쳤습니다. 돌파를 따라가는 규칙이 가장 잘 먹히는 환경이었다는 뜻입니다. 이 사실은 뒤에 남는 논쟁의 핵심 근거가 됩니다.
같은 규칙을 받고 결과가 갈린 이유
이 실험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성공담이 아니라 편차입니다. 같은 교실에서 같은 규칙을, 같은 사람으로부터, 같은 시기에 배웠습니다. 자금도 같은 주인에게서 나왔습니다. 정보 격차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결과는 극단적으로 벌어졌습니다.
첫 기수는 시작하자마자 고생했습니다. 거래를 시작한 뒤 반년쯤 지난 시점에 첫 기수 평균이 절반 가까이 줄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1984년에 20퍼센트 넘는 손실을 기록한 참가자도 있었습니다. 그 참가자는 이듬해 50퍼센트가 넘는 수익으로 돌아섰지만, 첫해의 손실 기록은 뒷날 공개된 자신의 운용 성적표에서는 빠져 있었습니다. 같은 기수 동료가 그 누락을 지적했습니다.
규칙을 그대로 지키는 일이 왜 그토록 어려웠는지는 숫자로 설명됩니다. 교육생 중 한 명이 나중에 두 체계를 합쳐 검증해 보니, 최악의 구간에서 자산이 80퍼센트까지 줄어드는 경로가 나왔습니다. 수업에서 설명된 수준은 50퍼센트 정도였습니다. 80퍼센트가 줄어든 자산이 원래대로 돌아오려면 400퍼센트를 벌어야 합니다. 규칙을 지킨다는 말은 이런 구간을 눈 감고 통과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사람이 무너지는 지점은 대체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연속으로 손실이 날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지루한 구간이 길어질 때, 보유한 포지션이 손실 제한선 근처에서 흔들릴 때였습니다. 규칙을 어긴 사람들은 하필 어기는 것이 가장 치명적인 순간에 어겼습니다. 몇몇은 프로그램 초기에 조용히 탈락했습니다.
규칙을 지켰는데도 불행해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 참가자는 1986년에 두 자릿수 하락 없이 좋은 성적을 냈는데도 배정 자금과 성과 보수가 깎였고, 5년 전속 계약이 남아 있었지만 1987년 7월에 떠났습니다. 자본을 쥔 쪽이 배분을 바꿀 수 있는 구조에서는, 규칙을 지키는 것만으로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남아 있었습니다. 이 대목은 흔히 전해지는 성공담에서 거의 생략됩니다.
30년 뒤 한 참가자가 남긴 평가가 이 지점을 가장 정확하게 요약합니다. 매매는 가르칠 수 있다, 다만 아무에게나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같은 교실에 앉았던 사람의 입에서 나온 조건부 결론입니다. 이 문장은 데니스의 주장과 에크하르트의 주장을 절반씩 인정한 셈입니다.
1988년 봄, 선생이 먼저 무너졌습니다
실험은 성공 선언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88년 초, 데니스는 프로그램을 갑작스럽게 닫았습니다. 교육생 중에는 전속 계약 기간이 남아 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는 그 무렵 아버지를 잃은 상태였다고 전해집니다.
배경에는 데니스 본인의 손실이 있었습니다. 1987년 10월 블랙먼데이에서 그가 1천만 달러를 잃었다고 전해지고, 1987년부터 1988년까지 합쳐 5천만 달러 규모의 손실을 봤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988년 4월에는 그가 운용하던 자산이 55퍼센트 가까이 줄어든 상태였다고 전해집니다. 같은 달 터틀들의 손실은 10퍼센트에서 12퍼센트 수준이었습니다.
차이는 규칙이 아니라 레버리지였습니다. 레버리지란 자기 자본보다 큰 금액을 움직여 손익을 함께 키우는 것을 말합니다. 한 참가자는 데니스가 감당한 위험이 교육생들의 100배 수준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같은 흐름이 꺾였을 때 가장 크게 다친 사람은, 규칙을 만들고 가르친 쪽이었습니다. 교육생들이 그해에도 전체로는 이익을 보태 주었다는 점이 더 묘합니다.
그는 당시 외부 투자자의 돈을 받아 운용하는 공모 펀드도 맡고 있었습니다. 손실이 커지자 투자자들이 소송을 냈고, 그가 자신이 정한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1990년에 250만 달러가 넘는 금액으로 합의가 이루어졌고, 잘못을 인정하거나 부인하지 않는 조건이었습니다. 합의에는 이후 몇 년간의 매매 이익 일부를 투자자들에게 나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1988년 봄 이후 외부 자금 운용을 접었습니다. 1990년대 중후반에 다시 자금을 운용했지만, 2000년 여름의 손실 이후 그 사업도 닫았습니다. 공모 펀드에 대해서는 암 치료제가 된다 해도 다시는 맡지 않겠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는 뒤에 정치 활동과 재단 활동으로 옮겨갔고, 2009년에 선물업계 명예의 전당에 올랐습니다.
규칙은 어떻게 공개되었나
교육생들은 10년 동안 규칙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다는 약정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 기간이 끝난 뒤에도 대부분은 입을 다물었습니다. 선생에 대한 예의라는 이유도 있었고, 아직 그 규칙으로 돈을 벌고 있다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약정이 끝난 사실조차 모르고 인터뷰를 거절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상황을 바꾼 것은 돈을 받고 규칙을 팔기 시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 터틀 규칙이라는 이름의 교재와 강의가 상당한 가격에 거래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는 실제 참가자도 있었고, 아닌 사람도 있었습니다. 원래 규칙을 만든 두 사람의 동의를 받은 경우는 없었습니다.
2003년, 첫 기수 참가자 중 한 명인 커티스 페이스가 규칙 전체를 정리한 문서를 무료로 공개했습니다. 공개 이유로 그는 원 저작자들의 동의 없이 규칙이 팔리고 있는 상황을 지적하며, 그것을 노골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지식재산 절취라고 불렀습니다. 공짜로 뿌리면 파는 쪽의 사업이 무너질 것이라는 계산이었습니다. 문서는 혜택을 본 사람들에게 데니스와 에크하르트와 동료 터틀들의 이름으로 자선단체에 기부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같은 문서에서 그는 흥미로운 단서를 달았습니다. 규칙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결정적인 것은 규칙을 믿고 끝까지 지키는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규칙을 공개하면서 규칙의 값어치를 스스로 깎는 주장을 함께 한 셈입니다. 그 뒤의 이야기는 상당 부분 교육 산업으로 흘러갔습니다. 2007년에는 마이클 코벨이 참가자들을 취재한 책을 냈고, 페이스 본인도 책을 썼습니다.
반대로 성적표를 남긴 소수는 조용히 운용만 했습니다. 체서피크 캐피털, EMC 캐피털, 라바 마켓 리서치처럼 감사받은 기록을 공개한 운용사들이 거기서 나왔습니다. 체서피크를 세운 참가자는 뒷날 10억 달러가 넘는 자금을 운용했다고 전해집니다. EMC를 이끈 참가자는 2013년에 56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책과 강의로 간 사람들과 운용 기록으로 남은 사람들이 갈린 지점은, 대체로 실제 성적이 있었는지 여부였습니다.
공개된 뒤에도 그대로 통했을까
규칙이 공개된 뒤 가장 자연스러운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제 누구나 아는 규칙이 되었는데도 돈이 벌렸는가. 터틀 체계를 과거 데이터로 되돌려 검증한 작업들은 일관된 모양을 보여줍니다. 1986년 이후 성적이 크게 꺾이고, 1996년부터 2009년까지는 거의 평탄했습니다.
그렇다고 추세추종이라는 발상 자체가 죽은 것은 아닙니다. 추세추종이란 오르는 것을 따라 사고 내리는 것을 따라 파는, 방향이 정해진 흐름에 올라타는 접근을 말합니다. 18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200년 넘는 기간을 검증한 연구에서는 이 전략의 장기 성적이 꾸준한 편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만 같은 연구는 2011년 무렵부터 성적이 평탄해졌다는 점도 함께 지적하고, 며칠 단위의 짧은 흐름을 노리는 방식은 1990년대 이후 뚜렷하게 약해졌다고 봅니다.
왜 꺾였는지에 대한 설명은 갈립니다. 한쪽에서는 시장 구조가 바뀌었다고 봅니다. 같은 전략을 쓰는 돈이 늘어나면서 돌파 지점에서 얻을 수 있는 몫이 줄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쪽에서는 구조가 아니라 환경 탓이라고 봅니다. 큰 한 방향 흐름 자체가 드물어진 시기였을 뿐이고, 큰 흐름이 다시 오면 성적도 돌아온다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2022년처럼 금리와 원자재가 한 방향으로 크게 움직인 해에는 이 계열의 성적이 되살아났습니다.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규칙을 아는 것과 규칙으로 돈을 버는 것 사이에는 10년 넘게 벌어질 수 있는 틈이 있습니다. 규칙이 공짜로 공개된 2003년 전후는 이 전략에 가장 재미없는 구간이었습니다. 문서를 받아 든 사람들 대부분이 그 지루함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됩니다.
남은 논쟁
그래서 이 실험은 무엇을 증명했을까요. 데니스 쪽 해석은 간단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2주를 가르쳐 이익을 내게 만들었으니 매매는 가르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뒷날 매매가 자기 생각보다도 더 가르칠 수 있는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반대 해석은 두 갈래입니다. 첫째, 증명된 것은 가르칠 수 있다가 아니라 골라낼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1,000명 이상에서 23명을 추리는 데 63문항 시험과 서술형과 성향 심사가 동원되었습니다. 확률적 사고가 이미 몸에 붙은 사람들을 추려낸 뒤의 성공은, 교육의 성과인지 선발의 성과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블랙잭 프로가 두 명이나 포함된 명단은 그 의심을 키웁니다.
둘째, 증명된 것은 그 시대 그 시장에서 통했다는 주장입니다. 1980년대 중반은 큰 흐름이 길게 이어진 시기였고, 같은 규칙의 성적은 1986년 이후 꺾였습니다. 규칙을 함께 설계한 에크하르트조차 체계적 매매를 가르칠 수 있다는 점은 받아들였지만, 결과의 큰 편차가 결국 기질 문제를 가리킨다는 자신의 주장도 거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뒤에 자기 회사를 세워 운용을 계속했습니다.
두 해석 사이에서 한쪽을 고르기는 어렵습니다. 23명의 개별 성적표가 전부 공개된 적이 없고, 비교할 대조군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통제된 실험이 아니라 한 번의 흥미로운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과학보다 역사에 가깝습니다. 그런데도 40년 넘게 인용되는 이유는, 결론이 깔끔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에게 남는 것
이 이야기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부분은 수익 금액입니다. 그런데 기록을 따라가 보면 눈에 남는 것은 다른 쪽입니다. 같은 규칙을 같은 날 같은 교실에서 받은 사람들의 결과가 왜 그렇게까지 갈렸는가. 성공한 소수의 이름은 널리 알려졌고, 조용히 탈락한 사람들의 이름은 대체로 남지 않았습니다.
데니스 본인이 남긴 말이 그 답에 가장 가깝습니다. 자기 매매 규칙을 신문에 그대로 실어도 아무도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규칙은 2003년에 신문보다 더 널리 공개되었습니다. 그 뒤로 터틀 같은 성적을 낸 사람들의 명단이 길어졌다는 증거는 보이지 않습니다. 정보가 부족해서 못 벌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로 남는 것은 베팅 크기에 대한 생각입니다. 교육생들이 공통으로 꼽은 핵심은 무엇을 사느냐가 아니라 한 번에 얼마를 거느냐였습니다. 변동성이 큰 대상에 같은 금액을 걸면 사실은 더 크게 건 것이라는 발상은, 종목 고르기에 쏠린 시선을 조금 옮겨놓습니다. 어떤 구체적 수치를 따라 하라는 뜻이 아니라, 위험을 금액이 아니라 흔들림의 크기로 재는 관점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선생의 결말입니다. 규칙을 만들고 가르친 사람이 1988년 봄에 자기 학생들보다 몇 배 더 크게 다쳤고, 외부 자금 운용을 두 번 접었습니다. 규칙을 아는 것과 규칙을 지키는 것이 다르고, 규칙을 지키는 것과 규칙이 통하는 환경에 있는 것이 또 다릅니다. 40년 전 시카고의 교실이 남긴 가장 유용한 교훈은, 아마 수익률 숫자가 아니라 그 세 가지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