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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얼마나 나쁜지 아무도 몰랐다

1932년의 미국 워싱턴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주가는 1929년 고점에서 거의 10분의 1 수준으로 주저앉았고, 거리에는 무료 급식 줄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은행이 줄줄이 문을 닫았고 공장은 멈췄습니다. 누가 봐도 최악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의회에서 누군가 이렇게 물으면 아무도 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정확히 얼마나 나쁩니까.

농담이 아닙니다. 당시 미국 정부가 경제 상황을 알기 위해 쓸 수 있던 자료는 주가지수, 화물열차 적재량, 철강 생산량, 몇몇 산업의 고용 통계 같은 파편들이 전부였습니다. 나라 전체가 한 해에 얼마를 벌었고 얼마를 만들어냈는지를 하나의 숫자로 말해 주는 지표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체온계도 혈압계도 없이 얼굴빛만 보고 판단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상원은 그해 결의안 하나를 통과시킵니다. 72대 의회 상원 결의안 220호. 내용은 간단했습니다. 상무부는 국민소득이 얼마인지 추계해서 보고하라. 이 짧은 숙제가 오늘날 우리가 매 분기 뉴스에서 마주하는 GDP라는 숫자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숙제를 받은 서른 살 통계학자

일을 맡은 사람은 사이먼 쿠즈네츠였습니다. 1901년 지금의 벨라루스 지역에서 태어나 1920년대 초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였고, 당시에는 민간 연구기관인 전미경제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상무부의 경제조사 부서와 연구소 인력을 묶어 팀을 꾸리고, 미국 경제 전체의 소득을 밑바닥부터 더해 올라가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전산도 없고 표본 조사 기법도 지금 같지 않던 시절입니다. 업종별 임금 대장, 기업 회계 자료, 세무 통계, 농업 생산 기록을 일일이 모아 중복을 걷어내고 빠진 부분을 추정으로 메워야 했습니다. 무엇을 소득으로 셀 것인가, 어디까지를 한 나라의 생산으로 볼 것인가 같은 개념 문제도 직접 정리해야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쓰는 국민계정의 기본 문법이 이때 만들어졌습니다.

결과물은 1934년 1월 4일 상원에 제출됐습니다. 제목은 그대로 국민소득 1929에서 1932였습니다. 숫자는 잔인했습니다. 지급된 국민소득 기준으로 1929년 약 811억 달러였던 것이 1932년 약 439억 달러로 줄어 있었습니다. 생산 기준으로는 830억 달러대에서 390억 달러대로 내려앉았습니다. 불과 3년 만에 나라 전체 소득의 거의 절반이 증발했다는 뜻이었습니다.

이 보고서의 파급력은 통계 자체를 넘어섰습니다. 정부가 처음으로 경제의 크기와 방향을 하나의 숫자로 붙들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루스벨트 행정부의 뉴딜 정책이 규모를 정하고 성과를 가늠할 때 기댈 수 있는 자가 생긴 것입니다. 이 보고서가 이후 정부 간행물 형태로도 널리 배포되며 베스트셀러 대접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였습니다.

전쟁이 이 숫자를 자리 잡게 했습니다

국민소득 통계를 진짜 권력의 도구로 만든 것은 대공황이 아니라 전쟁이었습니다. 1941년 말 미국이 참전하면서 정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질문에 부딪혔습니다. 탱크와 항공기와 함선을 이만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 나라 경제가 그걸 감당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당시 군은 이른바 승리 계획이라 불린 대규모 생산 목표를 밀어붙이고 있었습니다. 전시생산국에서 일하던 쿠즈네츠와 동료 로버트 네이선은 국민생산 추계를 근거로 그 목표가 경제의 실제 생산 능력을 넘어선다고 계산했습니다. 무리하게 밀어붙이면 자재와 인력이 엉켜 오히려 생산이 줄어든다는 것이었습니다. 군 수뇌부와 상당한 충돌이 있었지만, 결국 계획은 현실적인 수준으로 조정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논쟁의 방식이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누가 더 목소리가 큰가가 아니라, 나라 전체의 생산 능력이라는 공통의 숫자판 위에서 가능한지 아닌지를 따지게 된 것입니다. 전쟁 물자 조달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이 국민계정을 정부 운영의 표준 언어로 만들었습니다.

전후에는 이 언어가 세계로 퍼졌습니다. 국제기구들이 회원국 경제를 비교하려면 같은 방식으로 계산된 숫자가 필요했고, 국민계정 체계는 그 공용어가 되었습니다. 미국은 오랫동안 국민총생산, 즉 GNP를 주 지표로 썼고 1991년에 이르러 국내총생산, 즉 GDP로 대표 지표를 바꿉니다. GNP가 자국민이 어디서 벌었든 합산하는 개념이라면 GDP는 국경 안에서 생산된 것을 합산하는 개념입니다. 기업의 국경 넘나듦이 늘면서 후자가 현실에 더 맞는 잣대가 된 것입니다.

만든 사람이 직접 남긴 경고

흥미로운 것은 이 지표를 만든 당사자가 처음부터 그 한계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1934년 상원 보고서 본문에는 이런 취지의 문장이 들어 있습니다. 한 나라의 후생은 위에서 정의한 방식의 국민소득 측정으로부터 추론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보고서를 요청한 의회에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이 숫자로 국민이 잘 사는지를 판단하지 말라고 못 박은 셈입니다.

쿠즈네츠의 경고는 평생 이어졌습니다. 그는 1962년에도 성장의 양과 질을 구분해야 하고, 비용과 수익을 구분해야 하며, 단기와 장기를 구분해야 한다고 썼습니다. 그러면서 더 많은 성장이라는 목표를 말할 때는 무엇의 성장이며 무엇을 위한 성장인지를 반드시 명시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지표를 만든 사람이 그 지표의 오남용을 가장 앞장서서 걱정한 것입니다.

그가 우려한 이유는 개념 자체에 있습니다. GDP는 시장에서 값이 매겨져 거래된 최종 생산물의 합계입니다. 좋은 거래인지 나쁜 거래인지는 묻지 않습니다. 더하기만 있고 빼기는 거의 없습니다. 이 구조는 전시 생산 능력을 재거나 경기의 방향을 잡는 데는 탁월하지만, 국민의 삶이 나아졌는지를 재는 도구로는 설계된 적이 없습니다.

쿠즈네츠는 197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 국민계정 작업뿐 아니라 경제성장의 장기 패턴을 실증적으로 규명한 공로였습니다. 한편 미국 상무부는 20세기가 저물던 무렵 GDP와 국민계정을 20세기의 위대한 발명 가운데 하나로 꼽았습니다. 발명자는 조심하라 했고, 세상은 걸작이라 불렀습니다.

GDP가 세지 못하는 것들

가장 자주 언급되는 사각지대는 가사노동과 돌봄입니다.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노부모를 돌보고 식사를 준비하는 노동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으므로 GDP에 잡히지 않습니다. 같은 일을 대가를 주고 남에게 맡기면 그 순간 GDP가 늘어납니다. 실제로 하는 일의 양은 그대로인데 숫자만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 공백이 성별이나 세대에 따라 불균등하게 분포한다는 점도 오래된 지적입니다.

환경은 더 심각합니다. 숲을 베어 목재로 팔면 그만큼 GDP가 올라가지만, 사라진 숲은 어디에도 차감되지 않습니다. 기름 유출 사고가 나면 방제 비용과 복구 공사비가 모두 GDP를 끌어올립니다. 사고가 나지 않았을 때보다 숫자가 좋아지는 것입니다. 자원 고갈과 오염은 비용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항목으로 처리됩니다.

분배도 GDP가 보여 주지 않는 영역입니다. GDP는 총량이자 평균의 세계입니다. 나라 전체 생산이 3퍼센트 늘었다는 문장은 그 증가분이 누구에게 갔는지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성장률은 양호한데 체감 경기는 싸늘하다는 흔한 괴리는 통계가 틀려서가 아니라, 애초에 그 통계가 답하도록 만들어진 질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경제는 새로운 난제를 던집니다. 무료로 제공되는 검색이나 지도, 백과사전 같은 서비스는 사용자가 큰 효용을 얻어도 가격이 0이므로 생산 통계에 거의 잡히지 않습니다. 품질이 좋아지는 것을 가격 변화와 구분해 잡아내는 일도 만만치 않습니다. 통계 당국이 계속 방법론을 보완하고 있지만, 시장 거래를 기준으로 삼는 구조 자체에서 오는 한계는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으로 대신할 것인가

대안을 찾으려는 시도는 오래됐습니다. 유엔개발계획은 1990년부터 인간개발지수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소득에 더해 기대수명과 교육 수준을 함께 묶어 한 나라의 발전 정도를 보려는 지표입니다. 부탄이 국민총행복이라는 개념을 국가 운영 원칙으로 내세운 것도 널리 알려진 사례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전후로는 더 본격적인 논의가 있었습니다. 프랑스 정부의 요청으로 조지프 스티글리츠, 아마르티아 센, 장폴 피투시가 이끈 위원회가 경제 성과와 사회 진보의 측정에 관한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핵심 제안은 생산이 아니라 가계의 소득과 소비, 그리고 자산에 초점을 옮기고, 분배와 삶의 질, 지속가능성을 함께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OECD를 비롯한 국제기구들이 이른바 GDP를 넘어서는 지표 작업을 이어 왔습니다.

그렇다고 GDP가 폐기될 조짐은 없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정의가 비교적 명확하고, 나라와 시대를 가로질러 비교할 수 있으며, 분기마다 빠르게 산출되기 때문입니다. 대안 지표들은 대체로 더 많은 가치 판단을 요구하고 그만큼 논쟁의 여지가 큽니다. 행복이나 지속가능성에 몇 점을 줄지 합의하기는 생산액을 더하기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현실적인 결론은 대체가 아니라 병행 쪽에 가깝습니다. GDP는 경제라는 기계가 얼마나 빨리 돌고 있는지를 알려 주는 회전계입니다. 유용하지만 그 기계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기름이 떨어지고 있는지, 안에 탄 사람들이 편안한지는 말해 주지 않습니다. 계기판에 다른 눈금을 더 붙이자는 것이 지금까지의 합의에 가장 가까운 지점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남는 것

이 이야기가 투자자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모든 지표에는 태생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GDP는 대공황의 급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태어났고 전시 생산 계획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총량을 빠르게 재는 데 강하고 삶의 질을 재는 데 약합니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물가지수, 고용지표, 각종 심리지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숫자가 원래 어떤 질문에 답하려고 만들어졌는지 알면 어디까지 믿어도 되는지 감이 잡힙니다.

두 번째는 지표와 현실이 어긋날 때 무엇을 의심할지에 관한 것입니다. 성장률은 괜찮은데 주변 경기는 싸늘하다는 경험을 다들 해 보셨을 것입니다. 이럴 때 통계가 조작됐다고 결론짓기 전에, 그 통계가 애초에 세지 않는 항목이 무엇인지부터 확인해 보는 편이 훨씬 생산적입니다. 총량과 분배는 다른 질문이고, 다른 질문에는 다른 자료가 필요합니다.

세 번째는 측정이 행동을 바꾼다는 점입니다. 어떤 숫자를 목표로 삼는 순간 조직이든 국가든 그 숫자가 좋아지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그 과정에서 재지 않는 항목은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립니다. 쿠즈네츠가 보고서에 경고를 적어 넣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자신의 계좌를 볼 때도 같은 질문을 던져 볼 만합니다. 나는 무엇을 성과로 세고 있으며, 그 셈법에서 빠져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지표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특정한 각도에서 찍은 사진에 가깝습니다. 잘 찍힌 사진은 많은 것을 알려 주지만 프레임 밖은 담기지 않습니다. 90년 전 워싱턴의 의원들은 경제가 얼마나 나쁜지 알 방법이 없어서 통계학자에게 숙제를 냈고, 우리는 그 숙제의 결과물을 매 분기 뉴스로 받아 보고 있습니다. 그 숫자를 읽을 때 프레임 밖에 무엇이 서 있는지를 함께 떠올린다면, 같은 뉴스에서 남들보다 한 겹 더 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