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조금씩만 오르던 수익률의 정체
2026-09-22 · 8분 읽기
2008년 12월 초, 뉴욕 맨해튼의 한 자산운용사에 고객들의 환매 요청이 몰렸습니다. 환매란 맡긴 돈을 돌려달라는 요구입니다. 금융위기로 다른 곳에서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계좌에서 현금을 빼내려 한 것입니다. 요청액은 70억 달러에 이르렀습니다. 회사를 이끌던 68세의 노신사는 그 돈을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12월 10일, 그는 두 아들을 사무실로 불러 자신이 하던 일이 통째로 거짓말이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아들들은 그날 변호사를 찾아갔고, 다음 날 아침 연방수사국 요원들이 아버지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버나드 매도프, 한때 나스닥 이사회 의장을 지냈고 월가에서 가장 존경받는 축에 속하던 인물이었습니다.
체포 시점에 고객 계좌 명세서에 찍혀 있던 잔고 합계는 648억 달러였습니다. 물론 그 돈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들어왔다가 사라진 원금은 170억 달러 안팎으로 추산됐습니다. 나머지는 전부 종이 위에만 있던 수익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수십 년간 매달 확인하며 흐뭇해했던 그 숫자들 말입니다.
새 돈으로 옛 돈을 갚는 구조
폰지 사기의 구조 자체는 간단합니다. 1920년 미국에서 찰스 폰지라는 인물이 국제우편 쿠폰의 나라별 가격 차이를 이용해 큰 수익을 낸다고 광고하며 돈을 모았습니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운용하지 않고, 나중에 들어온 투자자의 돈을 먼저 들어온 투자자에게 수익금이라며 나눠 줬습니다. 새 돈이 끊기는 순간 끝나는 구조라 그의 사업은 몇 달 만에 무너졌습니다.
매도프가 한 일도 원리는 같았습니다. 다른 점은 지속 기간과 규모였습니다. 폰지의 사업이 1년을 못 버텼다면 매도프의 운용 부문은 최소 수십 년간 이어졌습니다. 본인은 1990년대 초에 시작했다고 진술했지만, 수사 과정에서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정황도 제기됐습니다.
왜 이렇게 오래 갔을까요. 폰지는 몇 달 만에 원금의 절반을 불려 준다고 약속했는데, 누가 봐도 수상한 숫자입니다. 매도프가 약속한 수익률은 연 10% 남짓이었습니다. 훌륭하지만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 숫자입니다. 사기의 성패를 가른 것은 탐욕의 크기가 아니라 절제의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매도프에게는 폰지에게 없던 방패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은 같은 건물에서 실제로 돈을 벌고 있던 진짜 사업이었습니다.
5,000달러로 시작한 진짜 회사
매도프는 1960년 자기 돈 5,000달러와 장인에게 빌린 5만 달러로 증권회사를 차렸습니다. 뉴욕증권거래소의 큰손들 틈바구니에서 그가 택한 자리는 시장조성자였습니다. 시장조성자란 어떤 종목이든 사겠다는 값과 팔겠다는 값을 항상 제시해 거래가 끊기지 않게 하는 역할입니다. 그는 여기에 일찍부터 전산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이 선택은 적중했습니다. 그가 만든 전자 호가 방식은 훗날 나스닥이라는 시장의 기술적 토대 가운데 하나가 됐고, 그는 나스닥 이사회 의장까지 맡았습니다. 2008년 무렵 그의 회사는 미국 대형주 시장조성 업무에서 여섯 손가락 안에 드는 규모였습니다. 이 부문은 실제로 돈을 버는 정상적인 사업이었습니다.
문제는 같은 건물의 다른 층에 있던 자산운용 부문이었습니다. 이곳은 고객 돈을 받아 굴린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주식 한 주 사지 않았습니다. 들어온 돈은 은행 계좌에 넣어 두고, 누군가 돈을 찾겠다고 하면 그 계좌에서 꺼내 줬습니다. 고객이 받아 보는 거래 내역서는 과거 주가를 보고 나중에 지어낸 것이었습니다.
정상 사업의 명성이 거짓 사업의 방패가 됐다는 점이 이 사건의 핵심입니다. 나스닥 의장을 지낸 사람이, 증권업계 자율규제 기구에서 일하던 사람이, 규제당국에 자문까지 하던 사람이 돌려막기를 하고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이름은 그 자체로 신용조회서 역할을 했습니다. 실사를 맡은 기관들조차 이 정도 인물이라면 누군가는 이미 확인했으리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습니다.
너무 고른 수익률이라는 경고
매도프가 내세운 운용 방식은 분할 전환 전략이라는 이름의 옵션 전략이었습니다. 대형주를 한 바구니 사 두고, 동시에 옵션을 사고팔아 주가가 크게 떨어질 때의 손실과 크게 오를 때의 이익을 함께 잘라낸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옵션이란 정해진 값에 사거나 팔 권리를 거래하는 계약입니다. 이론상으로는 수익률의 출렁임을 줄이는 데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성적표는 이론이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습니다. 연 10% 안팎의 수익이 나오는데 손실이 난 달은 거의 없었습니다. 같은 기간 미국 대표 주가지수는 열 달 넘게 하락한 해도 있었고, 2000년대 초 정보기술 거품이 꺼질 때는 몇 년 내리 부진했습니다. 매도프의 계좌만 그 모든 국면에서 거의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금융에서 수익과 위험은 붙어 다닙니다. 크게 벌 가능성이 있으면 크게 잃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손실 없이 꾸준한 수익이 나오는 전략이 존재한다면 그 전략은 곧 모두에게 복제돼 수익이 사라집니다. 매도프의 성적표는 이 상식을 20년 가까이 어기고 있었습니다.
5분 만에 계산이 맞지 않았던 사람
1999년, 보스턴의 한 자산운용사에서 일하던 해리 마코폴로스는 회사로부터 매도프와 비슷한 상품을 만들어 보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수치를 받아 든 그는 5분 만에 숫자가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이후 몇 시간에 걸쳐 그 판단을 수학적으로 정리했습니다. 매도프가 말하는 전략으로는 그런 수익 곡선이 나올 수 없다는 결론이었습니다.
2000년 봄, 그는 증권거래위원회 보스턴 사무소에 첫 제보를 넣었습니다. 반응이 없었습니다. 2001년 더 자세한 자료를 다시 냈습니다. 역시 별다른 조치가 없었습니다. 같은 해 금융 전문 매체와 경제 주간지가 매도프의 수익률이 설명되지 않는다는 기사를 실었지만 파장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2005년 11월, 마코폴로스는 21쪽짜리 문서를 제출했습니다. 제목은 세계 최대 헤지펀드는 사기라는 것이었습니다. 문서에는 서른 개 가까운 의심 항목이 번호를 붙여 나열돼 있었습니다. 손실 난 달의 수가 비정상적으로 적다는 점, 그가 다룬다는 규모의 옵션을 실제로 거래하려면 시장 전체 거래량보다 많은 계약이 필요한데 어느 거래 상대방도 그런 거래를 했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 수백억 달러를 굴린다면서 회계감사는 직원 몇 명뿐인 무명 사무소가 맡고 있다는 점 등이었습니다.
당국은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리고 사기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나중에 공개된 감찰 보고서에 따르면 규제당국은 16년에 걸쳐 여러 차례 매도프 관련 제보나 조사 기회를 접했지만, 매번 핵심을 비껴갔습니다. 미등록 투자자문업 문제 같은 절차적 사안으로 논점이 옮겨 가거나, 매도프 본인의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식이었습니다.
2008년 겨울, 새 돈이 끊기다
돌려막기 구조는 들어오는 돈이 나가는 돈보다 많은 동안에만 굴러갑니다. 2008년 가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그 균형이 깨졌습니다. 주식과 부동산에서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현금이 필요해졌고, 손실이 없어 보이던 매도프 계좌부터 헐기 시작했습니다. 그해 12월까지 밀려든 환매 요구는 70억 달러였습니다.
12월 11일 체포된 그는 1,000만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자택에 연금됐습니다. 2009년 3월 12일 증권사기와 전신사기, 자금세탁 등 11개 연방 범죄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재판을 거치지 않고 스스로 인정한 것입니다. 같은 해 6월 29일 법원은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0년을 선고했습니다. 그는 2021년 4월 노스캐롤라이나의 연방교도소에서 82세로 사망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결말도 무거웠습니다. 동생 피터 매도프는 2012년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최고재무책임자로 일하며 가짜 거래 내역을 만든 프랭크 디파스칼리는 유죄를 인정한 뒤 선고를 기다리다 2015년 사망했습니다. 장남 마크 매도프는 체포 2주년이 되던 2010년 12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차남 앤드루는 2014년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피해자는 개인만이 아니었습니다. 매도프에게 직접 돈을 맡긴 계좌 외에, 여러 나라의 중개 펀드들이 고객 돈을 모아 매도프에게 넘기고 있었습니다. 유럽과 중남미의 은행, 대학 기금, 자선재단, 은퇴자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 사슬 끝에 연결돼 있었습니다.
16년에 걸친 회수 작업
사건 직후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회수 전망을 비관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달랐습니다. 법원이 선임한 파산관재인 어빙 피카드는 이 사업의 성격에 주목했습니다. 애초에 투자가 없었으므로, 수익이라며 받아 간 돈은 사실 다른 피해자의 원금이었습니다. 그는 이 논리로 오래전에 돈을 빼 간 초기 투자자들과 중개 펀드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가장 큰 성과는 2010년 제프리 피코워 유산 측과의 합의였습니다. 72억 달러 규모로, 미국 역사상 단일 민사 환수 사례로는 최대였습니다. 2026년 초 기준으로 관재인이 회수한 금액은 약 153억 달러이며, 인정된 청구액 기준으로 평균 73%가량이 피해자에게 돌아갔습니다. 청구가 인정된 계좌 가운데 상당수는 전액을 돌려받았습니다.
미국 법무부가 따로 운영한 피해자 기금도 있었습니다. 주로 중개 펀드를 통해 간접 투자해 관재인 절차의 대상이 되기 어려웠던 이들이 대상이었습니다. 이 기금은 2024년 12월 마지막 배분을 끝으로 문을 닫았고, 약 4만 1,000명이 인정 손실의 94%에 가까운 금액을 돌려받았습니다. 두 절차는 계산 기준이 달라 회수율 숫자도 다르게 나옵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회수율은 실제로 넣었다가 잃은 원금 기준입니다. 명세서에 찍혀 있던 648억 달러를 기준으로 하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집니다. 수십 년간 자신이 부자라고 믿고 그에 맞춰 살아온 사람들에게, 원금을 대부분 돌려받았다는 사실이 곧 원상 회복을 뜻하지는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남는 것
이 사건에서 가장 오래 기억할 만한 대목은 경고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경고가 있었는데도 소용없었다는 점입니다. 한 사람이 9년 동안 세 차례 자료를 내밀었고, 언론도 의문을 제기했으며, 업계 안에서도 이상하다는 말이 돌았습니다. 그런데도 돈은 계속 들어갔습니다. 문제를 지적하는 쪽이 아니라 문제를 지적당한 쪽이 더 믿을 만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투자자들이 실제로 확인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대부분은 매달 우편으로 오는 거래 내역서와, 먼저 투자한 지인이 문제없이 돈을 찾았다는 경험담이었습니다. 둘 다 결국 매도프 쪽에서 나온 정보였습니다. 자산이 어디에 어떤 형태로 보관돼 있는지, 그 보관을 제3자가 확인하고 있는지를 물어본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수익률의 모양도 다시 볼 만합니다. 보통 우리는 수익률이 높은지를 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알려 준 것은 수익률이 지나치게 고른 것도 신호라는 사실입니다. 시장은 원래 울퉁불퉁합니다. 울퉁불퉁하지 않은 성적표가 있다면 그 매끈함이 어디서 왔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특히 그 매끈함이 다른 모든 자산이 흔들리는 시기에도 유지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접근하기 어렵다는 점이 매력이 됐다는 사실도 기억할 만합니다. 매도프는 아무나 받아 주지 않는다는 인상을 풍겼고, 소개를 받아 겨우 들어갔다는 경험이 투자자에게 검증의 대체물이 됐습니다. 남들이 못 들어가는 곳에 들어갔다는 감각은 판단을 무디게 만듭니다. 648억 달러짜리 명세서가 결국 종이였다는 사실은, 우리가 확인했다고 믿는 것의 출처를 한 번 더 따져 봐야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