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목록으로

탱크 속 바닷물이 월가를 삼킨 1963년

1963년 가을, 미국 뉴저지주 베이온의 항구에는 거대한 저장탱크들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서류상 그 안에는 식용유가 90만 쇼트톤 가까이 들어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 전역에 존재하는 대두유와 면실유를 전부 긁어모은 것보다도 많은 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들어 있던 기름은 5만 5천 쇼트톤 남짓이었습니다. 나머지 자리를 채우고 있던 것은 바닷물이었습니다.

이 단순한 사실 하나가 드러나기까지 여러 해가 걸렸고, 드러난 뒤에는 1억 8천만 달러가 넘는 돈이 허공으로 사라졌습니다. 은행과 금융기관 51곳이 물렸고, 뉴욕증권거래소 회원 증권사가 무너졌으며, 미국을 대표하는 금융회사 한 곳이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 사건의 절정은 하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댈러스에서 총에 맞은 바로 그 주에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아수라장 한복판에서, 서른셋의 한 젊은 투자자는 모두가 파는 쪽으로 달려갈 때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갔습니다.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기름이 물에 뜬다는 초등학교 과학 상식이 어떻게 월가를 뒤흔들었는지, 그리고 그 폐허 위에서 누가 무엇을 보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샐러드유 왕이라 불린 남자

주인공의 이름은 앤서니 티노 데 앤젤리스입니다. 1915년 뉴욕에서 태어나 정육 사업으로 잔뼈가 굵은 그는 1955년 뉴저지주 베이온에 얼라이드 크루드 베지터블 오일 리파이닝이라는 회사를 세웠습니다. 콩과 목화씨에서 짜낸 기름을 정제해 식용유로 만들어 파는 회사였습니다. 마침 미국 정부가 남아도는 농산물을 개발도상국에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크게 벌이던 시기였고, 그는 그 흐름에 정확히 올라탔습니다.

사업은 빠르게 커졌습니다. 유럽과 인도로 배를 띄우면서 그는 업계에서 샐러드유 왕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원자재를 대량으로 사고파는 사업에는 공통된 약점이 하나 있습니다. 물건을 미리 사두어야 하는데 그 물건값이 어마어마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원자재 업자들은 창고에 쌓아둔 물건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립니다.

이때 등장하는 종이가 창고증권입니다. 창고회사가 물건을 맡아 보관하면서 이만큼을 보관하고 있음을 증명한다고 써주는 문서인데, 은행은 그 종이를 담보로 잡고 돈을 내어줍니다. 은행 직원이 직접 탱크에 기어올라 기름을 확인할 수는 없으니, 대신 믿을 만한 제삼자가 확인해 주는 구조인 셈입니다. 이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고회사의 신용입니다.

베이온의 탱크를 검수하고 창고증권을 발행한 곳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창고 자회사였습니다. 여행자수표와 신용카드로 이름을 날리던, 미국에서 가장 신용이 단단하다고 여겨지던 바로 그 회사입니다. 아멕스의 이름이 찍힌 종이라면 의심할 이유가 없다고 은행들은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이 이 사건의 진짜 출발점이었습니다.

물은 아래로, 기름은 위로

수법은 허무할 만큼 단순했습니다. 검사원은 탱크 뚜껑을 열고 긴 막대나 관을 넣어 안에 든 내용물의 표본을 떠올린 뒤, 이것이 식용유가 맞는지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기름은 물보다 가볍습니다. 탱크의 대부분을 바닷물로 채우고 맨 위에 기름을 얇게 띄워두면, 위에서 떠올린 표본은 언제나 순도 높은 식용유였습니다.

여기에 몇 가지 장치가 더해졌습니다. 탱크 안에 가짜 칸막이와 관을 설치해 실제로는 비어 있는 공간을 가득 찬 것처럼 보이게 했고, 검사 일정에 맞춰 밤새 탱크 사이로 같은 기름을 옮겨 담아 한 통의 기름을 여러 번 세도록 만들었습니다. 나중에는 이런 수고조차 생략하고 창고증권 자체를 위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렇다면 검사원들은 왜 몰랐을까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창고 운영을 맡으면서 기존에 그 시설에서 일하던 인력을 상당수 그대로 승계했습니다. 감시해야 할 사람과 감시받아야 할 사람이 같은 동네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서류에는 세계 최고 신용도의 회사 이름이 찍혀 있었지만, 실제로 탱크 뚜껑을 여는 손은 전혀 독립적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기가 막히는 대목은 규모입니다. 이 한 곳의 시설이 보관 중이라고 주장한 기름의 양은 미국 전체 재고를 넘어섰습니다. 농무부 통계와 한 번만 대조해 보았다면 곧장 드러났을 숫자입니다. 그러나 51곳에 달하는 돈 빌려준 기관 가운데 누구도 그 대조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들 앞사람이 이미 확인했으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무너진 11월의 사흘

1963년 가을, 데 앤젤리스는 더 큰 판을 벌였습니다. 빌린 돈으로 식용유 선물을 대량으로 사들여 가격 자체를 끌어올리려 한 것입니다. 선물이란 미래의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가격으로 물건을 사고팔기로 미리 약속하는 계약인데, 계약금 성격의 증거금만 걸면 그보다 훨씬 큰 금액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방향이 맞으면 수익이 커지지만, 반대로 가면 손실도 같은 배수로 불어납니다.

11월 중순, 그는 면실유 선물 계약의 대부분을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대하던 소련과의 대두 수출 거래가 어그러지면서 가격이 무너졌습니다. 증거금을 추가로 넣으라는 요구가 쏟아졌지만 그에게는 넣을 돈이 없었습니다. 11월 15일 조사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졌고, 며칠 뒤 얼라이드는 파산을 신청했습니다.

문제는 그의 주문을 받아주던 증권사들이었습니다. 특히 아이라 하우프트 앤 컴퍼니는 고객을 대신해 증거금을 메워주다 스스로 지급불능에 빠졌습니다. 이 증권사는 문제의 창고증권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까지 빌린 상태였기 때문에, 기름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 담보도 함께 증발했습니다. 한 사람의 거짓말이 증권사와 은행을 타고 번져나갔습니다.

그리고 11월 22일,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었습니다. 뉴욕증권거래소는 그날 오후 거래를 조기에 중단했고, 주말 내내 거래소 수뇌부는 두 개의 재앙을 동시에 붙들고 씨름했습니다. 결론은 전례 없는 것이었습니다. 거래소가 3,600만 달러를 내놓아 하우프트에 맡겨져 있던 약 2만 명 고객의 자산을 지켜주기로 한 것입니다. 거래소가 회원사 고객을 위해 직접 지갑을 연 첫 사례였습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 날아든 청구서

돈을 떼인 은행들의 시선은 창고증권에 이름을 올린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로 향했습니다. 창고 자회사에 들어온 청구액은 2억 1천만 달러에 달했는데, 그 자회사가 가진 자산은 13만 달러 남짓이었습니다. 법률적으로 보면 모회사가 반드시 갚아야 할 의무가 명확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자회사를 정리하고 손을 터는 선택지가 분명히 테이블 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영진은 도의적 책임을 지고 변제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일부 주주는 회사 돈을 법적 의무도 없는 곳에 쓴다며 소송을 걸었습니다. 그럼에도 회사는 협상을 이어갔고, 결국 6천만 달러 규모의 변제안으로 사태를 마무리했습니다. 주주 입장에서는 당장 눈앞의 돈이 빠져나가는 결정이었습니다.

경영진이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이 회사가 파는 물건의 정체에 있었습니다. 여행자수표와 신용카드는 본질적으로 종이와 플라스틱 조각입니다. 그것이 값어치를 갖는 이유는 오직 하나, 이 회사가 뒤에 서 있으면 반드시 결제된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 믿음이 깨지면 상품 자체가 사라집니다. 즉 2억 달러를 아끼려다 회사의 존재 이유를 잃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시장은 그렇게 읽지 않았습니다. 사기극의 규모가 얼마나 더 커질지, 회사가 최종적으로 얼마를 물어내야 할지 아무도 계산할 수 없었습니다. 불확실성 앞에서 사람들은 일단 팔았습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주가는 몇 달 사이 절반 가까이 빠졌습니다.

장부 대신 식당에 앉은 사람

그 무렵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작은 투자조합을 운용하던 서른셋의 워런 버핏은 다른 질문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는 회사가 얼마를 배상해야 하는지를 계산하는 대신, 사람들이 여전히 이 회사의 카드와 수표를 쓰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손실의 크기는 일회성이지만, 고객이 떠나는 것은 영구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오마하의 식당에 앉아 계산대에서 이 회사 카드가 얼마나 오가는지 지켜보았고, 은행 창구에 들러 여행자수표가 전처럼 팔리는지 물었습니다. 조사를 도와주던 헨리 브랜트라는 인물을 통해 가맹점과 호텔, 은행 직원, 카드 소지자들을 폭넓게 접촉하기도 했습니다. 스캔들이 신문 1면을 덮고 있는데도, 사람들의 지갑 속 습관은 바뀌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결론을 근거로 그는 움직였습니다. 1964년부터 이 회사 주식을 사들였고, 1965년 말에 이르러 이 한 종목이 조합 자산의 40% 안팎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분산투자의 상식과는 정반대의 집중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훗날 성공 사례로 널리 회자되었지만, 당시 시점에서는 배상 규모조차 확정되지 않은 회사에 자산의 절반 가까이를 건 선택이었다는 점도 함께 기억할 만합니다.

사건의 설계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데 앤젤리스는 사기와 공모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를 인정했고, 실형을 산 뒤 1972년에 풀려났습니다. 그리고 출소 이후에도 가축을 소재로 한 또 다른 사기에 연루되었습니다. 그는 2009년 아흔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남는 것

이 사건이 60년 넘게 회자되는 이유는 사기 수법이 기발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단순했기 때문입니다. 담보는 종이가 아니라 물건입니다. 그런데 종이가 충분히 그럴듯하면, 사람들은 물건을 확인하는 수고를 건너뜁니다. 1억 8천만 달러가 사라지는 동안 아무도 탱크 뚜껑을 제대로 열어보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로 남는 것은 검증하는 사람이 누구의 편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이름이 찍힌 검사 보고서는 완벽해 보였지만, 실제로 검사하던 사람들은 검사받는 회사와 한 동네에서 얽혀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회계감사, 신용평가, 실사 보고서처럼 제삼자가 확인해 준다는 형식의 장치는 많습니다. 그 장치가 정말 독립적인지는 형식이 아니라 구조를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악재가 겹칠 때 가격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입니다. 1963년 11월의 주가는 사기의 실제 손실 규모를 반영한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그 손실이 얼마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공포와, 같은 주에 대통령이 암살되었다는 충격이 한데 섞인 숫자였습니다. 시장 가격은 사건의 크기가 아니라 종종 불안의 크기를 담습니다.

다만 여기서 조심할 대목이 있습니다. 많이 떨어졌다는 사실 자체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당시 한 투자자가 남들과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가격이 싸서가 아니라, 회사의 본업이 멀쩡한지를 직접 확인할 방법을 찾아냈기 때문이었습니다. 확인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해서는 싸다는 판단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결국 이 오래된 이야기가 남기는 습관은 하나입니다. 남들이 다 믿는 종이 앞에서 한 번쯤 탱크 뚜껑을 열어보려는 마음입니다. 기름은 늘 물 위에 뜹니다. 위에서 한 스푼 떠서 확인하는 방식으로는, 그 아래 무엇이 있는지 영원히 알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