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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유리, 얇은 유리, 그리고 랴잔의 고기

소련은 세계에서 신발을 가장 많이 만드는 나라였습니다. 미국 기자 스콧 셰인이 소련 붕괴 과정을 기록한 저서에서 정리한 수치에 따르면 연간 생산량은 8억 켤레였습니다. 이탈리아의 두 배, 미국의 세 배, 중국의 네 배였습니다. 인구로 나누면 한 사람이 매년 세 켤레 넘게 받을 수 있는 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소련 시민들은 수입 신발을 사려고 몇 시간씩 줄을 섰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8억 켤레 안에 자기 발에 맞는 치수와 신고 싶은 디자인이 없었던 것입니다. 공장은 할당량을 채웠고, 통계는 세계 1위를 기록했고, 사람들은 신을 신발이 없었습니다. 생산량이라는 숫자와 사람들이 실제로 원한 것 사이에 이렇게 큰 구멍이 생긴 체제가 어떻게 작동했는지는, 경제사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질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질문의 답으로 가장 널리 소개되는 사례가 창문 유리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출처를 특정하기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오늘은 그 유명한 일화를 먼저 짚고, 이어서 소련의 지표 왜곡을 문서로 입증하는 실제 기록들을 함께 보겠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보다 남아 있는 기록이 더 흥미롭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무게로 재면 두꺼워지고 면적으로 재면 얇아진다

전해지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소련의 국가계획위원회 고스플란이 유리 공장의 성과를 무게로 평가하자, 공장들은 할당량을 빨리 채우려고 지나치게 두껍고 무거운 유리판을 찍어냈습니다. 이 유리는 창틀에 끼우기도 어려웠고 빛도 제대로 통과시키지 못했습니다. 당국이 평가 기준을 면적으로 바꾸자 이번에는 반대 방향으로 뒤집혀, 공장들이 극도로 얇은 유리를 쏟아냈고 운반 도중에 대부분 깨졌다는 것입니다.

같은 구조의 이야기가 못 공장에도 붙어 다닙니다. 평가 기준이 개수일 때는 실처럼 가늘어 쓸 수 없는 못을 수천만 개 찍어내고, 기준이 무게로 바뀌면 어디에도 박을 수 없는 거대한 못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소련의 풍자 잡지 크로코딜에 거대한 샹들리에 하나로 이번 달 생산 목표를 무게 기준 100퍼센트 달성했다는 만평이 실렸다는 이야기도 함께 인용됩니다.

이 이야기들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지만 자주 인용됩니다. 유리 일화의 경우 어느 공장, 어느 연도, 어떤 문서에서 나온 것인지를 밝힌 인용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크로코딜은 1922년에 창간해 노동자신문과 프라우다가 발행한 실제 잡지이고, 관료의 무기력과 현장의 비효율을 꾸준히 풍자했으니 그런 만평이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다만 몇 년 몇 호에 실렸다는 확인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일화들은 경제학 수업에서 쓰는 사고 실험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정확합니다. 지표를 무게로 걸면 무거워지고 면적으로 걸면 넓어진다는 점을 한 문장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교육용으로는 훌륭합니다. 다만 역사적 사례로 인용하려면 근거가 약합니다. 그러면 실제 기록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다행히 이쪽은 자료가 아주 풍부합니다.

고스플란이 실제로 붙잡고 있던 숫자

소련의 계획 방식은 물적 균형 계획이라고 불립니다. 철강이 몇 톤 생산되면 그 철강이 어느 공장으로 몇 톤씩 가고 거기서 무엇이 몇 개 나오는지를 표로 맞추는 방식입니다. 가격을 통한 조정 대신 수량을 직접 맞춥니다. 문제는 규모였습니다. 1973년 기준으로 고스플란이 균형표를 직접 작성한 품목은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1,943개였고, 이것이 전체 공업 생산의 약 70퍼센트를 덮었습니다.

수천만 종류의 물건이 오가는 경제를 2천 개 남짓한 균형표로 운영한다는 뜻입니다. 연구자들은 소련 경제의 만성적인 공급 문제가 바로 이 거친 집계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합니다. 균형표가 지나치게 뭉뚱그려져 있어서 정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유리가 몇 제곱미터 필요한지는 계획에 들어가도, 어떤 두께의 유리가 어느 현장에 몇 장 필요한지는 계획이 담을 수 없었습니다.

시장경제에서 이 역할을 하는 것이 가격입니다. 가격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정보 전달 장치입니다. 어떤 물건이 부족하면 가격이 올라 더 많이 만들라는 신호가 되고, 남으면 가격이 내려 그만 만들라는 신호가 됩니다. 수많은 소비자의 선호와 자원의 희소성이 숫자 하나에 압축되어 전해지는 셈입니다. 계획경제는 이 신호를 제도적으로 없앴기 때문에, 무엇을 얼마나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다른 방법으로 구해야 했습니다.

헝가리 경제학자 야노시 코르나이는 1980년 저서 부족의 경제학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습니다. 그의 핵심 주장은 계획경제의 만성적 부족이 계획 담당자들의 실수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부족은 체제의 구조에서 나오는 결과였고, 소비재와 서비스뿐 아니라 생산 설비와 원자재까지 경제의 모든 영역에 걸쳐 나타났습니다. 실수를 고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프리피스키, 서류에만 존재한 생산

지표 중심 체제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은 유리 두께 조절보다 훨씬 직접적이었습니다. 러시아어로 프리피스키라고 불리는 관행입니다. 덧붙인 것이라는 뜻인데, 쉽게 말해 계획 사기입니다. 만들지 않은 생산물을 만들었다고 보고하는 회계 조작으로, 명령형 경제 특유의 현상이었습니다. 보고된 숫자와 실제 생산 사이의 차액이 바로 그 덧붙인 부분입니다.

동기는 뚜렷했습니다. 할당량을 채우면 승진과 보너스가 따라오고 감시도 줄었습니다. 반대로 못 채우면 공장장과 당 간부가 함께 책임을 졌습니다. 그래서 조작의 이익은 경영진과 노동자가 나눠 가졌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일부 비리가 아니라 체제 전반의 작동 방식에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연구자들은 계획이 빡빡하게 걸린 해에 조작이 늘고 느슨한 해에 줄어드는 패턴까지 확인했습니다.

이것은 추측이 아니라 문서로 남은 사실입니다. 소련 기록보관소 자료에 따르면 1943년부터 1947년 사이에 계획 사기로 재판이 59건 열려 163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1943년부터 1962년 사이에는 공산당 자체 조사가 88건 진행되어 당원 454명의 계획 사기가 입증됐습니다. 당 지도부가 전형적인 사례로 간주해 추려 둔 기록들입니다.

조작 방법도 유형별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창고 재고를 털어 이번 달 생산으로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외부와 짜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미완성품을 완성품으로 보고하려면 받는 쪽의 협조가 필요했고, 품질을 몰래 낮춰 수량을 맞추는 방법도 널리 쓰였습니다. 농업에서는 아직 거두지 않은 작물을 판매 실적으로 올리거나 같은 곡물을 여러 번 집계하는 수법이 있었습니다.

랴잔의 기적

지표 조작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랴잔주 사건입니다. 1957년 5월 22일 흐루쇼프는 미국을 따라잡고 추월하자는 연설로 농업 생산 경쟁에 불을 붙였습니다. 1958년 10월 12일 랴잔주 당 제1서기 알렉세이 라리오노프는 자기 지역의 고기 생산을 한 해에 세 배로 늘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 약속은 1959년 1월 9일 프라우다에 실려 전국에 공표됐습니다.

약속을 지키는 방법은 생산이 아니라 동원이었습니다. 랴잔주는 1959년에 태어난 송아지를 모두 도축했습니다. 집단농장 노동자들이 개인적으로 기르던 가축까지 징발했습니다. 그래도 부족하자 농기구 구입비와 건설 예산으로 배정된 돈을 돌려 이웃 지역에서 고기를 사 왔습니다. 자기 지역의 미래를 그해 숫자와 맞바꾼 셈입니다.

1959년 12월 16일 랴잔은 고기 15만 톤을 납품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전년도 5만 톤의 정확히 세 배였습니다. 약속은 지켜진 것처럼 보였고 라리오노프는 사회주의노동영웅 칭호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1960년의 실제 생산량은 3만 톤으로 떨어졌습니다. 가축 수는 1958년 대비 65퍼센트가 줄어 있었습니다. 세 배를 만들기 위해 기반 자체를 먹어 치운 결과였습니다.

1960년 9월 라리오노프는 해임됐습니다. 그리고 그해 10월 10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는데, 자살이라는 소문이 따라다녔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사후에도 노동영웅 칭호를 박탈당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흐루쇼프의 신뢰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1964년 그가 실각하는 배경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숫자를 위한 숫자가 사람과 지역을 함께 망가뜨린 사례입니다.

부족과 과잉이 동시에 오는 이유

이런 구조가 만든 일상의 풍경은 역설적이었습니다. 창고에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물건이 쌓이는데, 정작 필요한 생필품은 늘 없었습니다. 1980년대 소련에서 아파트를 살 권리를 얻기까지 대기 기간은 10년에서 15년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기본적인 식료품을 구하려 하루에 몇 시간씩 줄을 서는 일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였습니다.

코르나이가 지적한 대로 부족과 과잉은 번갈아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존재했습니다. 생산 주문이 뒤늦게 도착해 이미 필요가 사라진 물건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식이었습니다. 신발 8억 켤레가 바로 그 모습입니다. 총량으로는 세계 최대였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원하는 조합과는 어긋나 있었습니다. 숫자는 넘쳤고 쓸 수 있는 물건은 없었습니다.

정식 유통망이 메우지 못한 자리는 다른 경로가 채웠습니다. 공식 상점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이 비공식 거래로 흘러가는 현상은 워낙 광범위해서, 소련 경제를 연구한 학자들은 이것을 체제의 부차적인 일탈이 아니라 하나의 경제권으로 다뤘습니다. 계획 사기를 분석한 연구자들의 명단에 소련의 비공식 경제를 연구한 이름들이 함께 올라 있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공식 통계가 설명하지 못하는 생활의 상당 부분이 그 영역에서 돌아갔습니다.

이 비효율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소련 경제를 긴 정체로 몰고 갔습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은 이미 굳어 버린 작동 방식을 바꾸기에는 늦었고, 1991년 소련은 해체됐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체제가 무너진 뒤에도 통계 자체가 문제로 남았다는 사실입니다. 조작이 계획의 강도에 따라 늘고 줄었기 때문에, 소련의 공식 성장률 수치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는 지금도 연구 주제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남는 것

유리 이야기의 출처가 희미하다는 사실이 교훈을 무너뜨리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랴잔의 고기와 프리피스키 기록이 같은 결론을 더 단단하게 받쳐 줍니다. 평가 지표 하나를 목표로 못 박으면, 사람들은 그 지표를 정직하게 채우는 대신 가장 빠르게 채우는 길을 먼저 찾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보상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에 어디서나 되풀이됩니다.

오늘날의 사례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상담원을 통화 건수로만 평가하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전화를 빨리 끊는 쪽이 유리해집니다. 개발자를 작성한 코드 줄 수로 평가하면 불필요하게 긴 코드가 늘어납니다. 측정은 필요하지만, 측정값이 유일한 목표가 되는 순간 그 측정값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기를 멈춥니다.

시장을 보는 눈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기업과 기관이 내놓는 숫자는 대개 누군가의 평가 기준이기도 합니다. 그 숫자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행동을 유도하는지를 함께 보는 습관은, 숫자 자체를 읽는 것보다 종종 더 많은 것을 알려 줍니다. 그리고 유리 이야기처럼 교훈이 선명한 일화일수록 출처를 한 번 확인해 보는 편이 좋습니다. 잘 만들어진 비유와 검증된 사실은 서로 다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