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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년 회사가 주말 이틀 만에 사라진 이유

2008년 9월 15일 새벽 1시 30분, 리먼 브라더스는 뉴욕 남부지방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습니다. 신청서에 적힌 자산은 6,390억 달러, 부채는 6,130억 달러였습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파산이었고 그 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았습니다. 1850년 앨라배마의 작은 면화 중개상으로 시작해 남북전쟁도, 대공황도, 두 번의 세계대전도 넘긴 158년짜리 회사였습니다.

이 회사에는 전 세계에서 약 2만 6천 명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계열사와 관계사는 3천 곳에 가까웠고 돈을 받아야 할 채권자는 93만 명이 넘었습니다. 월요일 아침 런던과 뉴욕의 직원들은 상자를 들고 건물을 나섰습니다.

많은 사람이 리먼의 파산을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기억합니다. 정확히는 원인이라기보다 도화선에 가깝습니다. 불은 이미 2년 전부터 미국 주택시장 밑바닥에서 타고 있었고, 리먼은 그 불길 위에 가장 깊이 발을 담근 회사였을 뿐입니다.

집값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

2000년대 초반 미국의 주택 가격은 오랫동안 꾸준히 올랐습니다. 집값이 오르기만 한다면 빌려주는 쪽의 계산은 간단해집니다. 갚지 못해도 집을 팔면 원금을 회수할 수 있으니, 신용이 나쁜 사람에게 빌려줘도 위험하지 않다는 논리가 섭니다. 이렇게 신용 등급이 낮은 사람에게 내준 주택담보대출을 서브프라임 모기지라고 부릅니다. 우량 등급인 프라임 아래라는 뜻입니다.

문제는 이 대출이 대출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은행들은 수천 건의 주택담보대출을 묶어 채권 형태의 상품으로 만들어 팔았습니다. 개별 대출은 위험해도 수천 건을 섞으면 전부 동시에 부실해질 확률은 낮다는 것이 명분이었습니다. 신용평가사들이 여기에 최상위 등급을 매겨 주자 연기금과 보험사, 해외 은행까지 사 갔습니다. 부실 대출이 안전 자산이라는 옷을 입고 전 세계로 퍼진 것입니다.

이렇게 만든 채권을 다시 묶고 쪼갠 상품도 대량으로 팔렸습니다. 부채담보부증권, 영어 약자로 시디오라 불린 상품입니다. 포장이 몇 겹씩 씌워지자 그 안에 어떤 대출이 들어 있는지 파는 쪽도 사는 쪽도 알기 어려워졌고, 모두가 등급표의 알파벳만 보고 거래했습니다.

전제가 무너진 것은 2006년 무렵부터였습니다. 미국의 집값이 더 이상 오르지 않고 꺾였고, 압류한 집을 팔아도 원금이 나오지 않게 되자 안전하다던 채권 값이 무너졌습니다. 2007년에는 이 상품을 잔뜩 들고 있던 펀드들이 하나씩 문을 닫았고, 2008년 3월에는 투자은행 베어스턴스가 사실상 무너져 연방준비제도의 지원을 받은 제이피모건에 넘어갔습니다. 시장은 다음 차례를 세기 시작했습니다.

리먼이 가장 깊이 물린 이유

리먼 브라더스는 이 시장에 남들보다 한 발 더 들어가 있었습니다. 2003년과 2004년에 걸쳐 대출을 직접 만들어 내는 회사들을 사들였는데, 그중 하나가 서브프라임 전문업체 비엔시 모기지였습니다. 남이 만든 대출을 사서 파는 데 그치지 않고 대출을 찍어 내는 공장을 소유한 셈입니다. 시장이 좋을 때 큰 수익을 내던 이 구조는, 시장이 꺾이자 그대로 손실이 됐습니다.

여기서 레버리지라는 말을 짚고 가겠습니다. 자기 돈에 비해 얼마나 많은 빚을 얹어 굴리는지를 나타내는 말로, 지렛대라는 뜻입니다. 2007년 11월 기준 리먼의 레버리지 비율은 30.7배로, 2004년의 23.9배보다 올라간 숫자였습니다. 자기 자본 1달러로 30달러어치 자산을 굴렸다는 뜻이고, 이러면 자산 가치가 3퍼센트만 떨어져도 자기 자본이 통째로 날아갑니다.

자산의 내용도 위험했습니다. 2007 회계연도 말 기준 리먼이 들고 있던 상업용과 주거용 부동산 관련 자산은 1,110억 달러로, 자기 자본의 네 배가 넘었습니다. 게다가 2007년 10월에는 비싸게 샀다는 신용평가사들의 지적에도 대형 아파트 리츠 아크스톤 인수를 밀어붙였습니다. 다른 참가자들이 부동산에서 발을 빼던 시점이었습니다.

2008년 6월, 리먼은 상장 이후 처음으로 분기 손실을 발표했습니다. 2분기 28억 달러 손실이었고, 모기지 관련 자산과 레버리지론에서 37억 달러를 상각한 결과였습니다. 회사는 곧바로 60억 달러를 조달했지만, 시장은 이미 리먼의 장부를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도 있었습니다. 파산 후 법원이 선임한 조사관 안톤 발루카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리먼은 분기 결산일마다 자산을 일시적으로 장부에서 덜어 내는 회계 기법을 썼습니다. 사내에서 리포 105라 불린 이 거래로 2007년 4분기에 386억 달러, 2008년 1분기에 491억 달러, 2분기에 503억 8천만 달러어치가 결산일 장부에서 사라졌습니다. 내부에서도 이를 눈속임이자 겉치레, 심지어 끊지 못하는 약이라고 불렀습니다. 재무 총괄 책임자 마틴 켈리는 이 거래에 실질이 없었다고 진술했습니다.

2008년 9월, 마지막 일주일

2008년 여름 내내 리먼은 자본을 대 줄 상대를 찾아다녔고, 그중 한 곳이 한국산업은행이었습니다. 산업은행이 리먼에 자본을 넣는 방안을 두고 협상이 오가며 국내에서도 큰 화제가 됐지만, 9월 9일 협상이 끝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날 리먼 주가는 35퍼센트 넘게 빠지며 9.10달러까지 내려앉았습니다.

다음 날인 9월 10일, 리먼은 3분기에 39억 3천만 달러 손실이 예상되고 56억 달러를 추가 상각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주가는 1년 전 고점 대비 90퍼센트가 빠져 있었습니다. 회사는 자구책을 내놓았지만, 시장이 원한 것은 계획이 아니라 당장의 현금이었습니다.

이 시점의 문제는 손실 규모가 아니라 자금 조달 구조였습니다. 리먼 같은 투자은행은 매일 시장에서 단기로 돈을 빌려 하루를 넘겼습니다. 담보를 맡기고 하룻밤 돈을 빌리는 환매조건부채권 거래가 대표적인데, 이 구조는 상대가 계속 빌려줄 때만 굴러갑니다. 거래 상대들이 리먼의 담보를 못 미더워하며 발을 빼자, 회사는 손실로 죽기 전에 현금이 말라 죽는 길로 들어섰습니다.

9월 12일 금요일 저녁, 재무장관 헨리 폴슨은 월가 주요 금융회사 수장들을 뉴욕 연방준비은행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정부 돈은 쓰지 않을 테니 업계가 스스로 해법을 찾으라는 것이 요지였습니다. 아시아 시장이 열리는 월요일 아침까지, 주말 이틀이 시한이었습니다.

뉴욕 연준에서 보낸 주말 이틀

인수 후보는 미국의 뱅크오브아메리카와 영국의 바클레이스였습니다. 토요일 아침, 뱅크오브아메리카 실사팀은 리먼의 자산이 500억에서 650억 달러가량 과대평가돼 있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최고경영자 켄 루이스는 리먼은 어차피 무너지고 다음은 메릴린치라고 판단했고, 곧바로 메릴린치의 존 테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토요일 밤이 되자 바클레이스가 유력해 보였습니다. 민간 컨소시엄이 500억에서 600억 달러 규모의 부실 자산을 떠안고 나머지를 바클레이스가 인수하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뉴욕 연준은 인수가 완료될 때까지 바클레이스가 리먼의 채무를 보증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제이피모건이 베어스턴스를 인수할 때와 같은 조건이었습니다.

여기서 영국 법이 걸렸습니다. 그런 보증을 하려면 주주총회 승인이 필요했고 절차에 30일에서 60일이 걸렸습니다. 영국 금융감독청은 이 요건을 면제해 달라는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일요일 오전 9시 30분, 바클레이스의 존 발리와 로버트 다이아몬드는 폴슨 측에 승인을 받지 못했다고 알렸습니다. 영국 재무장관 앨리스테어 달링은 훗날 자신이 이 거래를 막았다며, 영국 납세자가 미국 은행을 떠받치게 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연준이 직접 보증을 서는 방안도 거론됐지만 폴슨이 거부했습니다. 수백억 달러를 미국 정부가 떠안는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연준 의장 벤 버냉키는 훗날 리먼에게 빌려줄 만한 담보가 충분하지 않았고, 상환을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없는 곳에는 연준이 돈을 빌려줄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리먼의 최고경영자 리처드 펄드는 담보는 충분했다고 반박했습니다.

일요일 밤 결론이 났습니다. 같은 날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메릴린치를 주당 29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고, 리먼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당국은 월요일 개장 전에 파산을 신청하라고 압박했고 리먼은 15일 새벽 1시 30분에 신청서를 냈습니다. 공교롭게도 뉴욕 연준이 담보 범위를 넓혀 주겠다는 서한을 보낸 것은 그날 아침 7시 45분, 신청이 끝난 뒤였습니다.

파산 다음 날부터 벌어진 일

9월 15일 월요일, 뉴욕 증시는 무너졌습니다. 다우지수는 504포인트, 4.4퍼센트 내렸고 에스앤피500은 4.7퍼센트, 나스닥은 3.6퍼센트 빠졌습니다. 리먼 주식은 하루에 94퍼센트가 사라졌고 보험사 에이아이지도 60.8퍼센트 급락했습니다. 2001년 이후 최악의 하루였습니다.

더 무서운 일은 다음 날 벌어졌습니다. 9월 16일, 미국의 대표적 머니마켓펀드인 리저브 프라이머리 펀드가 리먼이 발행한 기업어음 7억 8,500만 달러어치를 가치 없음으로 처리하면서 1주당 순자산가치가 0.97달러로 떨어졌습니다. 머니마켓펀드는 원금이 깨지지 않는, 현금과 다름없는 상품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 믿음이 깨지자 환매가 몰려 자산은 626억 달러에서 353억 달러로 줄었고, 기업들이 운전자금을 조달하던 단기자금 시장이 얼어붙었습니다.

같은 날 미국 정부의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연방준비제도는 에이아이지에 최대 850억 달러를 24개월간 빌려주겠다고 발표하고 그 대가로 지분 79.9퍼센트를 받았습니다. 리먼은 살리지 않고 에이아이지는 살린 셈입니다. 정부는 에이아이지가 무너지면 시장 전체가 흔들린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그 기준이 무엇이냐는 논란은 지금도 이어집니다.

불길은 국경을 넘었습니다. 세계 증시에서 사라진 시가총액은 약 10조 달러, 미국 가계 자산은 석 달 사이 5조 달러가 증발했습니다. 미국 의회는 7,000억 달러 규모의 부실자산 구제 프로그램을 통과시켰고, 리먼의 북미 사업은 10월 바클레이스가 사 갔습니다. 한국도 그해 가을 원화 가치가 급락하고 주가가 무너지며 여파를 그대로 겪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남는 것

리먼의 이야기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레버리지의 얼굴입니다. 자기 돈 1달러로 30달러를 굴리면 시장이 좋을 때 수익률은 크게 확대됩니다. 그런데 그 지렛대는 손실에도 똑같이 작동합니다. 빌려서 굴리는 돈의 규모는 좋을 때는 실력처럼 보이지만, 나빠지는 순간 남은 시간을 결정합니다.

두 번째는 장부와 현실의 거리입니다. 리먼이 분기마다 장부를 정리하는 데 쓴 기법은 실제 위험을 조금도 줄이지 않았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숫자만 바꿨을 뿐입니다. 시장이 평온할 때는 그 차이가 드러나지 않지만, 자금이 마르면 상대는 장부가 아니라 담보의 실물을 봅니다.

세 번째는 유동성과 건전성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리먼은 손실 때문에 문을 닫기 전에 현금 때문에 먼저 멈췄습니다. 매일 돈을 빌려 돌아가는 구조는 상대가 등을 돌리는 순간 며칠을 버티지 못합니다. 자산이 얼마인가보다 당장 움직일 수 있는 돈이 얼마인가가 생사를 가르는 국면이 있습니다.

마지막은 구제의 기준입니다. 베어스턴스는 지원을 받았고 리먼은 받지 못했으며, 다음 날 에이아이지는 받았습니다. 위기 한복판의 결정은 정교한 원칙보다 그 순간의 판단과 여론, 법적 제약이 뒤섞인 결과였습니다. 시장이 흔들릴 때 누군가 반드시 막아 줄 것이라는 가정은 생각보다 튼튼하지 않습니다. 158년을 버틴 회사도 주말 이틀 만에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그 뒤로도 오래 기억해 둘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