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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경제학상은 노벨의 유언에 없습니다

매년 10월이면 스톡홀름에서 수상자 발표가 이어집니다. 생리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 문학상, 평화상 순으로 나오고 마지막에 경제학상이 발표됩니다. 언론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결정이라고 보도하고, 우리도 그렇게 부릅니다. 그런데 발표장에서 사회자가 읽는 정식 명칭은 조금 다릅니다.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 중앙은행 경제학상. 이것이 정식 이름입니다. 영어로는 The Sveriges Riksbank Prize in Economic Sciences in Memory of Alfred Nobel입니다. 문장 어디에도 노벨상이라는 말이 그대로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노벨을 기념한다고만 적혀 있습니다.

이름이 길고 어색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상은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장에 없는 상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다섯 개 상보다 67년이나 늦게, 전혀 다른 곳의 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논쟁을 달고 다녔습니다.

유언장에 적혀 있던 다섯 개

이야기는 1895년 11월 27일 파리에서 시작됩니다. 다이너마이트로 큰 재산을 모은 알프레드 노벨이 마지막 유언장에 서명한 날입니다. 그는 재산의 대부분을 기금으로 만들어, 그 이자로 지난 한 해 인류에게 가장 큰 이익을 준 사람들에게 상을 주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896년 12월 10일 이탈리아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유언장에 적힌 분야는 다섯입니다. 물리학, 화학, 생리학 또는 의학, 문학, 그리고 평화입니다. 경제학은 없습니다. 유언 내용이 워낙 파격적이어서 유족과 각국 기관 사이에 법적 다툼이 길게 이어졌고, 첫 시상식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년 뒤인 1901년에야 열렸습니다.

노벨이 경제학을 일부러 뺐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19세기 말에는 경제학이 지금처럼 독립된 학문 분과로 자리 잡기 전이었다는 사정도 있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가 남긴 문서에 경제학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이후 60년 넘게 노벨상은 다섯 분야뿐이었습니다.

1968년, 어느 중앙은행의 300번째 생일

스웨덴의 중앙은행 릭스방크는 1668년에 세워졌습니다. 현재까지 영업을 이어오는 중앙은행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곳입니다. 앞서 있던 스톡홀름 방코라는 민간 은행이 지폐를 과하게 찍어내다 무너진 뒤, 의회가 직접 관리하는 은행으로 다시 세운 것이 그 출발이었습니다.

1968년은 그 은행이 창립 300주년을 맞은 해였습니다. 릭스방크는 기념사업으로 노벨 재단에 큰 금액을 기부하면서 경제학 분야의 상을 새로 만들자고 제안합니다. 상금과 운영 비용은 중앙은행이 영구히 대고, 수상자 선정과 시상은 기존 노벨상과 같은 방식으로 스웨덴 왕립과학원이 맡는 구조였습니다. 시상식 날짜도 노벨이 세상을 떠난 12월 10일로 같습니다.

첫 수상은 이듬해인 1969년입니다. 노르웨이의 라그나르 프리시와 네덜란드의 얀 틴베르헌이 공동 수상했습니다. 경제 현상을 수학 모형으로 분석하는 방법을 개척한 공로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계량경제학이라는 분야의 창시자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경제 현상을 통계와 수식으로 다루는 학문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 출발점이 이후 논쟁의 씨앗이 됩니다. 상을 만든 주체가 중립적인 재단이 아니라 통화정책을 직접 집행하는 중앙은행이었기 때문입니다. 중앙은행이 돈을 대는 상이 중앙은행의 정책을 연구하는 학문에 수여된다는 구조 자체를 문제 삼는 목소리가 나중에 계속 나오게 됩니다.

노벨 가문에서 나온 공개 반대

가장 날카로운 비판 가운데 하나는 노벨 가문 쪽에서 나왔습니다. 피터 노벨은 알프레드 노벨의 형제 계통에서 이어진 후손으로, 스웨덴에서 오랫동안 인권 변호사이자 초대 인종차별 옴부즈맨으로 일한 인물입니다. 그는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이 상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2005년 그가 한 말이 널리 인용됩니다. 노벨 가문의 어느 누구도 경제학상을 만들 뜻을 가진 적이 없다는 것, 그리고 이 상은 경제학자들이 자기네 평판을 끌어올리려고 벌인 홍보 작전에 가깝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상이 주식시장 투기를 연구한 사람들에게 자주 돌아간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그가 덧붙인 논지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알프레드 노벨이 상을 만든 취지는 인류의 삶을 나아지게 한 업적을 기리는 데 있었는데, 경제학상이 그 취지에 맞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한 개인의 견해이고 가문 전체의 공식 입장은 아닙니다. 다만 창립자의 후손이 공개적으로 거리를 둔 상이라는 점은 다른 다섯 개 상에는 없는 일입니다.

논란 때문인지 노벨 재단은 공식 자료에서 이 상을 다른 다섯 개와 구분해 표기합니다. 재단 홈페이지에서도 경제학상은 별도 항목으로 분류되고, 정식 명칭이 함께 붙습니다. 흔히 쓰는 노벨 경제학상이라는 호칭은 엄밀히 말하면 줄임말이자 통칭인 셈입니다.

경제학은 과학인가

더 근본적인 논쟁은 학문의 성격을 둘러싼 것이었습니다. 물리학이나 화학은 같은 조건에서 실험을 반복해 결과를 검증할 수 있습니다. 경제학은 그렇게 하기가 어렵습니다. 한 나라의 금리를 올린 경우와 올리지 않은 경우를 동시에 비교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연과학과 같은 무게의 상을 주는 것이 타당하냐는 질문이 따라붙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런 문제 제기를 수상자 본인들이 했다는 점입니다. 1974년 수상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수상 만찬 연설에서, 누가 이런 상을 만들자고 자문을 구했다면 자신은 분명히 반대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상이 한 개인에게 경제학에서는 누구도 가져서는 안 될 권위를 부여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상을 받는 자리에서 상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던진 셈입니다.

같은 해 그와 상을 나눠 받은 군나르 뮈르달은 더 나아갔습니다. 그는 몇 해 뒤인 1977년 이 상을 아예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경제학은 이른바 물렁한 학문이어서 이런 형식의 상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그가 든 이유였습니다. 첫 회 수상자들이 나온 지 채 10년도 되지 않아 수상자 두 사람이 각각 회의를 표한 것입니다.

반론도 있습니다. 실험이 어렵다는 이유로 학문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천문학도, 진화생물학도, 기후학도 실험실에서 조건을 통제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최근 수십 년간 경제학은 대규모 자료 분석과 현장 실험 기법을 크게 발전시켜 왔습니다. 논쟁은 여전히 결론이 나지 않은 채로 매년 10월마다 다시 소환됩니다.

정반대 주장이 나란히 상을 받을 때

이 상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은 수상자 명단 자체에 있습니다. 1974년이 대표적입니다. 앞서 언급한 하이에크와 뮈르달이 같은 해에 공동 수상했습니다. 하이에크는 정부가 경제를 설계하려는 시도 자체가 위험하다고 평생 주장한 인물이고, 뮈르달은 스웨덴 복지국가 설계에 깊이 관여하며 적극적인 국가 개입을 옹호한 인물입니다.

두 사람이 어떤 사이였는지는 짐작이 갑니다. 정치적으로도 경제학적으로도 정반대 진영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정 사유는 화폐 이론과 경기 변동 연구, 그리고 경제와 사회와 제도의 상호 의존성에 대한 분석이라는 공통 항목으로 묶였습니다. 학문적 기여를 기준으로 삼으면 정반대 결론도 나란히 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2013년은 더 노골적이었습니다. 유진 파마, 라스 피터 핸슨, 로버트 실러 세 사람이 자산 가격에 대한 실증 분석을 공로로 공동 수상했습니다. 파마는 시장 가격에 이미 알려진 정보가 모두 반영돼 있어 남보다 꾸준히 앞서기 어렵다는 효율적 시장 가설의 주창자입니다. 실러는 정반대로 자산 가격이 사람들의 심리 때문에 근본 가치에서 크게 벗어나 거품이 생긴다고 오랫동안 주장해 온 사람입니다.

실러는 2000년 닷컴 거품 정점 부근과 2000년대 중반 미국 주택시장에 대해 잇따라 경고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시장이 대체로 효율적이라는 사람과 시장이 주기적으로 미쳐 돌아간다는 사람이 같은 해 같은 사유로 같은 상을 받은 것입니다. 당시 언론에서 어떻게 이런 조합이 가능하냐는 기사가 쏟아진 것도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남는 것

이 상의 이력에서 개인투자자가 건질 만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경제학은 물리학처럼 하나의 정답으로 수렴하는 학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같은 자료를 보고도 정반대 결론에 도달한 두 사람이 나란히 최고 권위의 상을 받을 수 있는 분야입니다. 이것은 경제학의 결함이라기보다 경제학이 다루는 대상, 즉 사람과 사회의 성격에서 비롯된 일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시장에 관한 어떤 주장이 권위 있는 이름과 함께 등장할 때 우리가 취할 태도도 달라집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견해라는 수식어는 그 주장이 진지하게 검토할 가치가 있다는 뜻이지, 그 주장이 확정된 사실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 사람의 정반대 주장을 편 다른 수상자가 있을 가능성이 실제로 상당히 큽니다.

하이에크가 만찬 연설에서 걱정한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상이 한 사람에게 지나친 권위를 실어주면, 그 사람의 말이 검증을 건너뛰고 유통된다는 것입니다. 상을 받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남긴 것은 겸손을 가장한 수사가 아니라 학문의 성격에 대한 진지한 경고에 가까웠습니다.

결국 이 긴 이름의 상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권위에 대한 건강한 거리감입니다. 어떤 전망이 유명한 이름과 함께 올 때, 그 이름의 무게가 아니라 그 주장이 딛고 선 근거와 조건을 먼저 보는 습관입니다. 1974년의 두 사람도, 2013년의 세 사람도 각자의 근거 위에 서 있었습니다. 그 근거를 살피는 일은 여전히 각자의 몫으로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