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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년 은행을 무너뜨린 스물여덟 살

1995년 2월 23일, 싱가포르 시내의 한 사무실 책상 위에는 손으로 쓴 쪽지 한 장이 남아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영어로 딱 두 단어, 미안합니다라는 말만 적혀 있었습니다. 쪽지를 남긴 사람은 스물여덟 살의 영국인 선물 트레이더 닉 리슨이었고, 그는 그날 아내와 함께 쿠알라룸푸르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사흘 뒤인 2월 26일, 1762년에 세워져 233년을 버텨온 영국의 상인은행 베어링스가 법정관리에 들어갔습니다.

리슨 한 사람이 남긴 손실은 8억 2,700만 파운드, 미국 달러로 13억 달러가 넘는 규모였습니다. 이 돈은 당시 베어링스가 거래에 쓸 수 있었던 자기자본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이었습니다. 은행은 이 구멍을 메울 방법을 찾지 못했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네덜란드 금융그룹 ING에 팔려 나갔습니다. 매각 가격은 상징적인 1파운드였습니다. 2세기 넘게 쌓아 올린 간판에 붙은 최종 가격표가 동전 한 닢이었던 셈입니다.

많은 분들이 여기서 같은 질문을 하십니다. 아무리 큰돈을 굴리는 곳이라 해도, 어떻게 직원 한 명이 은행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었을까요. 답은 리슨이라는 개인의 욕심에만 있지 않습니다. 진짜 이야기는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겨둔 채 아무도 그 안을 들여다보지 않았던 조직의 빈틈에 있습니다.

싱가포르로 건너간 청년

베어링스는 1762년 프랜시스 베어링이 세운 영국의 상인은행이었습니다. 상인은행이란 지금의 투자은행에 가까운 개념으로, 예금을 받아 대출을 내주는 동네 은행과 달리 무역 금융과 채권 인수, 자산 운용을 주로 하는 곳을 말합니다. 영국 금융가에서 가장 오래된 이름 가운데 하나였고, 그 역사 자체가 신용의 담보처럼 여겨지던 은행이었습니다.

닉 리슨은 1967년생으로, 화려한 학벌이나 배경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1992년 4월 베어링스의 싱가포르 법인에 파생상품 결제 담당 매니저로 파견되었습니다. 파생상품이란 주식이나 채권 같은 기초자산의 가격 움직임에 따라 값이 정해지는 계약으로, 선물과 옵션이 대표적입니다. 리슨은 처음에는 거래 자체가 아니라, 거래가 끝난 뒤 장부를 맞추고 돈을 주고받는 뒷단 업무를 맡았습니다.

그런데 두 달 뒤인 1992년 6월, 리슨은 현지 선물거래 자격시험을 통과하면서 직접 거래하는 트레이더가 됩니다. 그해 7월부터 베어링스 싱가포르 법인은 싱가포르 국제금융거래소, 이른바 심렉스에서 본격적으로 거래를 시작했고 리슨은 그 두 명뿐인 트레이더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문제는 그가 트레이더가 되면서도 기존의 결제 담당 업무를 놓지 않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심판과 선수를 한 사람이 맡을 때

금융회사에는 오래된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주문을 내는 사람과 그 주문의 결과를 기록하고 검증하는 사람은 반드시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단에서 사고파는 조직을 프런트오피스, 뒷단에서 장부를 맞추고 손익을 확인하는 조직을 백오피스라고 부르는데, 이 둘을 분리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자기가 친 사고를 자기가 기록한다면 사고는 영원히 발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리슨은 싱가포르에서 심렉스 거래를 총괄하는 책임자인 동시에, 그 거래의 결제와 회계를 책임지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경기에 뛰는 선수가 동시에 심판이자 기록원이었던 셈입니다. 그가 런던 본사에 보고하는 숫자를 검증할 수 있는 사람은 싱가포르에 사실상 없었습니다. 본사는 멀리 있었고, 파생상품이라는 분야는 당시 경영진 대부분에게 여전히 낯선 영역이었습니다.

더 결정적인 것은 초기 성적이 실제로 좋았다는 점입니다. 리슨이 보고한 수익은 베어링스 전체 이익에서 무시하기 어려운 비중을 차지했고, 런던에서 그는 아시아에서 돈을 벌어오는 젊은 스타로 통했습니다. 돈을 벌어오는 사람에게 잔소리를 하는 조직은 드뭅니다. 감시가 느슨해지는 가장 흔한 이유는 부정이 아니라 성과입니다.

88888이라는 이름의 서랍

1992년 7월 3일, 리슨은 88888이라는 번호의 계좌를 하나 엽니다. 원래 이런 계좌는 오류 계좌라고 불리는 것으로, 미숙한 직원이 주문을 잘못 넣었을 때 그 거래를 잠시 담아두고 정리하기 위한 임시 보관함 같은 자리입니다. 그 자체로는 어느 증권사에나 있는 평범한 장치입니다. 문제는 리슨이 이 서랍을 임시 보관함이 아니라 영구 창고로 쓰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리슨은 이 계좌가 런던 본사로 넘어가는 일일 보고에서 빠지도록 손을 봤습니다. 그 결과 본사 화면에는 리슨의 수익만 보이고, 손실은 88888이라는 서랍 안에서 조용히 쌓여갔습니다. 숫자는 빠르게 불어났습니다. 1992년 9월에 이미 싱가포르달러로 880만 달러 수준이던 손실은, 1994년 12월에는 3억 7,390만 싱가포르달러까지 커져 있었습니다. 그 2년 반 동안 런던은 계속 축하 인사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리슨이 주로 쓴 전략은 숏 스트래들이라 불리는 옵션 매도 조합이었습니다. 어려운 말 같지만 뜻은 간단합니다. 시장이 위로든 아래로든 크게 움직이지 않으면 돈을 벌고, 어느 쪽이든 크게 움직이면 손실이 무섭게 커지는 구조입니다. 평온한 장세에서는 매달 꾸준히 돈이 들어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특히 위험합니다.

여기에 리슨은 한 가지를 더 얹었습니다. 손실이 나면 인정하고 끊는 대신, 반대 방향으로 더 큰 포지션을 잡아 한 번에 만회하려 한 것입니다.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흔히 물타기라 부르는 행동의 극단적인 형태입니다. 돈을 잃은 사람이 그 돈을 되찾으려 더 크게 거는 심리는 직업 트레이더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리슨이 걸었던 판돈의 단위가 은행 하나의 명운이었을 뿐입니다.

1995년 1월 17일 새벽 5시 46분

1995년 1월 17일 새벽 5시 46분, 일본 효고현 남부에서 규모 6.9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일본 기상청 기준으로는 7.3에 해당하는 강진이었고, 흔히 고베 지진 또는 한신 대지진으로 불립니다. 사망자는 5,500명에서 6,400명 사이로 집계되었고 그중 약 4,600명이 고베에서 나왔습니다. 40만 채에 가까운 건물이 복구 불가능한 피해를 입었고, 경제적 손실은 2,000억 달러 규모로 추산되었습니다.

리슨의 베팅은 일본 증시가 좁은 범위에서 얌전히 움직인다는 전제 위에 서 있었습니다. 지진은 그 전제를 하루아침에 지워버렸습니다. 니케이 225 지수는 급락했고, 88888 계좌의 손실은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는 크기로 부풀었습니다. 여기서 리슨이 택할 수 있었던 길은 두 갈래였습니다. 모든 것을 털어놓고 손실을 확정하거나, 시장이 곧 되돌아온다는 데 남은 전부를 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두 번째를 택했습니다. 1월 23일 니케이 지수가 17,785까지 밀렸을 때, 리슨은 지수가 반등한다는 쪽으로 선물 매수 포지션을 오히려 대폭 늘렸습니다. 선물이란 미래의 특정 시점에 정해진 가격으로 사고팔기로 미리 약속하는 계약으로, 적은 증거금으로 큰 금액을 움직일 수 있어 방향이 어긋나면 손실도 그만큼 빠르게 커집니다. 리슨은 무너지는 벽을 어깨로 떠받치는 선택을 한 셈입니다.

시장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2월 23일 니케이는 17,580까지 더 내려앉았고, 88888 계좌에 쌓인 손실은 싱가포르달러로 14억 달러에 이르렀습니다. 그날 리슨은 더 이상 숫자를 가릴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사무실에 미안하다는 쪽지만 남기고 싱가포르를 떠났습니다.

쪽지 한 장과 1파운드

리슨이 사라진 직후 베어링스 본사는 뒤늦게 계좌를 열어보았고, 그때야 손실의 실체를 확인했습니다. 2월 26일 베어링스는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최종 집계된 손실은 8억 2,700만 파운드였습니다. 영란은행은 같은 날 조사에 착수해 그해 7월 18일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보고서가 지목한 핵심은 리슨 개인의 일탈보다도 거래와 결제를 분리하지 않은 내부통제의 실패였습니다.

도주 경로는 길지 않았습니다. 리슨은 쿠알라룸푸르를 거쳐 유럽으로 향했고, 3월 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체포되었습니다. 같은 해 11월 23일 싱가포르로 신병이 인도되었고, 12월 1일 법정에서 유죄를 인정해 6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는 창이 교도소에서 4년 4개월을 복역한 뒤 1999년 7월 풀려났습니다.

한편 베어링스는 이미 사라진 뒤였습니다. 네덜란드 금융그룹 ING가 은행의 부채까지 떠안는 조건으로 베어링스를 사들였는데, 그 인수 가격이 1파운드였습니다. 회계적으로 자산 가치가 부채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뜻이자, 233년의 역사가 시장에서 더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선언이기도 했습니다. 거래에 서명이 오간 시간은 은행이 존재했던 세월에 비하면 찰나였습니다.

제도는 사고를 따라간다

베어링스 사건은 세계 금융 규제의 언어를 바꿔 놓았습니다. 프런트오피스와 백오피스의 분리, 독립된 리스크 관리 조직, 해외 지점에 대한 본사의 실시간 포지션 감시 같은 개념이 이때를 계기로 상식이 되었습니다. 규제라는 것은 대체로 사고가 난 뒤에야 사고의 모양을 따라 만들어집니다.

그럼에도 비슷한 일은 계속 일어났습니다. 이후에도 대형 금융기관에서 거액의 미승인 거래 손실이 여러 차례 드러났고, 그때마다 원인은 놀랄 만큼 비슷했습니다. 성과가 좋은 사람에게는 질문을 하지 않는 문화, 복잡한 상품을 이해하지 못한 채 승인하는 경영진, 그리고 손실을 인정하지 못해 판을 키우는 개인의 심리입니다.

리슨 본인은 출소 뒤 자신의 경험을 책과 강연으로 풀어내며 살아왔습니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처음 손실을 숨긴 금액은 크지 않았고, 며칠이면 메울 수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큰 사고는 작은 은폐에서 시작되며, 은폐의 비용은 시간이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는 것을 그의 사례가 보여줍니다. 처음 덮은 숫자가 마지막에는 은행 하나였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남는 것

개인투자자에게 이 이야기가 남기는 첫 번째 교훈은 손실을 마주 보는 일의 무게입니다. 리슨을 무너뜨린 것은 첫 손실이 아니라, 그 손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판을 키운 두 번째 선택이었습니다. 손실을 확정하는 순간의 고통을 피하려다 회복 불가능한 크기로 키우는 심리는 전문 트레이더와 개인투자자에게 똑같이 작동합니다. 숫자를 덮어두면 숫자는 사라지지 않고 조용히 자랍니다.

두 번째는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가정의 위험입니다. 리슨의 전략은 평온한 시장에서는 거의 매일 이기는 구조였습니다. 다만 지는 날이 단 하루만 와도 그동안 번 것을 전부 가져가는 구조이기도 했습니다. 오랫동안 잘 통하던 방식이 어느 날 갑자기 반대로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하루가 언제 올지는 아무도 예고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베의 새벽이 보여주었습니다.

세 번째는 누구도 스스로를 감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리슨에게는 자신의 기록을 확인해줄 타인이 없었습니다. 개인투자자도 비슷한 처지에 놓이기 쉽습니다. 자신의 매매를 기록하고 돌아보는 사람이 자기 자신뿐이라면, 유리한 기억만 남기고 불리한 기억은 서랍에 넣어두게 됩니다. 스스로 만든 88888 계좌를 가지고 있지 않은지 가끔은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233년을 버틴 조직이 무너지는 데는 2년 반이면 충분했습니다. 그 사이 은행 안팎의 누구도 특별히 악의를 품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오래된 이름과 좋은 성과가 안전을 보장해준다는 믿음, 베어링스가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것은 바로 그 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1파운드에 팔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