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달러 싼 쪽이 이긴 250억 달러 경매
2026-09-26 · 8분 읽기
1988년 11월 30일 밤, 뉴욕 맨해튼의 한 회의실에 봉투 두 개가 놓였습니다. 한쪽에는 주당 112달러, 다른 쪽에는 주당 109달러가 적혀 있었습니다. 상식대로라면 더 비싼 값을 부른 쪽이 이겨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사회는 3달러나 싼 쪽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미국 재계가 술렁인 이유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거래 대상은 RJR 나비스코라는 회사였습니다. 윈스턴과 카멜 같은 담배를 만드는 회사와 오레오 쿠키를 만드는 회사가 한 몸이 된, 당시 미국에서 손꼽히게 큰 기업이었습니다. 주주에게 돌아간 최종 가격은 주당 109달러, 지분 가치로만 약 250억 달러였습니다. 회사가 원래 지고 있던 빚까지 합치면 310억 달러에 이르는 규모였습니다. 그때까지 이만한 몸값이 매겨진 기업 인수는 없었습니다.
이 한 달 반의 소동은 뒷날 『문 앞의 야만인들』이라는 책으로 남았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 두 사람이 취재해 쓴 이 책은 지금도 기업 인수의 교과서이자 반면교사로 읽힙니다. 그런데 가장 묘한 대목은 화려한 경매 장면이 아니라 결말입니다. 회사를 손에 넣은 쪽이 그 뒤 15년 넘게 붙들고 있으면서도 사실상 아무것도 벌지 못했습니다.
남의 회사를, 그 회사 돈으로 사는 기술
이 사건을 이해하려면 먼저 차입매수라는 말을 풀어야 합니다. 영어 약자로 LBO라고 부르는데, 말 그대로 빚을 내서 회사를 사는 방식입니다. 보통 물건을 살 때는 내 돈으로 삽니다. 차입매수는 다릅니다. 사려는 회사가 가진 공장과 브랜드, 그리고 그 회사가 앞으로 벌어들일 현금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바로 그 회사를 사들입니다. 사는 사람이 아니라 팔리는 회사가 빚을 떠안는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월세가 꾸준히 들어오는 건물을 살 때 내 돈은 10%만 넣고, 나머지는 그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습니다. 그리고 매달 들어오는 월세로 이자를 갚습니다. 건물값이 오르면 내가 넣은 10%를 기준으로 한 수익률은 어마어마해집니다. 반대로 세입자가 빠져 월세가 끊기면 건물째로 은행에 넘어갑니다. 이 계산을 건물이 아니라 회사를 상대로 하는 것이 차입매수입니다.
1980년대 미국에서 이 방식이 폭발적으로 번진 것은 정크본드라는 도구가 자리를 잡았기 때문입니다. 정크본드는 신용도가 낮은 쪽이 높은 이자를 약속하고 발행하는 채권으로, 우리말로 옮기면 고위험 고금리 채권쯤 됩니다. 이자가 연 14%를 넘는 일도 흔했지만 돈을 대겠다는 투자자는 줄을 섰습니다. 덕분에 자기 자본이 크지 않은 투자회사도 거대 기업을 사냥감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레오와 윈스턴을 함께 팔던 회사
RJR 나비스코는 1985년에 만들어진 회사입니다. 담배회사 R.J. 레이놀즈가 오레오와 리츠 크래커로 유명한 식품회사 나비스코를 인수해 한 몸이 되었습니다. 담배는 원가가 낮고 현금이 매일 꾸준히 들어오는 사업이었고, 과자 역시 경기와 크게 상관없이 팔리는 물건이었습니다. 돈벌이만 보면 튼튼한 조합이었습니다.
문제는 주식시장이 이 회사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담배가 붙어 있는 회사에는 소송 위험이라는 꼬리표가 달렸고, 그 탓에 실적에 비해 주가가 늘 눌려 있었습니다. 1987년 10월 블랙먼데이로 미국 증시가 크게 주저앉은 뒤에는 더 심해졌습니다. 벌어들이는 현금은 넉넉한데 주가는 지지부진한 회사, 차입매수를 노리는 쪽에게 이보다 좋은 사냥감은 없었습니다.
당시 최고경영자는 F. 로스 존슨이었습니다. 나비스코 쪽 출신으로 합병 뒤 통합 회사의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인물입니다. 그는 씀씀이로 이름이 높았습니다. 회사 전용기를 여러 대 거느려 언론이 RJR 공군이라고 부를 정도였고, 유명 운동선수들과 후원 계약을 맺고 본사도 애틀랜타로 옮겼습니다. 이 화려한 씀씀이는 나중에 여론이 그에게서 등을 돌리는 재료가 되었습니다.
사장이 자기 회사를 사겠다고 나선 날
1988년 10월 20일, 존슨과 일부 경영진은 증권사 시어슨 리먼 허턴과 손잡고 회사를 주당 75달러에 사들여 비상장회사로 만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총액으로 170억 달러 안팎이었고, 발표 직전 주가를 크게 웃도는 값이었습니다. 경영자가 자기가 다니는 회사를 사겠다고 나선 것이니, 이런 방식을 경영자 인수라고 부릅니다. 회사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매수자가 되는 셈인데, 여기에는 곤란한 문제가 있습니다.
주주를 위해 값을 최대한 높게 받아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 같은 순간 값을 최대한 싸게 치르고 싶은 매수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 안에서 이해가 정면으로 부딪히는 구조입니다. 게다가 인수가 끝난 뒤 소수의 임원이 회사 지분 가운데 상당한 몫을 갖는 내용이 알려지자 여론은 급격히 차가워졌습니다. 회사를 사는 돈은 회사가 갚고 이득은 몇 사람이 가져가는 그림으로 비쳤습니다.
이사회는 경영진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외이사들로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원하는 쪽은 누구든 값을 부르라는 공개 경매 절차로 바꾸었습니다. 주주에게 가장 좋은 값을 받아내려는 절차였습니다. 이 결정이 이후 한 달 동안 값을 하늘로 밀어 올렸습니다.
봉투 경매가 시작되다
10월 24일, 당시 미국 대기업 경영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투자회사 KKR이 주당 90달러를 들고 들어왔습니다. 공동 창업자 헨리 크래비스는 차입매수라는 게임에서 가장 이름난 선수였습니다. 총액 200억 달러를 넘는 금액이었고, 경영진이 부른 값보다 단숨에 15달러가 높았습니다.
이 순간부터 이것은 가치를 계산하는 일이 아니라 상대를 이기는 일이 되었습니다. 1차 입찰 마감은 11월 18일이었고, 이때 이미 값은 주당 100달러 선까지 올라 있었습니다. 여기에 퍼스트보스턴 쪽이 세금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특이한 구조를 들고 나타나면서 이사회는 마감을 한 차례 더 연장했습니다. 11월 29일에서 30일로 넘어가는 밤, 마지막 봉투들이 제출되었습니다.
경영진 쪽은 주당 112달러를 적었습니다. 스스로도 이길 수밖에 없는 값이라고 생각했습니다. KKR은 현금 81달러에 우선주와 보통주를 섞어 109달러를 적었습니다. 퍼스트보스턴 쪽 서류에는 118달러라는 가장 높은 숫자가 적혀 있었지만, 돈을 어디서 구해 오겠다는 부분이 확정되지 않은 조건부 제안이었습니다. 숫자만 보면 순위가 분명했는데도 이사회의 결론은 달랐습니다.
이사회는 KKR을 택했습니다. 자금 조달이 확실했고, 경영진 안은 나중에 값이 낮아질 여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인수 뒤 남는 회사의 지분을 기존 주주에게 더 많이 나눠 주는 쪽도 KKR이었습니다. 회사를 뜯어 팔겠다는 계획의 규모 역시 경영진 안보다 훨씬 작았습니다. 그리고 경영진이 챙기려 한 지분 문제로 이미 신뢰가 무너져 있었습니다.
12월 1일 결과가 세상에 알려졌고, 거래는 1989년 2월 9일에 마무리되었습니다. 존슨은 회사를 떠났고, 뒷날 IBM을 되살린 루이스 거스너가 1989년 3월 새 최고경영자로 왔습니다. 존슨이 받은 퇴직 보상은 수천만 달러 규모로 보도되어 오래 논란이 되었습니다. 타임은 1988년 12월 5일자 표지에 그의 얼굴을 올리고 탐욕의 게임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승자가 받아든 계산서
이제 이긴 쪽의 장부를 봅니다. 250억 달러짜리 거래에서 KKR과 동업자들이 넣은 자기 돈은 전체의 10%대에 그쳤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빚이었습니다. 은행 대출이 160억 달러를 넘었고 정크본드로 50억 달러가 조달되었습니다. 회사 어깨에 새로 얹힌 부채는 210억 달러 규모였습니다.
빚이 이만큼 쌓이면 이자가 무섭습니다. 한 해 이자 부담이 30억 달러를 넘는 수준까지 올라갔습니다. 회사가 과자와 담배를 팔아 힘들게 번 돈이 은행과 채권 투자자에게 먼저 건네지는 구조가 된 것입니다. 1989년 말 무디스는 이 회사 채권을 투자부적격 등급으로 내렸습니다. 이자를 감당하려면 무엇이든 팔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팔기 시작했습니다. 1989년 9월에는 통조림 브랜드 델몬트가 14억 달러에 팔려 나갔습니다. 같은 해 8월 담배 부문에서 1,600명 넘는 인력이 회사를 떠났습니다. 브랜드를 팔면 당장 현금이 들어오지만 앞으로 벌 돈도 함께 나갑니다. 빚을 줄이려고 미래를 잘라 파는 일이 이어졌습니다.
1990년에는 진짜 위기가 왔습니다. 정크본드 시장이 얼어붙었고, 발행했던 채권에 붙어 있던 리셋 조항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채권 값이 정해진 수준 아래로 내려가면 이자를 더 얹어 줘야 하는 조건이었습니다. 1990년 7월 KKR은 17억 달러를 추가로 집어넣고 22억 달러가 넘는 새 은행 대출을 얻어 겨우 부도를 면했습니다. 1991년 회사는 다시 주식시장에 상장되었고, 1993년에는 경쟁사가 말보로 값을 대폭 내리면서 담배 이익까지 얇아졌습니다. 그해 말 6,000명 규모의 감원이 발표되었습니다.
회사는 조각으로 남았습니다
결말은 분해였습니다. 1999년 6월 담배와 식품이 갈라섰습니다. 해외 담배 사업은 일본담배에 78억 달러에 넘어갔습니다. 2000년에는 나비스코마저 경쟁사 필립모리스 진영으로 팔려 갔습니다. 1985년에 한 몸이 되었던 회사가 열다섯 해 만에 서로 다른 주인에게 흩어진 것입니다.
KKR은 2000년대 중반에야 이 투자에서 완전히 손을 뗐습니다. 15년이 넘도록 붙들고 있었는데 최종 수익률은 사실상 없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입니다. 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전에서 이겨 놓고 돈은 벌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거래에는 승자의 저주라는 표현이 늘 따라붙습니다. 경매에서 이긴 사람이 실은 가장 비싸게 산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 거래에서 확실히 돈을 번 쪽은 누구였습니까. 양쪽에 붙어 자문 수수료를 받은 투자은행과 로펌들, 그리고 주당 109달러에 주식을 넘긴 기존 주주들입니다. 반대로 원래 이 회사 채권을 갖고 있던 투자자들은 회사 신용이 무너지면서 손실을 봤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남는 것
첫째는 경매의 심리입니다. 값을 부르는 사람이 둘 이상이 되면,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물건의 가치가 아니라 이기는 일 자체에 값을 매기기 시작합니다. 112달러라는 숫자는 회사를 계산해서 나온 값이 아니라 상대를 이기려고 나온 값이었습니다. 시장에서 사람들이 서로 값을 부르며 달려들 때, 그 숫자가 계산에서 나온 것인지 경쟁심에서 나온 것인지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둘째는 빚의 성격입니다. 레버리지, 즉 빌린 돈으로 투자 규모를 키우는 방식은 일이 잘될 때 수익률을 몇 배로 부풀리지만 일이 나빠질 때 손실도 같은 배수로 부풀립니다. 무엇보다 이자는 실적이 좋든 나쁘든 정해진 날짜에 나갑니다. RJR 나비스코는 담배와 과자를 계속 잘 팔았는데도 조각났습니다. 사업이 망해서 무너진 것이 아니라 사업 위에 얹힌 빚의 무게 때문에 무너진 것입니다.
셋째는 의자에 앉은 사람의 이해관계입니다.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의 이익과 주식을 들고 있는 사람의 이익은 자동으로 같아지지 않습니다. 1988년 가을 뉴욕에서 벌어진 일이 그 극단적인 예였습니다.
『문 앞의 야만인들』이라는 제목은 성문 밖에 야만인이 몰려와 있다는 뜻입니다. 책이 나온 뒤 사람들은 오래 물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야만인이었는가. 문을 두드린 투자회사였는지, 문을 안에서 열어 준 경영진이었는지, 값이 오를 때마다 박수를 친 시장 전체였는지 말입니다. 답이 무엇이든 화려한 숫자 뒤에 청구서가 따라온다는 사실만은 그때도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