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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지수가 인텔 없이 열린 날

2024년 11월 8일 금요일, 뉴욕 증시가 열리기 직전이었습니다. 미국 주식시장을 대표하는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의 30개 구성 종목 명단에서 한 줄이 조용히 지워졌습니다. 인텔이었습니다. 1999년에 이 지수에 편입된 뒤 25년을 지켜온 자리였고, 그 25년 동안 인텔은 반도체라는 산업 자체를 대표하는 이름이었습니다. 지수를 관리하는 S&P 다우존스 인디시즈는 일주일 전인 11월 1일에 교체를 예고하면서, 반도체 업종을 더 대표성 있게 반영하기 위한 조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인텔의 자리에 앉은 이름은 엔비디아였습니다. 공교로운 일입니다. 2024년 10월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2005년 당시 인텔 최고경영자였던 폴 오텔리니는 엔비디아를 200억 달러에 인수하는 안을 이사회에 올렸고 이사회는 그 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19년 뒤, 사들이려다 포기했던 그 회사가 포기한 쪽을 지수 명단에서 밀어냈습니다.

그런데 인텔의 추락을 인수 한 건을 놓친 이야기로 정리해버리면 핵심을 놓칩니다. 인텔이 잃은 것은 좋은 매물이 아니었습니다. 인텔이 잃은 것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반도체 공장이라는 지위였습니다. 10나노미터 공정 하나가 몇 년씩 밀리는 동안, 설계도 하고 공장도 직접 돌리던 이 회사의 구조가 강점에서 족쇄로 바뀌었습니다. 이 글은 거절의 일화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공장 이야기입니다.

컴퓨터 안에 이름을 새긴 회사

1990년, 인텔의 마케팅 담당자였던 데니스 카터는 앤디 그로브 밑에서 기술 보좌역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는 솔트레이크시티에 있던 광고회사의 파트너 존 화이트와 함께 이상한 기획을 들고 나왔습니다. 소비자는 컴퓨터를 살 뿐 그 안에 든 칩을 사지 않는데, 그 칩에 브랜드를 붙여보자는 것이었습니다. 1991년에 공식 출범한 인텔 인사이드는 부품 회사가 완제품 소비자를 직접 겨냥한 거의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구조가 영리했습니다. 인텔은 자사 로고를 제품과 광고에 붙이는 PC 제조사에게 광고비를 보조했습니다. 제조사는 공짜로 광고 예산을 늘릴 수 있었고, 인텔은 남의 광고 지면에 자기 이름을 깔 수 있었습니다. 초기 투입 자금은 2억 5천만 달러였습니다. 1992년 말에는 500개가 넘는 PC 제조사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대상이 되는 제조사 광고의 70퍼센트에 인텔 인사이드 로고가 실렸습니다. 컴퓨터를 잘 모르는 사람도 매장에서 그 스티커를 찾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축이 맞물렸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와 인텔의 x86 프로세서가 짝을 이룬 이 조합을 업계는 윈텔이라고 불렀습니다. x86은 인텔이 만든 명령어 체계, 즉 소프트웨어가 칩에게 말을 거는 문법입니다. 세상의 거의 모든 PC 소프트웨어가 이 문법으로 쓰였기 때문에 PC를 만들려면 x86 칩을 써야 했고, x86 칩을 제대로 만드는 회사는 사실상 인텔뿐이었습니다.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붙잡아두는 이 구조가 인텔의 진짜 성벽이었습니다.

성벽이 높으면 값을 부르는 쪽이 유리합니다. 인텔은 PC 한 대에서 가장 비싼 부품을 공급하면서 가장 높은 이익률을 가져갔습니다. 조립과 유통을 맡은 PC 제조사들은 얇은 마진을 두고 서로 싸웠고, 인텔은 그 위에서 조용히 돈을 벌었습니다. 앤디 그로브가 남긴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는 말은 이 시기 인텔의 사내 문화를 대표하는 문장이 되었고, 경쟁사의 추격을 공정 기술로 따돌리는 것이 그 편집광의 구체적인 형태였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떠받친 것은 공장이었습니다. 인텔은 설계만 잘하는 회사가 아니라, 같은 시대의 어느 회사보다 작은 트랜지스터를 더 싸게 더 많이 찍어내는 회사였습니다. 경쟁사가 비슷한 설계를 들고 와도 인텔의 공정에서 나온 칩이 더 빠르고 전력을 덜 먹었습니다. 설계가 비슷하면 공장이 이긴 쪽이 제품도 이깁니다. 인텔의 전성기는 마케팅의 승리로 기억되지만 실제로는 제조의 승리였고, 그래서 공장이 흔들렸을 때 모든 것이 함께 흔들렸습니다.

공장을 가진 회사, 설계만 하는 회사

반도체 회사를 구분하는 가장 쉬운 기준은 공장을 가졌는지입니다. 설계부터 생산, 검사, 포장, 판매까지 한 회사가 전부 하는 방식을 종합반도체기업, 영어 약자로 IDM이라고 부릅니다. 인텔이 교과서적인 IDM이었고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도 이 범주에 들어갑니다. 한 울타리 안에서 설계팀과 공정팀이 매일 얼굴을 보며 칩을 다듬을 수 있다는 것이 이 방식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반대쪽에는 공장을 아예 두지 않는 회사가 있습니다. 설계와 소프트웨어만 하고 생산은 남에게 맡기는 방식을 팹리스라고 합니다. 팹은 공장, 리스는 없다는 뜻입니다. 엔비디아와 퀄컴, AMD, 애플의 칩 부문이 모두 팹리스입니다. 공장을 짓지 않으니 막대한 설비 투자 부담이 없고 설계가 좋으면 좋은 공장을 골라 쓰면 됩니다. 대신 생산 능력을 남의 사정에 의존해야 합니다.

그 생산을 받아주는 회사가 파운드리입니다. 남의 설계도를 받아 칩만 찍어주고 수수료를 받는 위탁생산 전문 업체입니다. 1987년 대만에서 설립된 TSMC가 이 사업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TSMC는 자기 브랜드 칩을 팔지 않기 때문에 고객과 경쟁하지 않고, 그래서 애플도 엔비디아도 안심하고 설계도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세계의 팹리스 회사들이 한 공장에 몰리면 그 공장은 누구보다 많은 물량을 다루게 되고, 물량이 많으면 공정은 더 빨리 좋아집니다.

1990년대에는 IDM이 압도적으로 유리했습니다. 공정 기술의 선두는 인텔이었고 바깥의 어떤 공장도 인텔의 공장을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구조에는 숨은 조건이 하나 붙어 있었습니다. 우리 공장이 세계 최고라는 전제가 깨지면 한몸이라는 장점이 그대로 약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팹리스 회사는 공장이 말을 안 들으면 공장을 바꾸지만 IDM은 그럴 수 없습니다. 공정이 늦으면 제품이 함께 늦고, 제품이 늦으면 공장을 채울 물량이 줄고, 물량이 줄면 공정을 개선할 돈과 데이터가 함께 줄어듭니다.

2005년의 거절

시간을 2005년으로 돌려봅니다. 그해 애플은 매킨토시의 심장을 IBM과 모토로라 계열의 파워PC에서 인텔 칩으로 갈아타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직접 무대에서 알린 이 전환은 2006년에 마무리되었고, 이후 오랫동안 맥 안에는 인텔 칩이 들어갔습니다. 그러니 2005년과 2006년의 애플과 인텔은 사이가 아주 좋았습니다. 바로 그 시기에 애플은 또 다른 기기에 들어갈 칩을 두고도 인텔을 찾아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1차 근거는 2013년 5월 오텔리니가 퇴임을 앞두고 미국 잡지 애틀랜틱과 한 인터뷰입니다. 그는 애플이 관심을 보인 칩이 하나 있었고 애플이 지불하겠다는 가격은 정해져 있었으며 거기서 5센트도 더 낼 생각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격이 인텔이 예상한 원가보다 낮았다고 했습니다. 그가 덧붙인 문장이 이 일화를 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상 원가는 틀렸고 물량은 누가 생각했던 것보다 100배였다는 것입니다.

다만 여기서 선을 그어둘 부분이 있습니다. 가격과 물량에 관한 저 서술은 오텔리니 본인이 8년쯤 지나 회고한 내용입니다. 애플 쪽이 당시 협상 조건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적은 없고, 거절된 칩이 정확히 어떤 제품용이었는지도 인터뷰에서 또렷하게 특정되지 않았습니다. 인텔이 아이폰 칩 공급을 거절했다는 문장은 널리 퍼졌지만 확인된 사실은 전직 최고경영자가 가격 때문에 큰 기회를 놓쳤다고 스스로 회고했다는 데까지입니다. 그 선 밖은 그렇게 전해진다는 이야기로 두는 편이 정확합니다.

같은 2005년에 또 하나의 선택이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오텔리니는 엔비디아를 200억 달러에 사들이는 안을 밀었지만 이사회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인텔 내부에도 그래픽 칩이 훗날 데이터센터의 핵심 부품이 될 수 있다고 본 사람들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인텔은 대신 자체 그래픽 프로젝트인 라라비를 택했고 이 프로젝트를 이끈 사람은 훗날 최고경영자가 되는 팻 겔싱거였습니다. 라라비의 상용 제품 계획은 2009년에 접혔습니다.

기회를 비껴간 기록은 한 번 더 있습니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인텔은 2017년과 2018년 사이 오픈AI와 여러 차례 협력을 논의했지만, 당시 비영리 연구조직이던 오픈AI에 투자하는 안을 결국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화들을 늘어놓으면 인텔의 추락이 몇 번의 잘못된 회의 결정 때문이었다는 결론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회사가 실제로 무너진 지점은 회의실이 아니라 공장 안이었습니다. 다음 장이 그 이야기입니다.

틱톡이 멈춘 자리

인텔에는 틱톡이라는 개발 리듬이 있었습니다. 한 해는 공정을 미세화하고 다음 해는 그 공정 위에서 설계를 바꾸는 방식으로 2년마다 한 세대씩 전진하는 방식입니다. 시계처럼 정확했기 때문에 경쟁사는 인텔의 다음 제품을 예측하면서도 따라잡을 수 없었습니다. 공정의 세대는 보통 나노미터 숫자로 표시합니다. 숫자가 작아질수록 트랜지스터를 더 촘촘히 넣을 수 있어 같은 면적에서 성능과 전력 효율이 함께 좋아집니다.

인텔은 14나노 공정까지 이 리듬을 지켰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10나노 공정으로 만들 첫 제품군은 코드명 캐넌레이크로 불렸고 처음에는 2015년에 나올 것으로 예상되었다가 2016년으로 밀렸습니다. 그다음 목표는 2018년이었습니다. 2017년 초 전시회에서 인텔은 캐넌레이크가 들어간 노트북을 보여주면서도 제품 출시는 빠르면 2018년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세대가 통째로 공중에 떠버린 것입니다.

2018년 초 인텔은 전년 말부터 모바일용 캐넌레이크 출하를 시작했으며 그해 생산을 늘리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 4월 실적 발표에서 10나노 출하는 소량에 그쳤다고 인정하며 본격 양산을 2019년으로 미뤘고, 7월에는 그 시점을 다시 2019년 2분기 후반으로 늦췄습니다. 그사이 실제로 시장에 나온 10나노 제품은 2018년 5월에 출시된 코어 i3-8121U 한 종뿐이었습니다. 한 세대를 대표해야 할 공정이 단 하나의 모델로 연명했습니다.

그 한 종의 운명도 상징적입니다. 이 칩은 레노버 노트북 한 모델과 인텔 자사 소형 PC에만 들어갔고, 내장 그래픽은 양산품에서 아예 작동하지 않는 상태로 출하되었습니다. 2021년 7월 인텔은 리눅스 드라이버에서 이 세대의 그래픽 지원을 제거한다고 밝히며 내장 그래픽이 켜진 양산품이 없었다는 사실을 사실상 확인했습니다. 인텔은 2019년 10월에 이 칩과 해당 소형 PC의 단종을 공지했고 주문은 2019년 12월 말, 출하는 2020년 2월 말에 끝났습니다.

이 지연이 치명적이었던 이유는 단순합니다. 10나노가 밀린 동안 인텔은 14나노 공정을 계속 고쳐 쓰면서 제품을 냈습니다. 같은 공정에서 설계를 조금씩 손보는 방식으로는 성능이 크게 오르지 않습니다. 반면 경쟁 진영은 더 미세한 공정으로 넘어가면서 성능과 전력 효율을 같이 끌어올렸습니다. 2년마다 한 세대를 전진하던 회사가 4년 넘게 같은 자리에 머물렀고, 그 사이 벌어진 격차는 제품 한두 개로 메울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습니다.

그 사이 대만에서 벌어진 일

인텔이 10나노와 씨름하던 바로 그 기간에 TSMC는 전진했습니다. 7나노 공정이 2018년에 양산에 들어갔고 5나노는 2020년, 3나노는 2022년으로 이어졌습니다. 공정 이름에 붙는 숫자 체계가 회사마다 달라 단순 비교는 조심해야 하지만 흐름의 방향은 분명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공정 기술의 선두였던 회사가 뒤로 처지고, 남의 칩을 찍어주던 회사가 앞으로 나갔습니다.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쪽은 AMD였습니다. AMD는 한때 자기 공장을 가진 IDM이었지만 2009년에 생산 부문을 떼어내고 팹리스가 되었습니다. 공장을 포기한 결정이 당시에는 후퇴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TSMC의 7나노 공정이 열렸을 때 AMD는 설계도만 들고 그 공장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14나노에 묶여 있던 인텔의 칩과 7나노에서 찍어낸 AMD의 칩이 같은 매대에 놓이면서, 수십 년 동안 바뀌지 않던 구도가 흔들렸습니다.

숫자로 보면 변화는 서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진행되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머큐리리서치 집계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2025년 4분기 데스크톱 PC용 프로세서 출하량에서 AMD의 비중은 약 36퍼센트로, 1년 전 27퍼센트에 못 미치던 수준에서 크게 올랐습니다. 노트북용은 26퍼센트, 서버용은 28.8퍼센트였고 서버에서 인텔은 71퍼센트대를 지켰습니다. 한때 서버 시장을 사실상 혼자 가졌던 회사가 10년 사이에 경쟁자에게 3분의 1 가까이를 내준 셈입니다.

여기서 IDM 구조의 비용이 드러납니다. 공장은 한 번 지으면 막대한 자금이 묶이고 가동률이 떨어지면 그 자체로 거대한 적자를 만듭니다. 팹리스 회사는 불황에 주문을 줄이면 되지만 IDM은 공장을 멈출 수 없습니다. 공정이 늦어 제품이 안 팔리는 시기에도 공장 유지비는 그대로 나가고, 그 돈은 다음 세대 공정을 개발할 재원에서 빠져나갑니다. 인텔은 결국 자사 일부 소비자용 제품의 핵심 부분을 TSMC에 맡겨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세계 최고의 공장을 가졌다는 자부심으로 버틴 회사가 제품 경쟁력을 지키려고 바깥 공장을 빌려 쓰게 된 것입니다.

애플이 떠난 날

2020년 6월 22일, 애플은 맥의 프로세서를 자체 설계 칩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습니다. 2년 안에 전환을 마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같은 해 11월 10일에 첫 자체 칩 M1이 공개되었고 전환은 2023년 6월 5일 M2 울트라를 쓴 맥 프로 발표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날 애플은 마지막 인텔 맥을 단종시켰습니다. 2006년에 시작된 인텔과 맥의 동거가 17년 만에 끝난 것입니다.

애플이 떠난 것은 매출 규모 때문에 아픈 일이 아니었습니다. 맥은 전 세계 PC 시장에서 비중이 큰 편이 아닙니다. 아픈 이유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애플이 자체 설계 칩을 TSMC 공정으로 찍어 내놓은 노트북은 같은 시기 인텔 칩 노트북보다 전력을 덜 쓰면서 더 오래 버텼습니다. 소비자가 매장에서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차이였고, 인텔의 공정이 뒤처졌다는 사실을 가장 알기 쉽게 보여준 전시물이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x86이라는 성벽에 금이 갔다는 점입니다. 애플은 설계 체계를 Arm 계열로 바꾸면서도 소프트웨어 호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냈습니다. x86이 아니어도 쓸 만한 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자 다른 회사들도 같은 길을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머큐리리서치 추정에 따르면 2025년 4분기 PC용 프로세서에서 Arm 계열 비중은 13퍼센트 수준이었습니다.

서버 쪽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대형 클라우드 업체들은 직접 칩을 설계해 파운드리에 맡기기 시작했습니다. 인텔에게 이들은 최대 고객이면서 동시에 경쟁자가 되었습니다. 부품을 사는 쪽이 부품을 만들 능력을 갖추면 공급업체의 가격 결정력은 빠르게 줄어듭니다. 가장 까다로운 고객이 가장 먼저 떠났고, 그 고객이 떠나면서 x86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전제가 함께 무너졌습니다.

AI라는 두 번째 파도

인텔이 공정 지연에 매여 있던 시기에 반도체 시장의 무게중심이 옮겨갔습니다. 대규모 인공지능 모델을 학습시키려면 단순한 계산을 동시에 엄청나게 많이 처리해야 하는데, 이런 작업에는 CPU보다 그래픽 칩 계열의 구조가 훨씬 맞습니다. 엔비디아는 여기에 CUDA라는 소프트웨어 환경을 오래 붙여두었습니다. 연구자들이 CUDA 위에서 코드를 쓰기 시작하자 칩만 똑같이 만들어서는 그 생태계를 대체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인텔이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2009년에 접은 라라비 이후에도 인텔은 AI 칩 회사를 사들였습니다. 2016년에 너바나시스템즈와 모비디우스를, 2019년에는 이스라엘의 하바나랩스를 20억 달러 규모로 인수했습니다. 그런데 2020년에는 너바나 계열 제품 개발을 접고 하바나 쪽에 힘을 싣는 등 방향이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인수는 많았고 축은 자주 흔들렸습니다.

하바나에서 나온 가우디 계열 가속기는 지금도 판매되고 있지만 대규모 학습 클러스터에서 의미 있는 점유율을 확보하지는 못했습니다. 이후 데이터센터용으로 준비했던 팰컨쇼어스는 상용 출시가 취소되었습니다. 2026년 기준으로 인텔이 내세우는 다음 카드는 추론 작업에 초점을 맞춘 데이터센터 GPU 크레센트아일랜드로, 2026년 하반기 고객 샘플 공급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랙 단위 제품인 재규어쇼어스는 2027년 이후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문제의 뿌리는 같습니다. AI 가속기 경쟁은 설계만의 싸움이 아닙니다. 최신 공정에서 거대한 칩을 수율 좋게 뽑아내고, 메모리를 층층이 쌓아 붙이는 고급 패키징도 안정적으로 돌려야 합니다. 공정 일정이 흔들리는 회사가 이 경쟁에 제시간에 뛰어들기는 어렵습니다. 인텔이 AI 흐름에서 밀린 것은 유행을 못 읽었기 때문이라기보다, 유행을 따라갈 제조 체력이 그 시점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사실에 가깝습니다.

2024년의 두 날

2024년 8월 1일 장 마감 후, 인텔은 실적 전망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밝히면서 대규모 감원 계획을 함께 발표했습니다. 전체 인력의 약 15퍼센트를 줄이고 배당을 중단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음 거래일인 8월 2일 주가는 26퍼센트 급락했습니다. 수십 년 만에 가장 큰 하루 낙폭이었습니다. 배당은 오랫동안 인텔 주식을 들고 있던 투자자들에게 이 회사의 성격을 설명해주던 요소였는데 그 요소가 사라졌습니다.

그해 숫자는 더 무거웠습니다. 2025년 1월 말 발표된 2024년 연간 실적에서 인텔의 매출은 531억 달러로 2퍼센트 줄었고, 인텔에 귀속되는 순손실은 188억 달러, 주당 4.38달러였습니다. 특히 파운드리 부문은 매출 175억 달러에 영업손실 134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공장을 돌리는 쪽이 회사 전체의 손실을 키우는 구조가 재무제표에 그대로 드러난 셈입니다.

그 사이 11월 1일, S&P 다우존스 인디시즈는 11월 8일 개장 전부터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에서 인텔을 빼고 엔비디아를 넣는다고 발표했습니다. 같은 발표에서 셔윈윌리엄스가 다우를 대체했고 다우존스 공공사업 평균지수에서는 비스트라가 AES를 대체했습니다. 지수 편출입은 기업 가치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지수의 대표성을 맞추는 작업입니다. 그러나 1999년부터 25년간 그 명단에 있던 이름이 빠지는 일은 상징성이 다릅니다.

여기서 개인투자자가 자주 오해하는 지점을 하나 짚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지수에서 빠진다는 것은 회사가 끝났다는 선언이 아니고, 지수에 들어간다는 것이 회사가 안전해졌다는 보증도 아닙니다. 다우지수는 30개 종목으로 미국 산업의 얼굴을 보여주려는 지수이고 편출입은 그 얼굴을 다시 그리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인텔 주가는 제외 이후의 기간에도 계속 움직였고, 지수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가 그 움직임을 결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경영진도 바뀌었습니다. 2021년 2월에 취임해 공장 중심의 재건을 밀어붙였던 팻 겔싱거의 퇴임이 2024년 12월 초에 발표되었습니다. 최고재무책임자 데이비드 진스너와 제품 부문 책임자 미셸 존스턴 홀트하우스가 공동 임시 최고경영자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2025년 3월 13일,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오래 일했던 립부 탄이 새 최고경영자로 발표되어 3월 18일 취임했습니다.

떼어내기, 감원, 그리고 미국 정부

구조를 바꾸는 작업은 이미 시작되어 있었습니다. 2024년 9월 17일 겔싱거는 사내 메모를 통해 파운드리 사업부를 별도 자회사로 세우겠다고 밝혔습니다. 독립적인 사외이사가 참여하는 자체 이사회를 두고 외부 자금을 직접 유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당시 보도에서는 이 자회사를 나중에 따로 상장하는 선택지도 검토 대상으로 언급되었습니다. 설계 부문과 공장 부문을 갈라, 공장 쪽이 외부 고객과 외부 돈을 받기 쉽게 만들겠다는 뜻이었습니다.

2025년에는 감원과 투자 축소가 이어졌습니다. 그해 7월 인텔은 연말까지 핵심 인력을 7만 5천 명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밝혔고, 독일과 폴란드에 추진하던 공장 계획을 취소했습니다. 1년 반 전만 해도 공장을 더 짓겠다던 회사가 그 계획을 접었다는 점에서, 이 발표는 전략의 수정이라기보다 자금 사정에 대한 고백에 가까웠습니다. 반도체 공장은 결심만으로 서지 않습니다.

가장 이례적인 일은 2025년 8월에 벌어졌습니다. 8월 22일, 미국 정부가 인텔 주식 4억 3,330만 주를 주당 20.47달러, 총 89억 달러에 인수하는 내용이 발표되었습니다. 지분율은 약 9.9퍼센트입니다. 이 돈은 새로 편성한 예산이 아니라, 반도체법에 따라 인텔에 배정됐지만 아직 지급되지 않은 보조금 57억 달러와 국방 관련 보안 생산 프로그램으로 책정된 32억 달러를 합친 것이었습니다. 보조금을 현금으로 주는 대신 지분으로 받는 방식입니다.

조건도 들여다볼 만합니다. 정부는 이사회 자리나 경영 관여 권한을 갖지 않는 수동적 주주로 참여하며, 주주 승인이 필요한 사안에서는 일부 예외를 빼고 이사회와 같은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하나의 장치가 붙었습니다.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의 지분 51퍼센트 이상을 보유하지 않게 되면, 주당 20달러에 추가로 5퍼센트를 사들일 수 있는 5년 만기 신주인수권이 행사 가능해집니다. 파운드리를 완전히 떼어내는 선택에 가격표를 붙여둔 셈입니다.

민간 자금도 들어왔습니다. 2025년에 엔비디아가 50억 달러를 투자하며 제품 협력을 함께 발표했고 소프트뱅크도 20억 달러를 넣었습니다. 20년 전 인수를 검토했던 상대에게서 자금을 받는 구도가 되었습니다. 이런 투자들이 인텔의 기술을 즉시 좋아지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다만 미국 안에 최신 공정 공장을 가진 회사가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 정부와 민간이 함께 서 있다는 사실은 보여줍니다.

2026년의 인텔

2026년 10월 현재 인텔의 거의 모든 것은 18A라는 공정에 걸려 있습니다. 18A는 리본펫이라고 부르는 새 트랜지스터 구조와, 전원을 칩 뒷면에서 공급하는 파워비아 기술을 함께 쓴 공정입니다. 2025년 10월에 대량 생산 단계에 들어갔지만 수율은 아직 이익을 낼 수 있는 수준 아래에 있습니다. 최고재무책임자 데이비드 진스너는 원가 목표 달성 시점을 빠르면 2026년 말로 이야기했습니다.

18A로 만든 첫 소비자용 제품은 2026년 초 전시회에서 공개된 코어 울트라 시리즈 3, 코드명 팬서레이크입니다. 인텔은 200개가 넘는 시스템 설계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고 이전 세대 대비 다중 작업 성능이 최대 60퍼센트 좋아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수치는 인텔 자체 측정치입니다. 서버용 첫 18A 제품인 클리어워터포레스트는 2026년 초에 소개되어 그해 안에 출하가 예정되어 있고 최대 288개의 효율 코어를 담습니다. 데스크톱용 노바레이크는 2027년으로 밀릴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파운드리 부문의 숫자는 개선 중이지만 갈 길이 멉니다. 2026년 2분기 파운드리 매출은 58억 달러로 1년 전 44억 달러에서 늘었고 영업손실은 32억 달러에서 21억 달러로 줄었습니다. 영업이익률은 마이너스 71.7퍼센트에서 마이너스 36.2퍼센트로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외부 고객에게서 나온 매출은 2억 9,300만 달러에 그쳤습니다. 개선의 대부분은 인텔이 자기 제품을 자기 공장에 맡긴 결과입니다.

파운드리 사업의 성패는 결국 외부 고객입니다. 다음 세대 공정인 14A는 고가의 최신 노광 장비를 쓰며, 인텔은 이 공정의 대량 생산 시점을 2028년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2026년에 확인된 외부 고객 사례로는 보안 장비 업체 포티넷이 인텔 4 공정으로 전용 프로세서를 만드는 건이 있습니다. 4월에는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 실적 발표에서 텍사스에 추진하는 대형 AI 칩 생산 단지에 인텔 14A를 쓸 계획이라고 말한 것이 로이터를 통해 보도되었는데, 인텔이 14A의 외부 고객 이름을 공식 확정해 밝힌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2026년의 인텔을 읽는 틀은 단순합니다. 공정 일정을 지키는지, 수율이 원가 목표에 닿는지, 외부 고객이 실제 계약으로 들어오는지입니다. 이 셋은 분기마다 숫자로 확인할 수 있는 항목이고 홍보 자료의 형용사와는 성질이 다릅니다. 반도체 업황을 보는 한국 투자자에게 인텔이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이 회사의 분기 보고서는 공정 경쟁이 실제로 어떻게 돈이 되는지, 혹은 왜 돈이 되지 않는지를 가장 날것으로 보여줍니다.

남은 논쟁, 판단이었나 구조였나

인텔이 왜 이렇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합의된 답이 없습니다. 한쪽은 경영 판단을 봅니다. 아이폰 칩을 가격 때문에 놓쳤다는 회고, 200억 달러에 엔비디아를 사자는 안이 이사회에서 막혔다는 보도, 오픈AI 투자를 지나쳤다는 이야기가 이 주장의 재료입니다. 여기에 단기 재무 성과를 중시한 경영이 길게 봐야 하는 공정 개발 투자를 눌렀다는 비판이 붙습니다.

다른 쪽은 제조 기술의 구조적 한계를 봅니다. 10나노 세대에서 인텔은 한 세대에 너무 많은 신기술을 한꺼번에 넣으려 했고, 그 결과 어느 하나가 어긋났을 때 전체가 멈췄습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최신 노광 장비를 들이는 시점에 대한 판단과, 세계의 거의 모든 팹리스 물량을 받아 공정을 담금질하는 파운드리의 학습 속도를 혼자서는 따라갈 수 없다는 규모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 주장에서 인텔의 실패는 누군가의 오판이 아니라 IDM이라는 방식의 한계입니다.

두 설명은 사실 서로 엮여 있습니다. 공정이 늦어 제품이 약해지고, 제품이 약해 현금이 줄고, 현금이 줄어 다음 공정 투자가 눌리고, 투자가 눌려 공정이 또 늦어집니다. 이 고리의 어느 지점을 끊었어야 했는지가 논쟁의 실질입니다. 경영 판단을 보는 쪽은 고리에 들어가기 전에 방향을 틀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고 말하고, 구조를 보는 쪽은 고리에 들어간 뒤에는 어떤 경영자도 쉽게 빠져나올 수 없다고 말합니다.

비슷한 사례를 떠올리는 분도 많을 것입니다. 필름 시장을 지배하다 디지털로 넘어가지 못한 코닥이 있고, 휴대폰 1위에서 스마트폰 시대에 밀려난 노키아가 있고, 기계식 시계 산업이 쿼츠 기술에 흔들린 1970년대 스위스의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텔의 사정은 이 셋과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인텔은 시장의 변화를 몰라서 밀린 것이 아니라, 변화를 알면서도 그 변화를 따라갈 공장을 제시간에 만들지 못했습니다. 기술 방향의 오판이 아니라 실행의 실패라는 점에서 이 사례는 따로 봐야 합니다.

그리고 이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18A와 14A가 일정과 수율을 지켜내고 외부 고객이 들어오면 인텔의 지난 10년은 뼈아픈 지연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같은 10년이 IDM 방식의 종착점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결론을 쓰는 것은 앞으로 몇 년의 분기 보고서들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남는 것

이 이야기에서 가져갈 것이 있다면, 성벽의 정체를 혼동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인텔의 성벽은 브랜드도 x86이라는 이름도 아니었습니다. 2년마다 한 세대씩 공정을 전진시키는 실행 능력이었습니다. 브랜드와 표준은 그 실행 능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고, 실행이 멈추자 결과물도 빠르게 가치를 잃었습니다. 어떤 기업의 경쟁력을 볼 때 그 회사가 가진 것보다 그 회사가 반복해서 해내는 일을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두 번째는 속도에 관한 것입니다. 인텔의 추락은 하루짜리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2015년에 밀린 일정이 2018년의 제품 공백으로, 2020년의 고객 이탈로, 2024년의 적자와 지수 제외로 이어졌습니다. 거의 10년이 걸렸습니다. 뉴스 한 건으로 모든 것이 뒤집히는 일은 드물고, 정말 중요한 변화는 대개 몇 년에 걸쳐 작은 일정 지연의 형태로 먼저 나타납니다. 실적 발표에서 숫자보다 일정 이야기를 먼저 보는 습관이 그래서 도움이 됩니다.

세 번째는 지수와 명단에 관한 것입니다. 다우지수든 다른 어떤 지수든, 특정 종목이 명단에 있다는 사실이 그 회사의 미래를 보증하지는 않습니다. 인텔은 25년 동안 그 명단의 한 줄이었고 그 25년의 후반부 내내 문제가 쌓이고 있었습니다. 반대로 명단에서 빠진 뒤에도 기업은 계속 존재하고 사업을 합니다. 명단은 과거를 요약하는 도구이고, 투자자가 알고 싶은 것은 대개 앞일입니다.

네 번째는 반도체 업황을 읽는 틀입니다. 반도체는 하나의 산업이 아니라 설계와 생산, 장비, 소재, 메모리가 각각 다른 주기로 움직이는 묶음입니다. 인텔의 부진은 반도체 전체의 부진이 아니었고, 같은 기간 파운드리와 가속기 쪽은 오히려 커졌습니다. 어떤 뉴스가 반도체에 좋다거나 나쁘다고 말할 때, 그 안에서 누가 설계하고 누가 찍어내고 누가 장비를 파는지를 갈라보는 것만으로도 판단의 정확도가 올라갑니다.

마지막으로, 인텔의 이야기는 아직 진행 중입니다. 이 글은 어떤 종목을 사거나 팔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지나간 주가의 흐름도 그저 기록으로만 적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30년 가까이 세상의 거의 모든 컴퓨터 안에 이름을 넣었던 회사도, 공장 하나의 일정이 밀리는 동안 그 자리를 잃을 수 있습니다. 어떤 성벽도 매일 쌓지 않으면 무너진다는 이야기이고, 그것이 1991년에 스티커 한 장으로 시작한 이 회사가 2024년 11월에 남긴 가장 비싼 교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