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밀리초를 위해 산을 뚫었습니다
2026-10-13 · 20분 읽기
2009년 겨울,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앨러게니 산맥의 어느 골짜기에서 암석 절단기가 밤새 돌아갔습니다. 포브스는 당시 현장을 전하면서, 톱날이 겨울 공기 속에서 하얗게 달아오를 정도였다고 적었습니다. 화강암과 편암이 뒤섞인 구간에서는 아무리 잘 되는 날이어도 하루에 약 30미터밖에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같은 공사팀이 평지 농지에서는 하루 3마일을 파냈으니 속도가 50분의 1로 떨어진 셈입니다. 지나가던 주민들은 저 공사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시골에 인터넷을 깔아주는 사업이라는 말도 돌았고, 정부 비밀 사업이라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실제 목적은 훨씬 단순하면서 훨씬 기이했습니다. 시카고와 뉴욕 사이를 오가는 전자 신호의 왕복 시간을 3밀리초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3밀리초는 1,000분의 3초입니다. 사람이 눈을 한 번 깜빡이는 데 걸리는 시간이 대략 300밀리초이니, 그 100분의 1입니다. 그 100분의 1을 깎기 위해 들어간 돈을 포브스는 약 3억 달러로 추정했습니다.
더 기묘한 것은 그 다음에 벌어진 일입니다. 공사가 끝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이 선은 업계에서 가장 빠른 길이 아니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 회사는 2017년에 1억 2,700만 달러에 팔렸습니다. 들인 돈으로 추정되는 금액의 절반도 안 됩니다. 3밀리초의 값은 왜 그렇게 빨리 사라졌을까요. 그 답을 따라가면 지금 우리가 보는 호가창의 구조가 보입니다.
같은 주식이 두 곳에서 거래될 때
먼저 전제 하나를 정리해야 합니다. 미국의 주식시장은 하나가 아닙니다. 뉴욕증권거래소, 나스닥, 그리고 여러 전자 거래소가 동시에 같은 종목을 거래합니다. 거래소끼리 호가 정보를 주고받지만 그 정보가 이동하는 데는 반드시 시간이 걸립니다. 즉 똑같은 종목의 가격이 아주 짧은 순간 동안 장소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구간이 존재합니다.
시카고에는 선물거래소가 있고, 뉴저지에는 주식 거래소들의 전산센터가 모여 있습니다. 시카고에서는 S&P500 지수선물이 거래됩니다. 선물이란 어떤 지수나 상품을 미래의 정해진 시점에 정해진 값으로 사고팔기로 미리 약속하는 계약입니다. 뉴저지에서는 같은 S&P500 지수를 그대로 담은 상장지수펀드가 주식처럼 거래됩니다. 결국 같은 지수를 두 가지 방식으로, 1,000킬로미터 넘게 떨어진 두 장소에서 동시에 거래하는 구조입니다.
쉽게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에서 같은 물건을 팝니다. 남대문에서 값이 올랐다는 사실을 1,000분의 몇 초 먼저 알아낸 사람이, 동대문에서 아직 오르지 않은 값으로 그 물건을 사들입니다. 물건을 더 잘 만든 것도 아니고 값을 더 잘 매긴 것도 아닙니다. 오직 순서를 먼저 알았을 뿐입니다.
이 기회의 크기는 학계에서 측정됐습니다. 에릭 부디시, 피터 크램튼, 존 심이 2015년 쿼털리 저널 오브 이코노믹스에 실은 연구에 따르면, 시카고 지수선물과 뉴저지 상장지수펀드 사이의 가격 괴리가 유지되는 시간의 중간값은 2005년 97밀리초에서 2011년 7밀리초로 줄었습니다. 그런데 이 괴리에서 나오는 금액은 연평균 약 7,500만 달러 수준이었고, 한 번당 벌리는 폭은 지수 0.08포인트 근처에서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성질이 나옵니다. 속도 경쟁은 상대적입니다. 두 번째로 빠른 회사는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2등이 1등보다 0.1밀리초 느리다면, 그 0.1밀리초 때문에 기회 전체를 놓칩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조금 더 빨라지는 데 들이는 돈의 상한이 사실상 사라집니다. 3억 달러짜리 공사가 경제적으로 설명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2007년, 지도 위에 자를 올린 사람
이 공사를 떠올린 사람은 댄 스파이비입니다. 포브스가 2010년에 그를 소개할 때 나이는 마흔이었습니다. 시카고에서 트레이더로 일했던 그는 2007년에 뉴욕의 한 헤지펀드와 함께 저지연 차익거래 전략을 구상했습니다. 저지연이란 주문과 시세가 오가는 지연 시간을 극도로 줄인 상태를 말합니다. 문제는 그 전략을 실행할 만큼 빠른 회선이 세상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회선을 빌리는 게 아니라 직접 깔자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시카고와 뉴욕을 잇는 통신망은 대부분 철도 용지를 따라 놓여 있었습니다. 인디애나와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의 마을들을 잇는 철길을 따라가다 보니 경로가 구불구불했습니다. 철도는 사람과 화물을 옮기기 위한 길이고, 신호를 가장 빨리 옮기기 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지도에 자를 대고 두 도시를 직선으로 이으면 훨씬 짧아집니다. 스파이비가 계산한 결과, 기존 최단 경로보다 약 100마일을 줄일 수 있었고, 그만큼 왕복 시간이 약 3밀리초 빨라졌습니다. 포브스가 인용한 일리노이공대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자동 매매의 세계에서 3밀리초는 거의 영원에 가까운 시간입니다. 사람에게는 눈 깜빡임의 100분의 1이지만, 기계에게는 수백 번의 판단이 지나가는 시간입니다.
돈을 댄 사람은 1990년대 웹브라우저 회사 넷스케이프를 이끌었던 제임스 바크스데일입니다. 포브스에 따르면 그는 이 사업의 자본을 거의 전부 댔고, 외부 투자자로부터 들어온 돈은 7,500만 달러였습니다. 그가 회장을 맡고 아들 데이비드 바크스데일이 최고경영자를 맡았습니다. 회사 이름은 스프레드 네트웍스였고, 본사는 월스트리트가 아니라 미시시피주 리들랜드에 있었습니다. 2010년 9월 포브스가 월스트리트의 속도 전쟁이라는 기사로 다룰 때까지 이 회사는 업계 바깥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125개 공사팀이 산을 갈랐습니다
흙을 파는 작업은 2009년 3월에는 이미 본격화돼 있었습니다. 포브스에 따르면 많을 때는 125개 공사팀이 동시에 움직였습니다. 주 정부 도로 옆으로 참호를 파서 관을 묻고, 하천과 강 아래로는 터널을 뚫어 통과했습니다. 선 하나를 긋기 위해 수백 곳에서 동시에 땅을 파헤친 것입니다. 한 군데라도 막히면 전체 일정이 밀렸습니다.
경로는 시카고 남쪽 사우스루프의 데이터센터에서 출발해 뉴저지주 카터렛에서 끝났습니다. 카터렛은 나스닥의 전산센터가 있는 곳이고, 스프레드는 그 서버가 있는 건물 바로 건너편에 종점을 두었습니다. 전체 길이는 827마일, 약 1,331킬로미터입니다. 다만 숫자는 출처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2010년 포브스 기사는 825마일에 13.3밀리초로 적었고, 이후 자료들은 827마일을 많이 씁니다. 널리 인용되는 수치도 의외로 흔들린다는 점은 기억해 둘 만합니다.
가장 어려운 곳은 역시 펜실베이니아의 앨러게니 산맥이었습니다. 평지에서 하루 3마일씩 나아가던 공사가 이 구간에서는 하루 30미터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산을 피해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돌아가면 거리가 늘고, 거리가 늘면 시간이 늘고, 시간이 늘면 이 사업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산을 관통하기로 한 그 결정이 비용의 대부분을 만들었습니다.
기술만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스파이비와 데이비드 바크스데일은 카운티 의회와 주 도로 위원회, 수많은 사유지 주인을 직접 찾아다니며 허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오하이오 농촌의 일부 지주들은 자기 땅에 광케이블이 지나가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시카고와 뉴욕의 호가 차이를 1,000분의 3초 먼저 알기 위해 당신의 밭을 파야 한다는 설명을 설득력 있게 만들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총비용은 끝까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포브스는 경로의 절반가량이 개발되지 않은 험지였다는 점을 근거로 약 3억 달러로 추정했습니다. 당시 평지 구간 공사비는 1마일에 약 20만 달러로 통했으니, 827마일을 전부 쉬운 지형으로 깔았다면 2억 달러에 한참 못 미쳤을 것입니다. 3억 달러는 회사가 확인한 수치가 아니라 추정치입니다. 선로는 2010년 6월에 공개됐고 마지막 접합은 같은 해 7월에 끝났습니다.
아무도 그게 뭔지 몰랐습니다
이 공사가 수년간 비밀이었던 이유는 명확합니다. 목적이 알려지면 경쟁자가 같은 것을 만들거나, 더 나쁜 경우 더 짧은 경로를 찾아 먼저 만듭니다. 이 사업의 가치는 전부 1등이라는 자리에 있었으므로 비밀 유지는 전제였습니다. 그래서 스프레드는 공사가 거의 끝날 때까지 영업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데이비드 바크스데일은 포브스에 대형 투자은행들을 늦게까지 피하는 방식으로 입단속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수백 개 공사팀이 미국 동부를 가로지르는데도 목적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손꼽히는 보안 사례입니다.
가격은 어떻게 매겼을까요. 회사는 요금과 고객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포브스가 인용한 애널리스트 도나 재거스는 스프레드가 낮은 지연이라는 우위 덕분에 통상 요금의 8배에서 10배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봤습니다. 비교하자면 당시 얼라이드 파이버는 시카고와 뉴욕을 잇는 20년 임대를 120만 달러에, 서버 공간과 유지비로 연 23만 5,000달러를 받고 있었습니다.
가장 널리 인용되는 수치는 마이클 루이스의 책에서 나왔습니다. 스프레드가 트레이딩 회사 한 곳당 5년에 약 1,060만 달러를 받기로 했고, 이 선로가 200개 회사를 수용할 수 있었다는 서술입니다. 장비까지 포함한 선납 총액이 1,400만 달러 수준이었다는 이야기도 함께 돕니다. 다만 이 숫자들은 회사가 확인한 적이 없고, 책과 그 뒤를 따라간 보도를 통해 그렇게 알려져 있는 것입니다. 확인되는 사실은 회사가 요금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업계가 그것을 기존 요금의 몇 배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판매 방식도 흥미롭습니다. 스프레드는 한 곳에 독점으로 넘기는 방안을 접었다고 전해집니다. 어떤 은행이나 헤지펀드도 수십억 달러를 한 번에 쓰지는 않을 것이라고 봤고, 한 회사가 가장 빠른 길을 독점했다는 머리기사도 피하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회사에 같은 조건으로 팔았습니다. 이 방식에는 묘한 힘이 있습니다. 사면 유리해지는 상품이 아니라 안 사면 불리해지는 상품이 되기 때문입니다. 가격은 기대 이익의 크기가 아니라 뒤처짐의 공포가 결정합니다.
완공 직후, 더 빠른 길이 나타났습니다
선로가 완성된 뒤 길어도 몇 년 안에, 업계에는 다른 방식이 등장했습니다. 땅을 파는 대신 전파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시카고와 뉴저지 사이에 마이크로웨이브 중계탑을 세우고, 공기를 통해 신호를 보내는 방식입니다. 맥케이 브러더스, 트레이드웍스 같은 회사들이 이 시장에 들어왔습니다. 이들이 제시한 왕복 시간은 8.2밀리초에서 8.5밀리초 수준이었습니다.
숫자를 나란히 놓으면 상황이 분명해집니다. 스프레드의 선로는 처음 13.3밀리초였고, 2012년 10월에는 13.1밀리초에서 12.98밀리초로 다듬어졌습니다. 0.1밀리초를 더 깎기 위해 장비와 설정을 손봤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전파망은 8.2밀리초였습니다. 광케이블이 몇 년에 걸쳐 0.3밀리초를 깎는 동안 전파는 단번에 4밀리초 이상을 앞서갔습니다. 3밀리초를 사려고 3억 달러를 쓴 사업이 4밀리초 차이로 2등이 됐습니다.
경제적 결과는 분명했습니다. 2017년 11월 27일, 통신 회사 자이오 그룹은 스프레드 네트웍스를 현금 1억 2,700만 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추정 공사비 3억 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금액입니다. 이렇게 짧은 기간에 이렇게 또렷하게 가치가 깎인 인프라 자산은 드뭅니다. 기술이 고장 났기 때문이 아니라 더 빠른 방식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다만 광케이블이 쓸모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전파에는 약점이 있습니다. 한 번에 보낼 수 있는 데이터 양이 작고, 비와 눈과 안개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업계는 두 가지를 같이 씁니다. 체결 판단에 꼭 필요한 핵심 신호는 전파로 먼저 보내고, 호가창 전체 같은 큰 데이터는 광케이블로 보냅니다. 사라진 것은 선로의 쓸모가 아니라 희소성입니다. 스프레드가 판 것은 통신 용량이 아니라 가장 빠른 길이라는 자리였고, 그 자리가 다른 매체에 넘어가자 가격의 근거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빛은 유리 속에서 느려집니다
그런데 왜 공기가 유리보다 빠를까요. 여기서 고등학교 물리 수준의 이야기 하나가 필요합니다. 빛의 속도가 초속 약 30만 킬로미터라는 말은 진공에서의 속도입니다. 빛이 무언가를 통과할 때는 그 매질 때문에 느려집니다. 광케이블의 심은 유리입니다. 유리 안에서 빛은 초속 약 20만 킬로미터로 달립니다. 진공의 3분의 2 수준입니다.
이 느려짐의 정도를 숫자로 표현한 것이 굴절률입니다. 공기의 굴절률은 1에 가깝고, 광케이블 유리는 1.5 안팎입니다. 굴절률이 1.5라는 것은 그 안에서 빛이 1.5배 더 오래 걸린다는 뜻입니다. 같은 거리를 가도 유리 속 왕복 시간이 공기보다 약 50퍼센트 깁니다. 스프레드가 산을 뚫어 거리를 줄인 것은 대단한 일이었지만, 매질 자체를 바꾼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분자를 줄였지만 분모는 그대로 뒀습니다.
거리도 다시 봐야 합니다. 광케이블은 땅을 파야 하기 때문에 완전한 직선이 될 수 없습니다. 도로를 따라가고 강을 피해 돌면서 827마일이 됐습니다. 하지만 시카고와 카터렛을 지구 표면 위 최단 거리로 이으면 약 740마일, 1,190킬로미터 정도입니다. 이 거리를 공기 중에서 빛의 속도로 왕복하면 약 7.9밀리초에서 8밀리초가 나옵니다. 물리가 허용하는 최저치입니다.
전파망이 내놓은 8.2밀리초가 이론적 하한에 거의 붙어 있다는 뜻입니다. 시카고와 뉴욕 사이의 속도 경쟁은 그 지점에서 사실상 끝났습니다. 더 줄일 여지가 0.3밀리초쯤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신 경쟁은 다른 종류로 옮겨갔습니다. 마이크로웨이브는 송신탑과 수신탑이 서로 보이는 곳에 있어야 하므로 수십 킬로미터마다 탑을 세워야 하는데, 그 부지와 주파수 허가를 확보하는 싸움이 새 전장이 됐습니다. 땅을 파는 전쟁이 땅을 사는 전쟁으로 바뀐 것입니다.
바다를 건너, 하늘을 지나
육지에서 끝난 경쟁은 바다로 넘어갔습니다. 대서양에는 중계탑을 세울 수 없으니 다시 광케이블입니다. 2015년 9월, 하이버니아 네트웍스는 하이버니아 익스프레스라는 해저 케이블의 개통을 알렸습니다. 캐나다 핼리팩스에서 영국 브린까지 약 4,600킬로미터를 직선으로 이었고, 기존 경로보다 약 500킬로미터 짧았습니다. 뉴욕과 런던 사이 왕복 시간은 58.95밀리초 미만이라고 발표됐습니다. 종전 최고 기록보다 약 6밀리초 빠른 수치입니다.
이 케이블에 들어간 돈은 2억 7,000만 유로로 보도됐습니다. 업계에는 100킬로미터를 줄이면 약 1밀리초가 줄어든다는 어림 규칙이 있는데, 500킬로미터를 줄여 6밀리초를 얻은 것이 대략 그 규칙과 맞습니다. 가격에 대해서는 블룸버그가 익명의 트레이더를 인용해, 가장 빠른 등급이 5년에 최대 2,000만 달러, 월 약 33만 달러 수준이라고 보도했습니다. 62밀리초대의 느린 등급은 월 3만 5,000달러 선으로 전해졌습니다. 회사는 고객을 공개하지 않았고 최고경영자는 상당한 프리미엄이라고만 말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레이저도 등장했습니다. 뉴저지 안에서도 거래소 전산센터들은 몇십 킬로미터씩 떨어져 있습니다. 세카커스와 카터렛 같은 지점을 잇기 위해 아노바 파이낸셜 네트웍스 같은 회사들이 공기 중으로 레이저를 쏘는 자유공간 광통신을 도입했습니다. 광케이블 없이 빛을 그냥 공기로 보내는 방식이니 유리를 통과하지 않아 더 빠릅니다. 대신 안개와 폭우에 약합니다. 군용으로 개발된 광학 기술이 거래소 사이를 잇는 데 쓰이게 된 것입니다.
최근에는 단파 라디오가 거론됩니다. 2메가헤르츠에서 25메가헤르츠 사이의 전파는 전리층에 부딪혀 반사되며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갑니다. 송신소와 수신소 한 쌍으로 대륙과 바다를 건널 수 있다는 뜻입니다. 2023년 미국에서는 디알더블유, 아이엠씨, 점프 트레이딩, 버투, 옵티버, 타워 리서치 같은 회사들이 모인 단체가 연방통신위원회에 정식 상업 운용 허가를 청원했습니다. 1940년대 이후 가장 큰 단파 규정 절차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여기서 더 나가면 구상의 영역입니다. 2012년 3월 뉴욕에서 열린 한 업계 행사에서는 태양광 드론을 대서양 상공에 일정 간격으로 띄워 전파 중계기로 쓰자는 제안이 나왔습니다. 성층권에 기구를 올리자는 이야기도, 중성미자로 신호를 보내자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모두 제안 수준이었고 실제 운용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런 말이 농담으로 치부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 경쟁의 온도를 보여줍니다.
플래시 보이스가 터뜨린 논쟁
이 세계가 일반 투자자에게 알려진 계기는 한 권의 책입니다. 마이클 루이스의 플래시 보이스가 2014년 3월 31일에 나왔습니다. 출간 하루 전 그는 미국 시사 프로그램 60분에 나와, 미국 주식시장이 조작되어 있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책은 뉴욕타임스 논픽션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3주간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1장이 바로 스프레드 네트웍스 이야기입니다.
책의 주인공은 브래드 카츠야마라는 캐나다 출신 트레이더입니다. 그는 대형 주문을 내려고 화면의 호가를 클릭하는 순간, 그 호가가 사라지는 경험을 반복했습니다. 화면에는 분명 10만 주가 그 가격에 있었는데, 주문을 보내면 일부만 체결되고 나머지는 더 나쁜 가격으로 밀렸습니다. 여러 거래소에 걸친 주문이 가까운 거래소에 먼저 닿고, 그 정보가 먼 거래소로 가는 사이에 가격이 조정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책의 설명입니다.
가장 치열하게 다퉈진 지점은 용어였습니다. 책은 이 현상을 선행매매라는 단어로 묘사했습니다. 선행매매란 원래 증권사가 고객의 주문 정보를 미리 알고 그 앞에 끼어들어 거래하는 명백한 불법 행위를 가리킵니다. 반면 책이 다룬 것은 공개된 호가 정보를 더 빨리 읽어서, 다른 거래소에서 먼저 체결하는 행위입니다. 법적 성격이 다릅니다. 금융 칼럼니스트 매트 레빈 등은 이 용어가 섞여 쓰인 탓에 논쟁이 엉켰다고 지적했습니다.
업계의 반론도 거셌습니다. 트레이드웍스의 최고경영자 마노지 나랑은 이 책이 사실보다 픽션에 가깝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비평가는 루이스가 고빈도 트레이더를 단 한 명도 인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슬레이트의 펠릭스 새먼은 피해가 주로 헤지펀드 같은 부유한 중개자에게 한정된다고 봤습니다. 2014년 4월 29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 메리 조 화이트는 의회에서 미국 시장은 조작되어 있지 않다고 증언했습니다.
루이스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내가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현 체제에서 돈을 벌고 있다는 것입니다. 양쪽이 서로의 동기를 의심하는 구도로 굳었고, 그 뒤 10년이 지난 지금도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이 논쟁에는 2010년 5월 6일 다우지수가 몇 분 만에 폭락했다가 되돌아온 플래시 크래시 사건이 늘 함께 언급되는데, 원인과 성격이 다른 별개의 사건이라 이 글에서는 더 다루지 않겠습니다.
속도 방지턱이라는 발명
카츠야마가 내린 결론은 더 빨라지겠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속도 경쟁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거래소를 만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2012년에 설립된 회사가 아이이엑스, 정식 이름은 인베스터스 익스체인지입니다. 카츠야마와 로넌 라이언이 함께 세웠고, 2013년 10월 25일에 거래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거래소가 아닌 대체거래 플랫폼 지위였습니다.
이 거래소의 핵심 장치가 속도 방지턱입니다. 방식은 놀랄 만큼 단순합니다. 38마일, 약 61킬로미터 길이의 광섬유를 둥글게 감아 상자에 넣고, 그것을 주문 체결 장치 앞에 두었습니다. 들어오는 모든 주문은 이 유리 뭉치를 통과해야 합니다. 그래서 편도로 약 350마이크로초가 더 걸립니다. 1마이크로초는 100만분의 1초이니, 350마이크로초는 1,000분의 0.35초입니다. 사람은 전혀 느낄 수 없는 시간입니다.
소프트웨어로 지연을 거는 방법도 있었지만 일부러 물리적 코일을 썼습니다. 프로그램으로 지연을 넣으면 거래소가 특정 참가자에게만 몰래 다르게 적용할 수 있다는 의심을 받습니다. 눈으로 보고 자로 재볼 수 있는 유리 뭉치는 그런 의심을 받지 않습니다. 모두에게 똑같이 느려지는 장치를 눈에 보이게 두는 것, 그것이 설계의 핵심이었습니다. 신뢰를 코드가 아니라 물리로 보장한 셈입니다.
작동 원리는 이렇습니다. 속도 방지턱이 없으면 여러 거래소에 걸친 주문 중 가까운 쪽이 먼저 체결되고, 그 정보를 읽은 참가자가 다른 거래소에서 가격을 조정할 시간이 생깁니다. 모든 주문을 동일하게 350마이크로초 늦추면 거래소가 그 사이에 바깥 시세를 다시 확인해 호가를 갱신할 수 있습니다. 먼저 아는 쪽의 우위가 그만큼 줄어듭니다.
2016년 6월 17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아이이엑스를 정규 증권거래소로 승인했습니다. 쟁점은 규정상 호가가 즉시 접근 가능해야 한다는 조항이었고, 위원회는 의도적 지연이 1밀리초 미만이면 무시할 만한 수준으로 본다는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반대편에서는 속도를 제한하는 시장은 유동성이 줄고 가격 발견 비용이 커진다고 주장했습니다. 승인 이후 뉴욕증권거래소 계열의 한 시장도 유사한 방지턱을 도입했고, 아이이엑스의 점유율은 2021년 2월 기준 약 2.4퍼센트였습니다. 아이디어는 제도로 인정받았지만 시장 전체를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좁아진 호가와, 보이지 않는 비용
고빈도 매매가 시장에 좋았는가 나빴는가. 이 질문에는 양쪽 다 꽤 단단한 근거가 있습니다. 먼저 유리해졌다는 쪽입니다. 전자 거래와 알고리즘 매매가 늘어나면서 호가 간격이 눈에 띄게 좁아졌습니다. 호가 간격이란 지금 당장 살 수 있는 가격과 팔 수 있는 가격의 차이입니다. 개인이 주식을 사고 바로 되팔면 이 간격만큼은 그냥 손실입니다. 즉 호가 간격은 개인이 실제로 내는 거래 비용입니다.
1990년대의 수동 시장과 비교하면 차이가 뚜렷합니다. 당시에는 사람이 호가를 외치고 적는 구조여서 간격이 지금의 몇 배였습니다. 테런스 헨더숏, 찰스 존스, 알버트 멘크벨트가 2011년에 발표한 연구는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주문 전달이 자동화된 이후 유동성이 개선되는 흐름을 보고했습니다. 상시로 호가를 대주는 시장조성자가 전자화되면서 수가 늘고 수수료도 떨어졌습니다. 개인이 작은 금액으로도 즉시 체결할 수 있게 된 것은 이 변화의 결과입니다.
비용을 떠넘긴다는 쪽의 주장은 결이 다릅니다. 호가 간격이 좁아진 것은 인정하되, 화면에 보이는 그 좁은 호가가 정말로 거래 가능한 호가인지를 묻습니다. 큰 주문을 내면 호가가 사라지고, 실제 체결 평균 가격은 화면에 보였던 가격보다 나쁩니다. 이 차이는 거래 비용 통계에 잘 잡히지 않습니다. 보이는 가격이 좋아진 대신, 보이는 가격과 실제 가격의 괴리가 생겼다는 지적입니다.
앞서 언급한 부디시, 크램튼, 심의 연구는 이 논쟁에 중요한 수치를 보탰습니다. 속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차익 기회가 유지되는 시간은 97밀리초에서 7밀리초로 짧아졌지만, 한 번 열릴 때의 이익 크기는 거의 줄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경쟁은 상금의 크기를 줄이지 못하고 상금을 누가 가져갈지만 바꿨습니다. 저자들은 이를 시장 설계에 내장된 상수라고 표현하고, 그 비용은 결국 주문을 내는 투자자들이 조금씩 부담한다고 봤습니다. 대안으로는 주문을 100밀리초 단위로 모아 같은 가격에 한꺼번에 체결하는 일괄 경매를 제시했습니다.
두 주장을 공평하게 보면, 서로를 완전히 반박하지 않습니다. 개인이 소액으로 즉시 체결할 때 내는 비용은 분명히 내려갔습니다. 동시에 정보의 순서에서 생기는 비용은 사라지지 않고 형태만 바뀌었습니다. 어느 쪽이 더 큰지는 측정 방법에 따라 결론이 갈리고, 그래서 10년이 지나도 논쟁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양쪽 중 하나가 거짓말을 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서로 다른 것을 재고 있어서입니다.
한국 시장은 어디쯤 와 있을까
한국에서도 이 흐름이 진행 중이지만, 미국처럼 자료가 많이 공개돼 있지는 않습니다. 확인되는 것부터 보겠습니다. 정부와 한국거래소는 2023년 1월 25일 고속 알고리즘 거래자 등록 제도를 시행했습니다. 일정 기준을 넘는 고속 거래자는 거래소에 미리 등록하고 고유 식별 코드를 받아야 하며, 거래소가 등록자별로 거래를 모니터링하는 구조입니다. 석 달의 유예를 거쳐 2023년 4월 25일부터 의무화됐습니다. 집계 자체가 이때부터 시작됐다는 점도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집계에 따른 수치는 이렇습니다. 2023년 고속 알고리즘 거래의 거래대금은 1,647조 4,390억 원으로 전체의 29.08퍼센트였습니다. 2024년에는 2,072조 7,047억 원으로 늘어 비중이 37.17퍼센트가 됐습니다. 같은 기간 전체 주식시장 거래대금은 5,663조 원에서 5,574조 원으로 오히려 줄었습니다. 시장 전체가 줄어드는 동안 고속 거래만 25.8퍼센트 늘어난 것입니다.
통로는 직접 주문 전용선, 업계에서 디엠에이라고 부르는 방식입니다. 증권사의 일반 주문 화면을 거치지 않고 거래 시스템을 거래소에 직접 연결합니다. 보도에 따르면 일반 투자자가 쓰는 주문 프로그램의 처리 속도가 0.02초에서 0.05초 수준인데, 전용선은 그보다 훨씬 빠릅니다. 다만 거래소 전산실 안에 자기 서버를 들여놓는 미국식 코로케이션과 한국의 제도가 같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공개 자료가 제한적이라 확인되는 범위에서만 적습니다.
제재 사례도 있습니다. 2023년 1월 26일 증권선물위원회는 미국 시타델증권에 시장질서 교란행위로 과징금 118억 8,000만 원을 의결했습니다. 2017년 10월부터 2018년 5월까지 메릴린치 서울지점을 통해 264개 종목, 6,796개 거래 구간에서 체결 의사가 의심되는 주문을 넣고 짧은 시간에 취소하는 행위를 반복했다는 것이 당국의 판단입니다. 회사는 적용 법규와 국제 관행을 모두 지켰다는 입장이며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불복 의사를 밝힌 사안이므로 사실관계만 적어 둡니다.
속도와 공정성 문제를 한국이 먼저 다퉈 본 사건도 있습니다. 2010년대 초반의 이엘더블유 스캘퍼 사건입니다. 증권사들이 일부 초단기 투자자에게 빠른 전용 회선과 전용 서버를 제공해 주문이 먼저 처리되게 했다는 혐의로 경영진과 직원들이 기소됐습니다. 2014년 1월 16일 대법원은 관련자들에게 무죄를 확정했고, 금품을 받은 직원 한 명의 유죄만 유지됐습니다. 속도를 차등 제공하는 것이 법적으로 어디까지 문제인지 한국 법원이 한 번 답을 낸 사건입니다.
그리고 2025년 3월 4일, 한국 첫 대체거래소 넥스트레이드가 문을 열었습니다. 같은 종목이 한국거래소와 넥스트레이드에서 동시에 거래되는 구조가 생긴 것입니다. 체결 수수료는 한국거래소보다 20퍼센트에서 40퍼센트 낮게 설정됐습니다. 투자자가 시장을 지정하지 않으면 증권사의 자동 주문 전송 시스템이 더 유리한 쪽으로 보냅니다. 자본시장연구원 분석으로는 2025년 4월 초 기준 국내 증권사 50곳 가운데 15곳만 두 시장 모두를 대상으로 이 시스템을 운용했습니다. 이 글 앞부분에서 본 미국식 구조의 입구에 한국도 들어선 셈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남는 것
남은 논쟁은 가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산을 뚫어 만든 3밀리초가 세상에 무엇을 더했는가. 비판하는 쪽의 답은 간결합니다. 아무것도 더하지 않았다, 차익이 어떤 회사에서 다른 회사로 옮겨갔을 뿐이다, 그 돈으로 다리나 학교를 지었다면 실물이 남았을 것이다. 반대쪽의 답도 있습니다. 그 경쟁 과정에서 통신과 데이터센터 기술이 빠르게 발전했고, 거래 비용이 내려가 일반 투자자가 혜택의 일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만든 가치와 옮긴 가치가 섞여 있어 하나를 고르기 어렵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 있습니다. 그 케이블은 지금도 쓰이고 있습니다. 가장 빠른 길이라는 자리는 잃었지만 시카고와 뉴욕을 잇는 통신 자산으로 남았습니다. 투자 수익률로는 실패했고 물리적 유산으로는 남은, 애매한 결말입니다.
개인투자자가 이 이야기에서 가져갈 것은 종목이 아니라 구조를 보는 눈입니다. 첫째는 우위의 수명입니다. 3억 달러짜리 우위가 몇 년을 버티지 못했습니다. 스파이비는 거리를 줄였지만 빛이 통과하는 매질을 바꾸지는 못했고, 매질을 바꾼 쪽이 나중에 이겼습니다. 물리 법칙이 보장하는 우위와, 남이 더 좋은 방법을 찾으면 깨지는 우위는 전혀 다릅니다. 기업의 경쟁력을 볼 때도 같은 질문이 유효합니다.
둘째는 자기가 서 있는 경기장을 아는 것입니다. 마이크로초 단위의 경쟁은 설비와 자본의 싸움입니다. 밀리초가 의미를 갖는 것은 보유 기간이 밀리초인 거래에서입니다. 보유 기간이 며칠이나 몇 주라면 1,000분의 1초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어떤 기법이 유리하다는 말이 아니라, 경기장이 다르면 규칙도 다르다는 뜻입니다.
셋째는 화면의 가격을 조금 다르게 보는 일입니다. 우리가 보는 호가는 방금 전의 사진입니다. 특히 거래량이 적은 종목이나 변동이 큰 순간에는, 보이는 가격과 실제 체결되는 가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주문을 내는 것과 모르고 내는 것은 다릅니다. 플래시 보이스의 주인공이 처음 이상하게 느꼈던 것도 바로 그 간극이었습니다. 그는 그 간극을 설명하기 위해 거래소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앨러게니 산맥의 그 구간은 지금도 거기 있습니다. 하루 30미터씩 암석을 썰어 만든 길, 그 안에 묻힌 유리섬유 몇 가닥. 3밀리초를 사기 위해 사람들이 산을 뚫었다는 사실은, 시장이 무엇에 값을 매기는지를 다른 어떤 설명보다 또렷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값이 얼마나 빨리 무너질 수 있는지도 같이 보여줍니다. 시장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는 것은 대개 가장 빨리 흔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3억 달러짜리 터널이 남긴 가장 값싼 교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