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대출은 어떻게 AAA가 되었나
2026-09-19 · 7분 읽기
2006년 한 해 동안 무디스라는 신용평가회사가 최고 등급인 AAA를 붙여준 주택담보대출 관련 채권은 8,690억 달러어치였습니다. AAA는 국채에 준하는 등급, 그러니까 원금을 떼일 걱정을 거의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듬해인 2007년, 무디스는 그 AAA 채권들 가운데 83퍼센트의 등급을 내렸습니다.
등급을 내렸다는 말이 한두 단계 조정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2007년 11월 한 달에만 500개가 넘는 채권 조각이 열 단계 이상 곤두박질쳤습니다. 최우량 등급이던 종이가 몇 달 만에 투기등급, 흔히 쓰레기 채권이라고 부르는 자리까지 밀려난 것입니다. 2007년 한 해 강등 건수는 8,000건을 넘어 전년의 여덟 배가 되었고, 2008년은 1월부터 9월까지만 36,880건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2008년 금융위기를 어느 투자은행의 파산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 사건은 마지막 장면에 가깝습니다. 진짜 이야기는 그보다 몇 해 앞서, 갚을 능력을 확인하지도 않고 내준 대출 수천 건이 서류 몇 장을 거쳐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채권으로 둔갑한 과정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둔갑술의 설계도는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갚을 능력을 묻지 않는 대출
서브프라임은 신용등급이 낮아 일반 심사를 통과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더 높은 금리로 내주는 주택담보대출을 말합니다. 2000년대 초반 미국 집값이 해마다 오르자 이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졌습니다. 2006년 한 해에 새로 나간 서브프라임 대출은 약 6,000억 달러로, 그해 미국에서 나간 전체 주택담보대출의 23.5퍼센트를 차지했습니다. 네 건 중 한 건 가까이가 애초에 위험하다고 분류된 대출이었다는 뜻입니다.
심사는 갈수록 헐거워졌습니다. 업계에서는 소득을 증빙하지 않아도 되는 대출을 자기 신고 소득 대출이라고 불렀고, 더 심한 것은 아예 농담 삼아 닌자 대출이라고 불렀습니다. 소득도 없고 직업도 없고 자산도 없다는 영어 문구의 머리글자를 딴 말입니다. 빌리는 사람이 직접 적어낸 숫자를 아무도 확인하지 않는 대출이 실제로 팔리고 있었습니다.
초기 몇 년만 아주 낮은 금리를 적용하다가 그 뒤 상환액이 껑충 뛰는 상품도 흔했습니다. 2년 뒤 내야 할 돈이 두 배가 되어도 상관없다는 논리는 간단했습니다. 그때 가서 집값이 올라 있을 테니 대출을 새로 갈아타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논리는 집값이 오르는 동안에만 성립합니다.
그런데 은행은 왜 못 갚을 수도 있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줬을까요. 빌려준 뒤 그 대출을 곧바로 다른 곳에 팔아넘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출이 부실해져도 손해를 보는 쪽은 자기가 아니었습니다. 돈을 빌려준 사람과 그 돈을 떼일 사람이 달라지는 순간, 심사를 꼼꼼히 할 이유도 함께 사라집니다.
수천 개를 묶으면 안전해진다는 계산
이렇게 사들인 대출을 수천 건씩 한 바구니에 담고, 그 바구니에서 들어오는 원리금을 쪼개 파는 것이 주택저당증권입니다. 영어 머리글자를 따서 MBS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해 대출 이자를 받을 권리를 잘게 나눠 만든 채권입니다. 이 구조의 핵심은 바구니 안의 몫이 모두 똑같이 취급되지는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발행자는 바구니에서 들어오는 돈에 순서를 매깁니다. 제일 윗칸을 산 투자자가 먼저 받고, 그다음 칸이 받고, 맨 아랫칸은 남는 것이 있어야 받습니다. 반대로 연체가 생기면 손실은 맨 아랫칸부터 갉아먹습니다. 이 칸 하나하나를 트랜치라고 부르는데, 프랑스어로 조각이라는 뜻입니다.
논리는 제법 그럴듯했습니다. 바구니 안 대출의 20퍼센트가 부도나도 맨 윗칸은 멀쩡하니, 그 칸만 떼어놓고 보면 개별 대출보다 훨씬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평가사들은 이 논리를 받아들여 맨 위 조각에 AAA를 줬습니다. 신용도가 낮은 대출만 잔뜩 담긴 바구니에서 최우량 채권이 나오는 연금술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이 계산이 맞으려면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바구니 안의 대출들이 서로 다른 이유로, 서로 다른 시점에 부도가 나야 합니다. 플로리다 사람이 실직하는 일과 캘리포니아 사람이 이혼하는 일은 서로 무관하니 한꺼번에 망하지는 않는다는 전제입니다. 이 전제를 전문용어로 상관관계가 낮다고 표현합니다. 이 문장 하나가 뒤에 벌어질 모든 일의 밑바닥에 깔려 있었습니다.
한 번 더 묶으면 다시 AAA가 됩니다
문제는 아랫칸이었습니다. 손실을 먼저 먹는 아래 조각들은 등급이 낮아 잘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월가는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여러 MBS에서 나온 이 애매한 조각들만 다시 모아 새 바구니를 만들고, 그것을 또 위아래로 잘랐습니다. 이것이 부채담보부증권, 줄여서 CDO입니다.
놀라운 것은 결과입니다. 잘 팔리지 않던 조각들을 모아 만든 이 새 바구니에서도 맨 윗칸에는 다시 AAA가 붙었습니다. 위기 전에 발행된 CDO를 금액 기준으로 보면 70퍼센트가 넘는 물량이 처음에 AAA 등급을 받았습니다. 그 안에 담긴 기초자산의 평균 신용도는 B등급 언저리였습니다.
여기서 멈추지도 않았습니다. CDO의 애매한 조각을 또 모아 만든 CDO까지 등장했습니다. 단계가 하나 올라갈 때마다 투자자는 자기가 산 채권의 밑바닥에 어떤 사람의 어떤 대출이 깔려 있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수천 개의 대출이 두세 겹으로 포개지고 나면 손에 남는 것은 등급표에 적힌 세 글자뿐입니다.
많은 연기금과 보험사, 은행은 내부 규정상 일정 등급 이상만 살 수 있습니다. AAA라는 세 글자는 그 규정을 통과시키는 열쇠였습니다. 안전해서 산 것이 아니라 안전하다고 적혀 있어서 샀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릅니다.
무너진 것은 가정 하나였습니다
2006년 말부터 미국 집값이 꺾이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앞서 말한 전제가 무너졌습니다. 플로리다 사람과 캘리포니아 사람은 서로 다른 이유로 부도를 낸 것이 아니라, 집값 하락이라는 똑같은 이유로 동시에 부도를 냈습니다. 상관관계가 낮다는 가정은 집값이 오르는 동안에만 관측되던 착시였습니다.
이 상관관계를 숫자로 다루기 위해 업계가 널리 쓰던 수식이 있었습니다. 과거 데이터를 넣으면 여러 대출이 한꺼번에 망할 확률을 계산해 주는 공식이었는데, 문제는 그 과거 데이터가 미국 집값이 전국적으로 떨어진 적이 거의 없던 시기의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겪어보지 않은 사건의 확률을 과거 자료만으로 추정하면 그 확률은 언제나 0에 가깝게 나옵니다.
모형이 틀렸다는 사실은 처음에 아주 좁은 곳에서 드러났습니다. 2007년 봄 몇몇 서브프라임 전문 대출회사가 문을 닫았고, 여름에는 이 채권에 투자한 헤지펀드들이 돈을 돌려주지 못하겠다며 환매를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가을부터 평가사들의 대규모 강등이 시작됩니다.
강등의 성격이 특이했습니다. 2007년과 2008년에 등급이 내려간 채권 조각 가운데 약 3분의 1이 원래 AAA였습니다. 평균 강등 폭도 2005년과 2006년의 2.5단계에서 2007년 4.7단계, 2008년 5.8단계로 커졌습니다. 몇 개가 조금씩 틀린 것이 아니라 등급 체계 자체가 한꺼번에 어긋났다는 뜻입니다.
평가받는 회사가 수수료를 냅니다
그렇다면 평가사들은 왜 그 위험을 보지 못했을까요. 여기서 구조적인 문제를 하나 짚어야 합니다. 신용평가사는 채권을 사는 투자자가 아니라 채권을 파는 발행사에게서 수수료를 받습니다. 업계에서는 이를 발행자 부담 모형이라고 부릅니다. 평가 대상이 평가비를 내는 구조입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이해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발행사는 여러 평가사를 돌며 어디가 더 높은 등급을 줄지 미리 타진할 수 있습니다. 등급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가면 그만입니다. 이를 등급 쇼핑이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한 곳에서만 등급을 받은 채권이 여러 곳에서 받은 채권보다 나중에 강등될 확률이 높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돈의 규모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무디스가 2006년 구조화금융 부문에서 올린 매출은 8억 8,100만 달러로, 2001년 회사 전체 매출을 넘어섰습니다. 평범한 회사채 하나를 평가하는 것보다 복잡한 구조화 상품 하나를 평가하는 쪽이 수수료가 훨씬 컸습니다. 게다가 이 시장은 사실상 세 회사가 나눠 갖고 있었습니다. S&P와 무디스, 피치의 점유율을 합치면 95퍼센트에 가까웠습니다. 가장 돈이 되는 사업이 가장 검증하기 어려운 사업이었던 셈입니다.
그 뒤 평가사들은 어떻게 되었나
위기 이후 미국 의회와 규제당국은 평가사를 들여다봤습니다. 2010년 제정된 도드-프랭크법은 증권거래위원회 안에 신용평가국을 따로 두고 이들을 감독하게 했습니다. 평가 업무와 영업 업무를 분리하고, 평가 방법론을 공개하며, 과거 등급이 얼마나 맞았는지를 공시하도록 하는 규정도 들어갔습니다.
법적 책임은 형사가 아니라 민사로 정리됐습니다. 2015년 2월 S&P는 미국 법무부와 여러 주정부에 13억 7,500만 달러를 내고 사건을 마무리했습니다. 2017년 1월에는 무디스가 8억 6,400만 달러에 합의했습니다. 이 가운데 4억 3,750만 달러가 연방 벌금이었고 나머지는 21개 주와 워싱턴DC에 배분됐습니다.
무디스 합의에는 사실관계 진술서가 붙었습니다. 무디스는 2004년부터 최고 등급을 주는 기준을 내부적으로 더 느슨하게 적용하면서 시장에는 알리지 않았다는 점, 상업적 고려가 평가 조직 안으로 전달됐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합의문에는 영업과 평가 기능을 분리하고 최고경영자가 준법 여부를 직접 확인하겠다는 약속도 담겼습니다.
다만 세 회사는 지금도 건재합니다. 등급을 잘못 매긴 일로 임원이 형사처벌을 받은 사례는 사실상 없습니다. 발행자가 수수료를 내는 구조 역시 본질적으로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고쳐진 것은 절차와 공시였고, 돈이 흐르는 방향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남는 것
이 이야기에서 가장 서늘한 대목은 누군가 거대한 음모를 꾸몄다는 것이 아닙니다. 각 단계마다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서 나름 합리적으로 행동했는데 전체로는 재앙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대출 담당자는 어차피 팔아넘길 대출이라 꼼꼼히 보지 않았고, 발행사는 등급을 잘 주는 곳을 골랐고, 평가사는 고객을 잃지 않으려 했고, 투자자는 세 글자를 믿었습니다.
등급이나 목표주가 같은 이름표는 판단을 대신해 주는 물건이 아니라 누군가의 판단을 요약한 물건입니다. 그 요약을 누가 만들었고 그 사람은 어디서 돈을 받는지를 한 번 확인해 보는 습관은, 상품이 복잡할수록 더 값어치가 있습니다. 설명을 들었는데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 공부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구조가 지나치게 복잡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모든 위험 계산의 밑바닥에는 늘 가정이 하나씩 깔려 있습니다. 2007년에 무너진 것은 어려운 수식이 아니라 집값이 전국에서 동시에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문장 하나였습니다. 어떤 모형이나 전망을 보든 그것이 어떤 세상을 전제하고 있는지를 묻는 일이, 결국 가장 오래가는 방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