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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대 중 네 대가 노키아였던 시절

2007년 4분기, 세계에서 팔린 휴대전화 열 대 가운데 네 대에는 노키아 로고가 찍혀 있었습니다. 그해 스마트폰 시장만 따로 떼어 보면 노키아 진영의 점유율은 49.4퍼센트였습니다. 나머지 모든 회사를 다 합쳐야 겨우 비슷해지는 숫자입니다. 인구가 500만 명 남짓한 핀란드의 한 기업이 지구 전체의 주머니 속을 차지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로부터 6년 뒤인 2013년 9월 3일, 노키아는 휴대전화 사업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넘긴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무렵 노키아의 스마트폰 점유율은 3퍼센트 언저리였습니다. 2007년 1,100억 유로에 이르던 시가총액은 2012년 148억 유로까지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6년 사이에 회사 가치의 열에 아홉이 사라진 것입니다.

흔히 노키아는 변화를 거부한 게으른 공룡이었다고 정리됩니다. 그런데 기록을 따라가 보면 노키아는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남들보다 먼저 만들었고, 먼저 실험했고, 먼저 걱정했습니다. 그런데도 무너졌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더 무섭습니다. 잘하던 회사가 잘하던 방식 그대로 무너지는 과정을 한번 따라가 보겠습니다.

제지공장에서 출발한 회사

노키아의 시작은 1865년입니다. 프레드리크 이데스탐이라는 광산 기술자가 핀란드 탐페레에 목재 펄프 공장을 세운 것이 출발점이었습니다. 몇 해 뒤 그는 노키아라는 강가의 마을로 공장을 옮겼고, 회사는 그 지명을 그대로 이름으로 삼았습니다. 휴대전화는커녕 전화기 자체가 귀하던 시절, 노키아는 종이를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노키아 주식회사는 1967년에 만들어졌습니다. 기존의 제지회사와 핀란드 고무공장, 핀란드 케이블공장 세 곳이 하나로 합쳐진 것입니다. 이때의 노키아는 장화와 타이어를 만들고 전선을 뽑고 종이를 찍어내는, 요즘 말로 하면 전형적인 문어발 기업이었습니다. 텔레비전과 컴퓨터도 만들었습니다.

방향이 정해진 것은 1992년입니다. 그해 최고경영자가 된 요르마 올릴라는 통신 한 가지에만 집중하겠다고 선언하고 나머지 사업을 차례로 정리했습니다. 잘 굴러가던 사업들을 접고 아직 시장이 제대로 열리지도 않은 이동통신에 회사를 걸었으니, 당시로서는 상당히 과감한 결정이었습니다.

같은 해 노키아는 1011이라는 모델을 내놓습니다. 상용으로 판매된 최초의 GSM 방식 휴대전화였습니다. GSM은 유럽이 표준으로 밀었던 2세대 이동통신 규격인데, 이 표준이 세계로 퍼지면서 노키아는 남들보다 한 발 앞선 자리에서 출발하게 됩니다. 2000년에 나온 3310은 쉽게 고장 나지 않는다는 평판으로 지금까지도 농담의 소재가 될 만큼 팔려나갔습니다.

얼마나 압도적이었나

노키아는 1998년부터 2012년까지 무려 14년 동안 세계에서 휴대전화를 가장 많이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한두 해 반짝한 1위가 아니라, 한 세대 전체가 노키아를 표준으로 알고 자란 것입니다. 2006년 한 해 매출은 411억 유로, 영업이익은 55억 유로에 달했습니다.

숫자보다 인상적인 것은 시장의 넓이였습니다. 노키아는 선진국 대도시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중남미의 작은 상점까지 파고드는 유통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수십 개 언어를 지원하는 저가 모델을 대량으로 찍어내면서, 많은 나라에서 사람들이 생애 처음 손에 쥔 전화기가 노키아였습니다.

제품 자체의 완성도도 높았습니다. 통화가 잘 되고, 문자가 빠르고, 배터리가 오래가고, 떨어뜨려도 멀쩡했습니다. 전화기가 해야 할 일의 목록이 통화와 문자와 주소록이던 시절에 노키아는 그 목록을 거의 완벽하게 채운 회사였습니다. 2007년 4분기 기준으로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약 40퍼센트가 노키아 몫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노키아는 자기가 무엇을 잘하는지 너무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공장도 부품 조달도 성과 평가도 전부 그 기준에 맞춰 최적화해 두었습니다. 경쟁의 규칙이 바뀌는 순간 이 정교함은 그대로 족쇄가 됩니다.

2007년, 이상한 물건이 등장하다

2007년 1월 애플이 아이폰을 공개하고 그해 6월에 판매를 시작했을 때, 업계의 첫 반응은 대체로 냉담했습니다. 값은 비싸고 배터리는 하루를 못 버티고 물리 키보드도 없었습니다. 당시 가장 빠른 3세대 통신망조차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노키아의 기준표로 채점하면 아이폰은 낙제점짜리 전화기였습니다.

흔한 오해와 달리 노키아가 터치스크린이나 인터넷 기능을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노키아는 이미 여러 해 전부터 터치 방식 시제품을 만들고 있었고, 인터넷을 쓰는 손바닥 크기 기기도 내놓고 있었습니다. 기술이 없어서 진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실험을 동시에 벌여 놓고 어느 하나에 회사를 걸지 못했습니다.

아이폰의 진짜 무기는 기기가 아니라 플랫폼이었습니다. 플랫폼이란 쉽게 말해 다른 사람들이 그 위에 올라타 장사를 하게 해 주는 바닥을 뜻합니다. 2008년 애플이 앱스토어를 열자 전 세계 개발자들이 아이폰용 프로그램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고, 아이폰은 시간이 갈수록 저절로 좋아지는 물건이 되었습니다. 애플은 전화기를 판 것이 아니라 시장을 하나 연 것입니다.

노키아의 계기판에는 이 변화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노키아가 매일 들여다보던 숫자는 몇 대를 팔았는가였고, 그 숫자로 보면 노키아는 2008년에도 2009년에도 여전히 압도적 1위였습니다. 무엇을 세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 보인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입니다.

심비안이라는 덫

이야기의 한가운데에 심비안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심비안은 노키아를 비롯한 여러 회사가 함께 쓰던 휴대전화용 운영체제입니다. 운영체제란 기기 안에서 프로그램들이 돌아가도록 바닥을 깔아 주는 소프트웨어를 말합니다. 2008년 노키아는 심비안을 통째로 사들여 재단을 만들고 소스코드를 공개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심비안은 성능이 낮은 부품과 적은 메모리로도 잘 돌아가도록 아주 알뜰하게 설계된 체계였습니다. 수억 대를 싸게 찍어내야 하는 회사에는 더없이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알뜰함 때문에 프로그램을 새로 만들려는 개발자에게는 까다롭고 손이 많이 가는 물건이었습니다. 화려한 화면과 부드러운 조작을 얹기에도 구조가 낡아 있었습니다.

2008년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내놓으면서 상황이 분명해졌습니다. 개발자들은 다루기 편하고 사용자도 많은 쪽으로 몰렸고, 개발자가 몰리면 쓸 만한 프로그램이 늘고, 프로그램이 늘면 사용자가 또 몰렸습니다. 노키아는 이 선순환의 바깥에 서 있었습니다. 심비안 계열의 스마트폰 점유율은 2007년 49.4퍼센트에서 2008년 43.7퍼센트, 2010년 37.6퍼센트 수준으로 해마다 깎여 나갔습니다.

내부에 대안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노키아는 마에모라는 자체 체계를 키우고 있었고, 인텔과 손잡고 미고라는 이름의 새 운영체제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여러 갈래를 동시에 끌고 가느라 어느 쪽에도 충분히 힘을 싣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회사가 커질수록 하나를 고르고 나머지를 버리는 일이 어려워진다는 것을 노키아는 몸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불타는 플랫폼

2010년 9월, 노키아는 마이크로소프트 출신의 캐나다인 스티븐 엘롭을 최고경영자로 앉힙니다. 창립 이래 처음으로 핀란드 사람이 아닌 인물이 회사를 맡은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이사회가 절박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2011년 2월, 엘롭이 직원들에게 보낸 내부 문서가 언론으로 새어 나갑니다. 북해의 석유 시추 시설에서 불이 나자 한 노동자가 수십 미터 아래 얼음장 같은 바다로 뛰어내려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글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플랫폼도 불타고 있다, 그러니 뛰어내려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습니다. 이 문서는 훗날 불타는 플랫폼 메모라는 이름으로 경영학 교재에까지 실립니다.

며칠 뒤 노키아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고 윈도폰을 주력 운영체제로 삼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심비안과 미고는 사실상 정리 수순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새 배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타고 있던 배가 가라앉는다고 먼저 선언해 버린 셈이 되었습니다. 소비자도 유통업체도 곧 단종될 제품을 살 이유가 없어졌고, 심비안 기기의 판매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무너졌습니다.

뒤이은 2년은 숫자로만 봐도 참담합니다. 2011년 4월 4,000명, 그해 9월 3,500명, 2012년 6월에는 한 번에 1만 명의 감원 계획이 발표됐습니다. 2012년 1분기에는 13억 유로의 영업손실을 냈습니다. 윈도폰을 얹은 루미아 시리즈는 카메라와 마감 면에서 호평을 받았지만, 이미 굳어 버린 앱 생태계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매각, 그리고 지금의 노키아

2013년 9월 3일, 노키아는 휴대전화를 만드는 기기·서비스 부문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넘긴다고 발표합니다. 금액은 모두 54억 4천만 유로였습니다. 이 가운데 37억 9천만 유로가 사업 자체의 값이었고, 16억 5천만 유로는 특허를 10년간 쓰게 해 주는 대가였습니다. 거래는 2014년 4월 25일에 마무리됐고, 약 2만 5천 명의 직원이 마이크로소프트 소속으로 옮겨 갔습니다.

인수한 쪽의 결말도 좋지 않았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15년에 이 인수와 관련해 76억 달러 규모의 손실을 장부에 반영했습니다. 사들인 값보다 더 큰 금액을 1년여 만에 없던 것으로 처리한 셈입니다. 윈도폰 사업은 그 뒤 조용히 정리됐습니다.

노키아라는 이름이 붙은 전화기는 지금도 팔리지만, 그것은 2016년 이후 노키아가 브랜드와 특허를 다른 회사에 빌려준 결과입니다. 이름은 노키아인데 만드는 주체는 다른 회사인 것입니다. 한 시대를 지배한 브랜드가 상표 임대료를 받는 자산으로 남은 장면은 그 자체로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그렇다면 노키아 본체는 사라졌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노키아는 통신망 장비를 만드는 회사로 남았습니다. 2016년에는 프랑스와 미국 합작사인 알카텔-루슨트를 약 156억 유로에 사들여 덩치를 키웠고, 지금은 이동통신 기지국과 광전송 장비를 파는 사업이 중심입니다. 2024년 매출은 192억 유로였고, 2025년 4월부터는 인텔에서 데이터센터 부문을 이끌던 저스틴 호타드가 최고경영자를 맡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남는 것

노키아 이야기에서 가장 먼저 건질 것은, 시장 점유율 1위가 미래에 대한 보증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노키아는 14년 동안 1위였고, 그 14년의 기억이 오히려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습니다. 압도적인 숫자는 지금까지 무엇을 잘했는지를 알려 줄 뿐, 앞으로 경쟁이 어디에서 벌어질지는 알려 주지 않습니다.

두 번째는 계기판의 문제입니다. 노키아가 보던 숫자는 판매 대수였고, 그 숫자로는 위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작 판이 갈린 곳은 개발자가 어느 쪽에 모이는가, 프로그램이 어느 쪽에서 더 많이 만들어지는가였습니다. 어떤 회사를 볼 때 그 회사가 자랑하는 숫자 말고 무엇을 세지 않고 있는지를 함께 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무너짐은 대개 한 번의 큰 실수가 아니라 합리적인 선택들이 쌓여서 일어납니다. 심비안을 지킨 것도, 여러 대안을 동시에 굴린 것도, 새 파트너를 고른 것도 그 순간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었습니다. 한 시대를 지배한 기업의 마지막 6년을 기억해 두면,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산업의 변화를 볼 때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