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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만에 무너진 세계 2위 거래소

2022년 11월 11일, 미국 델라웨어주 파산법원에 서류 한 묶음이 접수되었습니다. 신청인 명단에는 FTX와 그 계열사인 알라메다 리서치를 비롯해 100개가 넘는 회사 이름이 줄줄이 적혀 있었습니다. 불과 열흘 전까지 이곳은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가상자산 거래소였습니다. 가상자산 거래소란 비트코인 같은 디지털 자산을 달러나 원화로 사고팔 수 있게 중개하고, 고객이 맡긴 자산을 대신 보관해 주는 곳입니다.

창업자는 당시 서른 살이었습니다. 대형 스포츠 경기장에 회사 이름이 붙었고, 유명 배우가 나오는 광고가 미국 전역에 방송되었으며, 그는 워싱턴 의회 청문회에 나가 업계를 대표해 규제 방향을 설명하던 인물이었습니다. 기업 가치는 수백억 달러로 평가받았고, 이름난 투자회사들이 나란히 지분을 들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그해 가을까지, 이 회사의 존속을 의심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는 2022년 11월 2일부터 11월 11일까지, 딱 열흘 만에 사라졌습니다. 코인 가격이 폭락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무너진 것은 시세가 아니라 “맡긴 돈은 맡긴 사람 것”이라는,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확인해 보지 않던 약속 하나였습니다. 그 열흘을 날짜별로 따라가 보겠습니다.

거래소 옆에 있던 또 하나의 회사

이 사건을 이해하려면 회사가 둘이었다는 점부터 알아야 합니다. 하나는 고객이 코인을 사고파는 거래소 FTX였고, 다른 하나는 같은 창업자가 먼저 세운 트레이딩 회사 알라메다 리서치였습니다. 트레이딩 회사란 고객을 상대하지 않고 자기 자금으로 직접 사고팔아 차익을 남기는 회사를 말합니다. 하는 일이 전혀 다르니, 두 회사의 돈은 남남처럼 떨어져 있어야 했습니다.

거래소의 원칙은 단순합니다. 고객이 맡긴 돈과 코인은 거래소의 재산이 아니므로, 회사 돈과 섞지 않고 따로 보관해야 합니다. 이것을 분리보관이라고 부릅니다. 은행처럼 예금을 받아 대출로 굴려 이자를 남기는 업이 아니라, 물품보관소처럼 맡아 두었다가 달라고 하면 그대로 내주는 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래소는 원래 시세가 오르든 내리든 크게 흔들릴 이유가 없는 사업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등장인물이 있습니다. FTX가 직접 발행한 토큰 FTT입니다. 토큰이란 특정 회사나 서비스가 블록체인 위에 발행한 디지털 증표로, FTT를 들고 있으면 FTX에서 거래 수수료를 깎아 주는 식의 혜택이 따라붙었습니다. 쉽게 말해 거래소가 스스로 찍어낸 회원권 같은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회원권이 어느 시점부터 담보로 쓰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담보란 돈을 빌릴 때 “못 갚으면 이걸 가져가십시오” 하고 미리 잡혀 두는 재산을 말합니다.

파산 이후 새 경영진의 조사와 이어진 재판 과정에서 확인된 것은, 두 회사의 돈이 실제로는 떨어져 있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고객이 거래소에 넣은 자금의 상당 부분이 계열 트레이딩 회사 쪽으로 흘러갔고, 그 회사는 그 돈으로 투자와 대출을 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화면은 거래소였지만, 그 뒤편은 남의 돈으로 굴리는 투자회사에 가까웠던 것입니다.

11월 2일, 표 한 장이 공개되다

2022년 11월 2일, 가상자산 전문 매체 코인데스크가 알라메다 리서치의 내부 대차대조표를 입수해 보도했습니다. 대차대조표는 회사가 가진 것과 갚아야 할 것을 한 장에 적어 놓은 표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알라메다의 자산은 146억 달러 규모였는데, 그 안에서 가장 큰 덩어리가 현금이나 비트코인이 아니라 FTT였습니다. 계열 거래소가 스스로 찍어낸 증표가, 계열 트레이딩 회사의 자산 목록에서 기둥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구조가 왜 위험한지는 비유를 들면 금방 보입니다. 어떤 회사가 자기 회사 주식을 담보로 잡히고 돈을 빌렸다고 해 봅시다. 주가가 오르는 동안에는 담보 가치도 함께 올라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가가 떨어지는 순간, 빚과 담보가 같은 방향으로 동시에 무너집니다. 게다가 FTT는 발행한 곳이 FTX 자신이었고, 시장에서 실제로 손바뀜하는 양도 많지 않았습니다. 값을 떠받치는 힘이 그만큼 약했다는 뜻입니다.

전문가들이 특히 주목한 대목은 장부에 적힌 금액과 실제로 팔 수 있는 금액의 차이였습니다. 거래가 활발하지 않은 자산은 장부에 아무리 큰 금액으로 적혀 있어도, 한꺼번에 내놓으면 그 값을 받을 수 없습니다. 몇백만 개만 시장에 쏟아져도 가격이 내려앉는 자산이 수십억 달러어치 자산으로 계산되어 있었다면, 그 장부는 평온할 때만 성립하는 장부였습니다.

나흘 뒤인 11월 6일, 경쟁 거래소 바이낸스의 대표가 자신들이 보유한 FTT를 전량 처분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규모는 약 2,300만 개, 당시 시세로 5억 2,900만 달러어치였습니다. 시장은 이 발언을 담보가 흔들린다는 신호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담보가 흔들린다는 말은, 거래소가 고객 자산을 온전히 들고 있지 않을 수 있다는 말과 같았습니다.

인출 창구에 줄이 서다

그다음 이틀 동안 FTX에서 빠져나간 고객 자금은 약 6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금융에서는 이런 사태를 뱅크런이라고 부릅니다. 맡긴 사람들이 불안을 느껴 한꺼번에 돈을 빼려 몰리는 현상입니다. 만약 고객 자산이 정말 따로 보관되어 있었다면 이 정도 인출은 번거로운 사무에 그쳤을 것입니다. 창구가 막혔다는 사실 자체가 답이었습니다.

은행의 뱅크런과 거래소의 뱅크런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은행에는 예금자를 일정 한도까지 보호해 주는 예금보험 제도가 있고, 급할 때 돈을 빌려주는 중앙은행이 있습니다. 가상자산 거래소에는 둘 다 없습니다. 줄이 길어지면 줄이 끝나는 곳에서 문이 닫히고, 그 뒤는 법원의 일이 됩니다.

11월 8일, 두 회사는 바이낸스가 FTX를 인수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함께 발표했습니다. 다만 법적 구속력이 없는 의향서 수준이었습니다. 시장은 안심하지 않았습니다. 구원투수가 등장했다는 소식이 오히려 사태의 심각성을 확인해 준 셈이었고, 같은 날 FTT 가격은 하루 만에 80% 가까이 빠졌습니다.

하루 뒤인 11월 9일, 바이낸스는 인수 검토를 중단한다고 밝혔습니다. 장부를 들여다본 결과 감당할 수 없다는 취지였습니다. 구조가 드러나자 그 구조를 떠안을 사람이 없어진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FTX에는 더 기다려 볼 카드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11월 11일, FTX와 알라메다 리서치를 포함한 100개 이상의 계열사가 델라웨어 파산법원에 챕터11을 신청했습니다. 챕터11은 미국 법에서 회사를 곧바로 청산하지 않고 법원의 관리 아래 채무를 정리하며 회생을 시도하는 절차입니다. 창업자는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났고, 기업 구조조정 전문가인 존 J. 레이 3세가 새 경영자로 들어왔습니다. 새 경영진이 파악한 고객 자금의 구멍은 최대 80억 달러 규모였습니다.

법정이 확정한 사실

여기서부터는 추측이 아니라 판결로 확인된 내용입니다. 2023년 11월 2일, 미국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 배심원단은 창업자에게 적용된 7개 혐의 전부에 대해 유죄 평결을 내렸습니다. 전신금융사기와 그 공모, 증권사기, 자금세탁 공모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재판은 시작부터 평결까지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듬해인 2024년 3월 28일, 같은 법원은 징역 25년을 선고했습니다. 여기에 약 110억 달러의 추징 명령이 따라붙었습니다. 추징이란 범죄로 얻은 이익을 국가가 몰수하는 조치입니다. 법정에서 다룬 피해 규모는 고객 자금 80억 달러를 웃도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습니다. 재판 자체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2026년 6월 12일, 미국 제2연방항소법원의 3인 재판부는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유죄와 25년형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제도적으로 더 다툴 길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확정된 사실은 여기까지입니다.

119%를 돌려받고도 손해인 이유

그렇다면 고객 돈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회수 성적은 의외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2024년 10월 7일, 델라웨어 파산법원은 FTX의 회생계획을 인가했습니다. 계획에 따르면 분배할 수 있는 재원은 147억에서 165억 달러 규모였고, 채권자 수를 기준으로 98%가 인정된 청구액의 약 119%를 돌려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회사에 남아 있던 비상장 기업 지분 등의 값이 그 사이 오른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숫자만 보면 원금보다 더 받는 셈입니다. 그런데 채권자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컸습니다. 이유는 금액이 아니라 기준 시점에 있었습니다. 청구액을 계산한 날짜가 파산을 신청한 2022년 11월 11일로 고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날 코인을 맡겨 두었던 사람은 코인을 그대로 돌려받는 것이 아니라, 그날 가격으로 환산한 금액에 19%를 얹어 받습니다. 그 뒤로 시세가 크게 올랐다면 올라간 몫은 받을 수 없습니다. 파산이라는 절차는 특정 날짜에 시간을 멈춰 세워 놓고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119%라는 숫자가 당사자들에게 위로가 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게다가 그 계산이 끝나고 실제로 돈이 건너오기까지 2년이 걸렸습니다. 그 2년 동안 자산은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팔 수도, 옮길 수도, 다른 데 쓸 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금액으로 환산되지 않는 손실이 바로 이 부분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남는 것

이 사건이 남긴 질문은 하나로 좁혀집니다. 거래소 화면에 찍혀 있는 잔고는 누구의 돈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앱에 표시된 숫자를 자기 재산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 숫자는 재산 자체가 아니라, 달라고 하면 주겠다는 약속의 표시입니다. 식당 예약 확인증과 비슷합니다. 자리가 정말로 비워져 있는지는 확인증이 알려 주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남는 것은 규모와 유명세가 안전의 증거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세계 2위라는 순위, 수백억 달러의 기업 가치, 경기장에 걸린 이름, 의회 증언, 알려진 투자자들의 지분. FTX는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회사가 크다는 증거였을 뿐, 고객 자산이 따로 보관되어 있다는 증거는 아니었습니다. 그 증거는 오직 검증된 회계와 분리보관, 그리고 그것을 확인해 주는 제도에서만 나옵니다.

세 번째는 내부 문서 한 장의 무게입니다. 열흘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시세도, 정책도, 해킹도 아니었습니다. 회사가 무엇을 자산으로 잡고 있는지를 적어 놓은 표 한 장이었습니다. 어떤 회사의 안전을 판단할 때, 그 회사가 무엇을 벌고 있는지보다 무엇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열흘이라는 시간을 기억할 만합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밝혀지고 나서 문이 닫히기까지 열흘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신용은 아주 오래 쌓이지만 아주 빠르게 사라집니다. 무엇을 사고팔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린 문제이지만, 그것을 지금 어디에 맡겨 두고 있는지, 그리고 그곳이 무엇으로 그 약속을 뒷받침하는지는 종목 선택과 별개로 늘 확인해 볼 만한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