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은 왜 두 번 틀렸나 — 남해회사 버블
2026-09-07 · 7분 읽기
1720년 여름, 런던의 익스체인지 앨리는 사람 두 명이 겨우 비껴 지나갈 만한 좁은 골목이었습니다. 증권거래소가 따로 없던 시절 주식 거래는 이 골목에 모여 있던 커피하우스에서 이루어졌고, 그해 여름에는 밤낮 구분 없이 사람이 들어찼습니다. 그해 1월 128파운드였던 남해회사 주식은 8월에 1,000파운드를 넘어섰습니다. 일곱 달 만에 여덟 배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넉 달 뒤인 12월, 같은 주식의 값은 124파운드였습니다. 오르기 시작한 자리보다 낮은 값입니다.
남해회사는 1711년 영국 재무장관 로버트 할리가 세운 회사입니다. 설립 목적은 무역이 아니라 빚이었습니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을 치르며 영국 정부는 갚을 길이 보이지 않는 채무를 쌓아두고 있었는데, 그중 약 900만 파운드를 이 회사가 떠안는 대신 정부는 회사에 해마다 이자를 지급하고 남아메리카 무역 독점권을 덧붙여 주었습니다. 이름에 바다가 들어가 있지만 실체는 국가 부채를 처리하는 금융 기구였습니다.
무역권은 처음부터 껍데기에 가까웠습니다.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회사가 손에 넣은 것은 스페인령 아메리카에 노예를 공급하는 계약, 그리고 일반 상품을 실은 배 한 해 한 척이 전부였습니다. 회사는 30년에 걸쳐 해마다 4,800명 규모로 노예를 실어 보내기로 했고 실제로 3만 4천 명 남짓을 수송했지만, 스페인과의 전쟁이 되풀이되면서 장부에 남은 이익은 기대에 한참 못 미쳤습니다. 주주들이 희망을 걸 곳은 사업이 아니라 주가뿐이었습니다.
국채를 주식으로 바꾸면 무슨 일이 생기는가
국채는 정부가 돈을 빌리며 써준 차용증입니다. 이자는 꼬박꼬박 나오지만 만기가 멀고 중간에 팔기가 번거로운, 조용한 종이입니다. 남해회사의 제안은 그 조용한 종이를 가져오면 회사 주식으로 바꿔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국채를 들고 있던 사람 입장에서는 이자만 받던 종이가 값이 오를 수도 있는 종이로 바뀌는 셈이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기꺼이 바꿨습니다.
정부도 반길 이유가 있었습니다. 여러 창구로 흩어져 있던 채무가 한 회사로 정리되면 관리가 간단해지고, 교환 과정에서 이자율을 낮춰 잡으면 해마다 나가는 이자도 줄었습니다. 당시 영국은 한 해 세입의 상당 부분을 이자로 내보내고 있었으니, 이자율을 조금만 깎아도 국고에는 큰돈이 남았습니다. 의회가 이 제안에 귀가 솔깃했던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 구조에는 회사 경영진만 또렷하게 알고 있던 성질이 하나 있었습니다. 주가가 높을수록 같은 금액의 국채를 더 적은 수의 주식으로 바꿔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액면 100파운드짜리 국채를 받아줄 때 주가가 200파운드라면 주식 반 장만 내주면 되고, 주가가 1,000파운드라면 10분의 1 장만 내주면 됩니다. 그렇게 아껴 남긴 주식은 회사가 시장에 팔아 현금으로 바꿨습니다. 주가를 끌어올리는 일 자체가 회사의 가장 수익성 높은 사업이었던 것입니다.
1720년 초 남해회사는 정부에 남아 있던 국채 약 3,100만 파운드를 전부 인수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영란은행도 경쟁에 뛰어들어 조건을 올려 불렀고, 입찰 싸움 끝에 그해 4월 의회는 남해회사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 해협 건너 파리에서는 존 로의 미시시피 회사를 둘러싼 더 큰 거품이 터지기 직전이었습니다. 1720년은 영국과 프랑스에서 비슷한 실험이 동시에 진행된 해였습니다.
의회와 궁정을 주주로 만드는 방법
제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경영진이 쓴 방법은 노골적이었습니다. 돈을 받지 않고 주식을 나눠준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대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주식을 장부에만 적어두고, 나중에 시장 가격으로 되팔아 차액만 챙겨 가도록 했습니다. 주가가 1파운드 오를 때마다 얼마를 받는 방식이었으니, 받은 쪽은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주가 상승에 올라탄 셈입니다.
명단에 오른 이름은 가볍지 않았습니다. 국왕 조지 1세의 연인이었던 켄들 공작부인, 재무장관 존 에이즐라비, 선덜랜드 백작, 스탠호프 경이 이런 방식으로 주가 상승분을 받았습니다. 뒤에 의회 조사에서 에이즐라비가 받은 주식은 2만 파운드 규모로 드러났습니다. 조지 1세 본인은 1718년부터 이 회사의 총재를 맡고 있었습니다. 국왕이 이름을 올린 회사라는 사실 하나로 대중의 의심은 상당히 가라앉았습니다.
대중을 끌어들이는 장치도 촘촘했습니다. 회사는 신주를 네 차례에 나눠 팔면서 대금을 할부로 받았습니다. 전체 금액의 10분의 1 남짓만 계약금으로 내면 주식을 손에 쥘 수 있었으니, 평소 주식과 거리가 멀던 사람들까지 시장에 들어왔습니다. 여기에 회사는 자사 주식을 담보로 주주들에게 돈을 빌려주기까지 했습니다. 빌린 돈으로 다시 주식을 사면 주가가 오르고, 주가가 오르면 담보 가치가 올라 또 빌릴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빚으로 투자 규모를 키우는 오늘날의 레버리지와 원리가 같습니다.
소문도 중요한 재료였습니다. 스페인이 남아메리카의 은광을 영국과 나누기로 했다거나, 곧 새 항로가 열린다는 이야기가 커피하우스를 돌았습니다. 회사가 직접 흘린 것도 있었고 저절로 커진 것도 있었습니다. 확인할 방법이 없는 소문은 반박도 불가능했기 때문에, 주가가 오르는 동안에는 모든 소문이 사실처럼 취급됐습니다. 정보가 아니라 기대가 가격을 만들던 시장이었습니다.
거품법은 거품을 막으려고 만든 법이 아니었습니다
열기는 남해회사 한 곳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익스체인지 앨리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 회사가 생겨났습니다. 바닷물을 민물로 바꾸겠다는 회사, 영구동력 기계를 만들겠다는 회사, 머리카락을 사고팔겠다는 회사가 투자자를 모았습니다. 사업 계획을 꼼꼼히 들여다본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일 이 종이를 더 비싸게 사줄 사람이 있느냐였습니다.
이 시기를 이야기할 때 거의 빠지지 않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대단히 유익한 사업을 추진하려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나중에 공개한다”는 안내문만 걸고 투자자를 모은 회사가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300년 가까이 인용되어 왔지만, 이 시기를 파고든 역사가 존 카스웰은 그런 회사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거품의 기록에는 거품 이야기 자체가 부풀려지는 2차 거품이 따라붙는다는 점도 이 사건이 남긴 교훈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편 1720년 6월 11일 영국 의회는 흔히 거품법으로 불리는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국왕의 특허 없이는 주식회사를 세워 자금을 모을 수 없도록 한 법입니다. 이름만 보면 투기를 막기 위한 규제처럼 들리지만, 통과 시점은 주가가 최고점에 이르기 두 달 전이었습니다. 최근 연구들은 이 법의 실제 효과가 남해회사로 흘러갈 돈이 다른 회사로 새는 것을 막아준 쪽에 가까웠다고 봅니다. 투기를 억제한다는 법이 당대 최대 투기 종목의 울타리가 되어준 셈입니다. 이 법은 1825년에야 사실상 폐지되었습니다.
뉴턴은 두 번 틀렸습니다
이 시장에는 아이작 뉴턴도 있었습니다. 당시 뉴턴은 과학자이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1699년부터 왕립 조폐국 장관을 맡아 영국 화폐 제도를 직접 관리하고 있었으니, 돈에 관해서는 당대 누구보다 밝은 자리에 앉아 있던 인물입니다. 수학자 앤드루 오들리즈코가 당시 문서를 추적해 복원한 기록을 보면, 뉴턴은 1720년 초 남해회사 주식을 상당량 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꼭지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1720년 4월 19일에 30주를, 나흘 뒤인 4월 23일에 70주를 팔라는 지시를 남겼습니다. 주가가 아직 오르던 시점입니다. 오들리즈코의 추정으로 이때 뉴턴이 챙긴 이익은 약 2만 파운드였습니다. 당시 뉴턴의 전 재산이 3만 파운드 정도였으니, 한 번의 판단으로 재산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돈을 번 것입니다. 여기서 끝났다면 이 이야기는 교과서에 실릴 모범 사례였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가 팔고 난 뒤에도 주가가 계속 올랐다는 데 있었습니다. 뉴턴은 6월, 주가가 최고점으로 향하던 구간에서 다시 사들였습니다. 이번에는 규모가 전과 달랐습니다. 오들리즈코는 뉴턴이 사실상 전 재산을 남해회사 관련 증권에 넣었다고 봅니다. 1721년 중반 뉴턴의 재산은 2만 파운드 수준으로 줄어 있었습니다. 4월의 이익을 그대로 지켰다면 5만 파운드를 넘었을 돈입니다.
뉴턴이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사람들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문장은 이 사건의 상징처럼 쓰입니다. 다만 뉴턴이 이 말을 했다는 당대 기록은 남아 있지 않고, 한참 뒤에야 전해지기 시작한 이야기입니다. 그가 2만 파운드를 잃었다는 널리 퍼진 숫자 역시 무엇을 손실로 세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값입니다. 문장의 출처는 불확실하지만 상황을 요약하는 힘만은 정확합니다. 영국에서 돈 계산을 가장 잘하는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먼저 번 돈을 되돌려주고 더 많이 잃었습니다.
9월의 붕괴, 그리고 그 뒤에 벌어진 일
무너질 때는 가장 약한 고리부터 끊어집니다. 1720년 9월 남해회사와 깊이 얽혀 있던 소드블레이드 은행이 문을 닫았습니다. 주식을 담보로 돌아가던 대출이 끊기자 주가는 미끄러졌고, 9월에 300파운드대로, 12월에는 124파운드까지 내려왔습니다. 가장 크게 다친 쪽은 할부로 주식을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계약금만 내고 들어왔는데 주가는 반 토막이 났고, 남은 할부금은 그대로 갚아야 했습니다.
피해는 넓게 퍼졌습니다. 귀족부터 하인까지 전 계층이 들어왔던 시장이었으니, 무너질 때도 전 계층이 함께 무너졌습니다. 파산한 사람이 줄을 이었고 분노한 군중이 의사당 앞까지 몰려왔습니다. 물거품처럼 부풀었다가 사라진 이 사건을 가리키던 말이 그대로 굳어, 오늘날 자산 가격의 과열을 뜻하는 거품이라는 표현이 되었습니다. 300년 넘게 쓰이는 단어 하나가 이 해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1721년 의회는 조사에 나섰습니다. 회사 출납 책임자였던 로버트 나이트는 뇌물 명단이 적힌 장부를 들고 프랑스로 달아났습니다. 재무장관 에이즐라비는 가장 악명 높고 위험하며 파렴치한 부패라는 판정과 함께 의원직을 잃고 런던탑에 갇혔습니다. 회사 이사들은 재산을 몰수당했는데, 평균적으로 보유 자산의 82퍼센트가 환수되었습니다. 그 돈은 피해자 구제에 쓰였습니다.
수습을 맡은 사람은 로버트 월폴이었습니다. 그는 남해회사가 떠안고 있던 채무를 영란은행과 동인도회사로 나눠 넘기면서 금융 시스템 전체가 함께 주저앉는 상황만은 막아냈습니다. 다만 월폴은 깨끗한 구원자가 아니었습니다. 그 자신도 이 주식으로 이익을 봤고, 조사의 불길이 궁정과 왕실로 번지지 않게 가로막은 공로로 가림막 대장이라는 뜻의 스크린마스터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는 이 사태를 수습하며 권력을 쥐어, 영국 최초의 사실상 총리로 꼽히는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 뒤의 시간은 조금 허탈합니다. 남해회사는 사라지지 않고 정부 채무를 관리하는 기구로 1853년까지 존속했습니다. 런던탑에서 나온 에이즐라비는 정계를 떠나 자기 영지의 정원을 가꾸는 데 남은 생을 썼습니다. 그가 만든 스터들리 로열의 수경 정원은 오늘날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해마다 많은 관람객을 받습니다. 거품을 만든 쪽의 이름은 대개 이런 식으로 남고, 할부금을 갚다 무너진 사람들의 이름은 한 줄도 남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남는 것
남해회사 사건은 흔히 인간의 탐욕에 관한 이야기로 요약되지만, 구조를 들여다보면 더 차가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회사는 주가가 오르면 실제로 회사의 이익이 늘어나도록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주가를 올릴 이유와 능력과 정보를 한쪽이 모두 쥐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어떤 자산의 값이 유난히 빠르게 오를 때 던져볼 질문은 같습니다. 이 가격이 오르는 것으로 가장 크게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이고, 그 사람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입니다.
뉴턴의 이야기가 서늘한 이유도 그가 어리석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거품을 알아봤고, 이른 시점에 팔았고, 큰 이익을 냈습니다. 그를 무너뜨린 것은 판단력이 아니라 팔고 난 뒤에도 몇 달을 더 오르는 시장을 지켜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계산을 잘하는 능력과 남이 버는 모습을 견디는 능력은 전혀 다른 종류의 것입니다. 이 사건이 300년 동안 인용되는 진짜 이유는 거기에 있습니다.
제도에 관한 교훈도 남습니다. 거품법은 투기를 막겠다는 이름을 달고 정작 투기의 중심은 건드리지 못했고, 엉뚱하게 멀쩡한 회사들의 설립을 100년 넘게 가로막았습니다. 사고가 터진 뒤에 나오는 대응이 늘 정확한 곳을 때리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각자에게 남는 몫은 결국 하나입니다. 내가 들고 있는 종이의 값이 무엇으로 지탱되고 있는지, 사업에서 나오는 돈인지 다음 사람의 기대인지, 스스로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