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목록으로

헝다, 집값을 먼저 받아 쓴 회사

2021년 9월 13일 오전, 중국 선전에 있는 한 회사의 본사 로비가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그 회사가 판 투자 상품에 돈을 넣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돈을 돌려달라는 고함이 로비 바깥까지 들렸고, 경찰이 출입구를 막아섰습니다. 회사 이름은 헝다, 영어로는 에버그란데였습니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중국 280개가 넘는 도시에서 1,300개 가까운 아파트 단지를 동시에 짓고 있었고, 직원이 20만 명을 넘었던 회사입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9월 20일, 뉴욕 증시의 다우지수가 615포인트, 1.8퍼센트 떨어져 33,970으로 마감했습니다. 그해 7월 19일 이후 가장 낮은 종가였습니다. 같은 날 S&P500은 1.7퍼센트, 나스닥은 2.2퍼센트 빠졌고, 홍콩 항셍지수는 3.3퍼센트 내려 그해 최저치를 찍었습니다. 중국의 아파트 회사 한 곳이 이자를 제때 못 낼 것 같다는 소식이 뉴욕과 홍콩의 계좌 잔고를 흔든 것입니다. 그때 전 세계 뉴스 화면에 똑같은 표현이 떴습니다. 중국판 리먼브러더스.

결론부터 말하면 중국판 리먼은 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다른 것이 왔습니다. 2026년 8월 20일, 중국 선전시 중급인민법원은 헝다 창업자 쉬자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개인 재산을 몰수했습니다. 회사 이름은 2025년 8월 홍콩 증시에서 지워졌고, 중국 각지에는 골조만 올라간 채 멈춘 아파트가 남았습니다. 오늘 할 이야기는 집값을 먼저 받아 그 돈으로 다음 공사를 하던 한 회사가 25년에 걸쳐 커지고 5년에 걸쳐 주저앉은 과정입니다.

제철소 기술자가 광저우로 간 이유

쉬자인은 1958년 10월 9일 중국 허난성 타이캉현의 농촌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문화대혁명으로 중단됐던 대학입학시험이 다시 열린 직후인 1978년, 그는 우한강철학원에 들어갔습니다. 1982년 졸업 뒤 배치된 곳은 우양강철공사의 열처리 공장이었습니다. 1983년 부주임, 1985년 주임이 되어 그 자리를 7년간 지켰습니다. 중국 최고 부자 명단에 오르기 전까지, 그는 꽤 오랫동안 쇠를 다루는 기술자였습니다.

1992년 그는 사표를 냈습니다. 개혁개방의 실험장이던 선전으로 내려가 무역회사에 들어갔고, 1년 뒤 그 회사 지점의 사장이 됐습니다. 1994년 10월 1일에는 광저우로 옮겨 광저우펑다실업이라는 회사를 세웁니다. 그리고 1997년 3월, 헝다그룹을 설립해 회장이 됐습니다. 2002년에는 그룹의 공산당위원회 서기를 맡았고, 2008년에는 전국정치협상회의 위원이 됐습니다. 회사의 성장과 그의 정치적 위치가 같이 올라간 셈입니다.

타이밍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중국은 1990년대 말 직장이 집을 나눠주던 제도를 접고 주택을 시장에서 사고파는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14억 인구가 처음으로 자기 이름으로 집을 사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버드대 케네스 로고프 교수 등이 IMF 간행물에 쓴 분석에 따르면 중국 주택 가격은 1990년대 초 이후 약 10배 올랐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직전 아일랜드, 스페인, 미국의 상승폭보다 큰 폭입니다. 베이징과 선전의 소득 대비 집값 비율은 런던이나 싱가포르의 거의 두 배였습니다.

같은 분석은 2021년 기준 부동산과 그 관련 수요가 중국 경제의 25퍼센트를 차지했다고 추정합니다. 인프라까지 더하면 31퍼센트까지 올라가는데, 미국은 둘을 합쳐 18퍼센트 수준입니다. 가계부채도 같이 불었습니다. 2008년 GDP의 20퍼센트에 못 미쳤던 중국의 가계부채는 2023년 60퍼센트를 넘었습니다. 집 한 채가 가족의 재산 전부이고, 그 재산이 빚으로 받쳐져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집을 짓기 전에 집을 팝니다

헝다를 이해하려면 중국이 아파트를 어떻게 팔았는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핵심은 선분양입니다. 선분양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집을 미리 계약해서 파는 방식입니다. 한국에도 있는 제도이니 낯설지는 않으실 겁니다. 다만 중국의 선분양은 허용 시점이 훨씬 일렀습니다. 2026년 8월 말 규정이 바뀌기 전까지, 많은 지역에서 기초공사만 끝나면, 즉 땅을 파고 바닥만 깔아도 분양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돈의 흐름이 중요합니다. 분양받은 사람은 계약금을 넣고, 중도금을 넣고,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그 돈까지 시행사에 보냅니다. 집은 아직 없는데 집값의 상당 부분이 먼저 회사 금고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원칙적으로는 이 돈을 제3의 계좌에 맡겨두고 공사 진척에 따라서만 꺼내 쓰게 해야 하는데, 이렇게 중립적인 계좌에 돈을 묶어두는 방식을 에스크로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당시 중국의 에스크로 규정이 느슨했고 지방마다 들쭉날쭉했다는 점이었습니다. 또 집을 아직 넘겨주지 않았으니 미리 받은 돈은 매출이 아니라 부채로 잡혔습니다.

그래서 많은 개발사가 A단지 분양 대금으로 B단지의 땅을 샀습니다. B단지를 분양해 받은 돈으로 A단지 공사비를 치르고, 다시 C단지 땅을 샀습니다. 자전거와 같습니다. 페달을 계속 밟는 동안에는 넘어지지 않지만, 멈추는 순간 쓰러집니다. 분양이 멈추면 공사가 멈추고, 공사가 멈추면 믿을 수 없는 회사가 되어 분양이 더 안 됩니다. 성장을 멈추는 것이 곧 사고인 구조였습니다.

수요 쪽도 과열돼 있었습니다. 2020년 중국의 자가보유율은 96퍼센트였고, 집을 한 채 가진 사람이 두 번째, 세 번째 집을 사들였습니다. 2017년 기준으로 약 6,500만 채가 비어 있었다는 추정이 나왔는데, 당시 전체 주택의 약 5분의 1에 해당합니다. 2023년 9월에는 전 국가통계국 부국장 허컹이 중국의 빈집이 14억 인구로도 채우지 못할 만큼 많을 것이라고 공개 발언해 화제가 됐습니다. 지어도 다 팔리던 시절의 관성이 남긴 재고였습니다.

축구장과 생수와 전기차

헝다는 아파트만 짓지 않았습니다. 테마파크를 만들고 생수를 팔고 프로축구단을 운영했습니다. 전기차 회사도 세웠습니다. 2021년 위기가 터질 무렵까지 이 전기차 부문은 차를 단 한 대도 팔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거대한 회사가 무너질 때 흔히 보이는 징후 가운데 하나가, 본업이 아닌 곳에서 더 큰 꿈을 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가장 상징적인 사업은 하이난섬의 하이화다오, 영어로 오션 플라워 아일랜드였습니다. 바다를 메워 꽃 모양 인공섬을 만들고 그 위에 아파트와 리조트를 올리는 계획이었습니다. 헝다는 6년 동안 이곳에 810억 위안을 쏟아부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2021년 12월 30일, 환경 규정 위반과 불법 건축을 이유로 짓고 있던 39개 동을 10일 안에 철거하라는 처분 통지를 받았습니다. 이미 분양이 끝난 아파트는 6만 567채였는데, 회사는 철거 명령이 그 집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회사가 커지는 동안 창업자의 재산도 불었습니다. 추정치이긴 하지만 2017년 그의 재산은 453억 달러로 집계된 적이 있고, 2020년에도 포브스의 중국 부자 순위 3위였습니다. 그러나 2021년 12월 13일 블룸버그 억만장자지수에서는 62억 달러였습니다. 그 한 해에만 172억 달러가 사라진 것입니다. 2023년 10월 추정치는 9억 7,900만 달러였고, 그는 억만장자 명단에서 빠졌습니다.

회사의 시가총액도 비슷한 곡선을 그렸습니다. 전성기에 홍콩 증시에서 500억 달러 넘는 가치를 평가받던 회사였습니다. 2023년 8월 17개월 만에 거래가 재개됐을 때는 시가총액의 79퍼센트가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다만 이 회사가 특별히 무모해서 이렇게 된 것은 아닙니다. 선분양으로 받은 돈을 다음 토지에 쓰는 방식은 당시 중국 개발업계의 표준이었고, 헝다는 그 표준을 가장 빠르고 가장 크게 실행한 회사였을 뿐입니다.

2020년 8월, 세 개의 빨간 선

2020년 8월, 중국 인민은행과 주택 당국이 개발사들에게 세 가지 재무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흔히 3대 레드라인이라고 부릅니다. 첫째, 미리 받은 분양 대금을 뺀 부채비율이 70퍼센트 미만이어야 합니다. 둘째, 자기자본 대비 순차입금 비율이 100퍼센트 미만이어야 합니다. 셋째, 1년 안에 갚아야 할 빚보다 손에 쥔 현금이 많아야 합니다. 말로 풀면 간단합니다. 빚이 자산에 비해 너무 많지 않고, 자기 돈에 비해 빌린 돈이 너무 많지 않고, 당장 갚을 돈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규제의 핵심은 기준 자체가 아니라 벌칙이었습니다. 세 기준을 모두 지킨 회사는 이듬해 빚을 최대 15퍼센트까지 늘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를 어기면 10퍼센트, 둘을 어기면 5퍼센트, 셋 다 어기면 빚을 단 한 푼도 늘릴 수 없었습니다. 개발사에게 차입 한도는 산소와 같습니다. 땅을 사려면 빌려야 하고, 땅이 없으면 분양할 상품이 없습니다.

문제는 이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회사가 거의 없었다는 데 있었습니다. 2020년 초 기준으로 신용평가 대상 개발사 가운데 세 기준을 모두 충족한 곳은 6.3퍼센트에 불과했다는 집계가 있습니다. 업계의 90퍼센트 이상이 빨간 선 어딘가를 밟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당국이 노린 것은 집값과 부채가 같이 뛰는 고리를 끊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규제는 결과적으로 방아쇠가 됐습니다. 빚을 못 늘리면 다음 토지를 못 삽니다. 다음 토지가 없으면 다음 분양을 못 합니다. 다음 분양 대금이 들어오지 않으면, 이미 돈을 받아놓은 기존 단지의 공사비를 댈 현금이 끊깁니다. 다만 규제가 위기를 만들었다고 말하면 절반만 맞습니다. 폭탄은 이미 그 자리에 있었고, 3대 레드라인은 그 폭탄을 설치한 것이 아니라 뇌관이 어디 있는지를 밖에서도 보이게 만든 조치였습니다.

2021년 여름, 공사가 멈추기 시작했습니다

2021년 8월, 중국 전역의 헝다 현장에서 공사가 멈추기 시작했습니다. 자재비와 인건비가 밀렸기 때문입니다. 감독당국은 헝다 경영진을 불러 부채 위험을 줄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아직 금융시장의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현장에서 돈을 못 받은 하청업체와, 집이 올라가지 않는 것을 지켜보는 분양자들의 사건이었습니다.

9월 13일 선전 본사 로비의 그 장면이 벌어졌습니다. 몰려온 사람들은 세 부류였습니다. 분양 대금을 낸 사람들, 공사비를 못 받은 협력업체 사람들, 그리고 헝다가 판 자산관리상품에 돈을 넣은 개인들이었습니다. 자산관리상품이란 회사가 일정한 수익률을 약속하고 일반인에게 파는 투자 상품입니다. 헝다는 이 상품을 자사 직원과 그 가족, 협력업체에까지 팔았습니다. 집을 사려고 돈을 낸 사람과, 회사를 믿고 여윳돈을 맡긴 사람이 같은 로비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 주 글로벌 증시가 반응했습니다. 당시 LPL파이낸셜의 라이언 데트릭은 일부에서 이번 일이 첫 번째 도미노가 될 것을 걱정한다고 전하면서도, 자신은 리먼식 붕괴가 오리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헝다의 빚이 은행이나 핵심 금융기관보다는 주식과 펀드 쪽에 몰려 있고, 필요하면 베이징이 개입할 것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 판단은 대체로 맞았습니다.

2021년 9월, 헝다는 해외 달러채 두 건의 이자 합계 1억 3,100만 달러를 약정일에 내지 못했습니다. 달러채는 중국 회사가 홍콩 같은 역외 시장에서 달러로 빌린 돈을 말합니다. 주로 외국 기관투자자가 들고 있고, 중국 본토 법이 아니라 역외 계약과 법원의 영향을 받습니다. 다만 당장은 30일의 유예기간이 있었습니다. 유예기간은 약정일에 못 냈더라도 이 기간 안에 내면 공식 부도로 보지 않는 완충 장치입니다.

디폴트 판정까지

2021년 10월 22일, 헝다는 유예기간 만료를 앞두고 밀린 이자 8,350만 달러를 지급했습니다. 시장은 한숨을 돌렸고, 10월 말에도 또 한 번 막판 지급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해결이 아니라 연기였습니다. 이자 지급일은 계속 돌아오는데 분양이 멈춘 회사에 현금이 들어올 통로는 막혀 있었습니다. 11월에는 창업자 본인이 보유 주식 12억 주를 약 3억 4,300만 달러에 팔아 지분율이 77퍼센트에서 67.9퍼센트로 내려갔고, 시장은 창업자가 자기 주식을 파는 장면 자체를 신호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2021년 12월 9일, 신용평가사 피치가 헝다와 또 다른 개발사 카이사를 제한적 디폴트로 강등했습니다. 디폴트란 약속한 날짜에 이자나 원금을 갚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앞에 붙은 제한적이라는 말은 회사가 완전히 문을 닫은 것은 아니지만 일부 채무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헝다의 달러채 디폴트가 공식적으로 기록된 날입니다.

그 뒤는 속도가 빨랐습니다. 2022년 3월, 헝다는 감사받은 실적을 기한 내에 내지 못해 주식 거래가 정지됐고, 은행들은 조사를 받고 있던 부동산관리 자회사의 예금 134억 위안을 압류했습니다. 2022년 11월에는 중국건설은행 아시아법인이 쉬자인의 홍콩 더피크 저택을 압류했습니다. 2023년 1월에는 감사인이던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가 2021년 회계를 둘러싼 견해차를 이유로 사임했고, 2월에는 회사가 꾸린 독립조사위원회가 이사들이 기준에 미달하는 행위를 했다고 결론 냈습니다.

밀려 있던 실적이 2023년 7월에 한꺼번에 공개됐습니다. 2021년 순손실 4,760억 위안, 2022년 순손실 1,059억 위안이었습니다. 2020년에는 81억 위안 흑자였던 회사입니다. 2022년 말 기준 총부채는 2조 4,000억 위안으로 집계됐습니다. 두 해 동안 쌓인 손실의 규모가 그동안 이 회사가 벌었다고 말한 모든 숫자를 무의미하게 만들었습니다.

짓다 만 아파트의 주인들

이 사건에서 가장 큰 손실을 본 사람들은 채권자도 주주도 아니었습니다. 집값을 먼저 낸 사람들이었습니다. 집은 없는데 돈은 냈고, 은행 대출은 이미 시작됐고, 그 집은 공사가 멈춰 있었습니다. 2022년 7월, 장시성 징더전의 한 헝다 단지 분양자들이 공개 서한을 냈습니다. 10월 20일까지 공사가 재개되지 않으면 주택담보대출 상환을 함께 멈추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서한이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퍼졌습니다. 한 달 안에 비슷한 움직임이 약 100개 도시로 번졌습니다. 2022년 7월 집계로 중국 31개 성 가운데 24개 성, 235개 단지가 포함됐고, 이후 100개 도시 이상, 320개가 넘는 단지로 확대됐습니다. 조직이 있어서가 아니라 온라인에서 문구가 복사되며 번진 것입니다. 중국에서 집단 행동의 문턱이 결코 낮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자체로 이례적인 장면이었습니다.

금융 규모만 보면 작았습니다. 상환 거부에 들어간 대출은 전체 주택담보대출의 약 2퍼센트 수준으로 추정됐습니다. 은행을 흔들 숫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지는 컸습니다. 2020년 자가보유율 96퍼센트의 나라에서, 집을 사는 행위 자체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국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은행 손실이 아니라 바로 이 신뢰의 균열이었습니다.

미완공 물량의 규모도 이 무렵 드러났습니다. 2022년 8월 기준, 직전 3년간 착공된 60억 제곱미터 가운데 절반도 완공되지 않았다는 집계가 나왔습니다. 2017년 난징 외곽에서 6층 아파트를 계약한 61세 지장 씨는 집값의 60퍼센트를 먼저 냈지만 2019년에 공사가 멈췄습니다. 2023년 초에는 이웃 분양자들과 함께 문도 창문도 수도도 없는 집에 가구를 옮겨 넣었고, 지방정부는 나가라고 요구했습니다.

당국의 대응은 두 갈래였습니다. 중앙은행이 먼저 800억 위안을 내고 다른 은행들이 보태 3,000억 위안 규모의 기금을 만든다는 계획이 나왔고, 정저우 같은 지방정부는 자체 구제 기금을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걸렸지만 집은 상당 부분 넘겨졌습니다. 정저우에서 2015년에 58만 위안을 내고 아파트를 계약한 가수 천펑 씨는 2019년에 공사가 멈춘 집을 2024년 9월에야 받았습니다. 계약부터 열쇠까지 9년이 걸렸고, 받은 집에는 조명기구도 변기도 마감된 바닥도 없었습니다.

청산 명령, 그리고 창업자에게 내려진 선고

2023년 9월은 헝다에게 가장 나쁜 달이었습니다. 경찰이 헝다금융재부관리 직원들을 구금했고, 9월 25일과 26일로 예정됐던 채권자 집회가 연기됐습니다. 그리고 9월 28일, 창업자 쉬자인이 위법 범죄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공시됐고 주식 거래가 정지됐습니다. 같은 달 국영 보험사가 헝다생명보험을 인수하는 방안이 승인됐습니다. 구조조정은 계속 미끄러졌습니다. 2023년 10월 홍콩 고등법원이 수정안을 내라며 5주를 더 줬지만 11월의 막판 수정안은 핵심 채권단의 반대에 막혔고, 12월에 다시 기일이 연기됐습니다.

2024년 1월 29일, 홍콩 고등법원의 린다 찬 판사가 청산 명령을 내렸습니다. 청산이란 회사를 더 이상 운영하지 않고 남은 재산을 팔아 채권자에게 나눠주고 법인을 종료시키는 절차입니다. 판사는 회사가 실현 가능한 구조조정안을 제시하는 데 진전이 없었다는 점과 회사가 지급 불능 상태라는 점을 들었습니다. 회사가 내놓은 것은 일반적인 아이디어 수준이었고 채권자의 지지를 받는 구체적 안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날 홍콩 증시에서 헝다 주가는 21퍼센트 가까이 떨어진 뒤 거래가 정지됐습니다.

회사 측 최고경영자 샤오언은 이 명령이 홍콩에 상장된 중국헝다그룹에만 적용되고 본토와 해외 자회사는 별개 법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헝다 자산의 90퍼센트 이상이 중국 본토에 있었으니 실무적으로 맞는 설명이었습니다. 청산인들은 100개가 넘는 계열사를 통제하게 됐고 그 자산 가치는 35억 달러로 평가됐지만, 2025년 8월까지 실제로 매각한 자산은 2억 5,500만 달러에 그쳤습니다. 반면 접수된 채권자 청구액은 2025년 7월 31일 기준 450억 달러로 불어났습니다.

2024년 3월, 중국 당국의 제재가 내려왔습니다. 본토 핵심 자회사 헝다부동산은 사기적 채권 발행과 허위 공시를 이유로 41억 8,000만 위안의 과징금을 받았고, 쉬자인 개인에게는 4,700만 위안의 과징금과 증권시장 영구 진입 금지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당국이 지적한 핵심은 2019년과 2020년 매출을 수백억 달러 규모로 과대계상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달 청산인들은 쉬자인과 전처, 전직 임원들을 상대로 약 60억 달러를 돌려받기 위한 소송을 냈습니다. 그리고 2025년 8월 25일, 18개월 연속 거래 정지 규정에 따라 헝다는 홍콩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됐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사실관계만 적겠습니다. 2026년 4월 14일, 쉬자인은 여덟 개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후회를 표명한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혐의에는 자금 모집 사기, 불법적인 공중 예금 수취, 사기적 증권 발행, 뇌물 관련 범죄가 포함됐습니다. 그리고 2026년 8월 20일, 중국 광둥성 선전시 중급인민법원은 당시 67세였던 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개인 재산 전부를 몰수했습니다. 법원은 그가 지위를 남용해 사기를 조직하고 회사 자산을 유용했다고 판단했으며, 판결에는 사회에 미친 피해가 극히 중대하다는 표현이 담겼습니다.

회사에도 벌금이 내려졌습니다. 중국헝다그룹에 88억 2,000만 위안, 헝다부동산에 70억 위안이 부과돼 합계 23억 달러를 넘었습니다. 함께 재판을 받은 사람은 50명이 넘었고, 쉬자인의 두 아들 쉬텅허와 쉬즈젠을 포함한 전현직 임원들이 22개월에서 18년에 이르는 형을 받았습니다. 다만 처벌의 크기와 피해 회복의 크기는 별개 문제입니다. 분양 대금을 낸 가정에 돌아간 것은 형량이 아니라 몇 년 늦게 받은 마감 안 된 집이었습니다.

비구이위안, 그리고 줄줄이

헝다 하나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2021년 12월 9일 피치가 제한적 디폴트로 강등한 회사는 헝다와 카이사, 두 곳이었습니다. 2022년 5월에는 쑨커가 달러채 이자를 내지 못했고, 7월에는 상하이의 대형 개발사 스마오가 디폴트에 들어갔습니다. 3대 레드라인이 그어진 뒤 2년 사이에 업계 상위권이 차례로 넘어갔습니다. 공통 원인은 똑같았습니다. 다음 분양 대금으로 지난 공사비를 치르던 구조가 돌아가지 않게 된 것입니다.

가장 큰 다음 도미노는 비구이위안, 영어명 컨트리가든이었습니다. 한때 중국 최대 개발사로 불렸고 총부채는 2,000억 달러에 조금 못 미치는 규모였습니다. 2023년 2월 창업자 양궈창이 회장에서 물러나고 딸 양후이옌이 자리를 이어받았습니다. 그해 8월, 달러채 두 건의 이자 4,500만 달러가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8월 10일에는 상반기에 450억에서 550억 위안의 순손실이 예상된다고 경고했는데, 2022년 상반기에는 약 19억 1,000만 위안 흑자였던 회사입니다. 주가는 하루에 최대 14.4퍼센트 떨어져 처음으로 1홍콩달러 아래에서 마감했습니다.

9월에는 유예기간 안에 이자를 냈지만, 10월에 1,500만 달러를 내지 못했습니다. 이 미지급은 최대 110억 달러 규모의 해외채에 교차 디폴트를 발동시켰습니다. 교차 디폴트는 어느 한 건을 못 갚으면 다른 빚들도 동시에 부도로 간주되는 계약 조항입니다. 블룸버그는 2023년 10월 25일 이를 공식 디폴트로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비구이위안의 결말은 헝다와 달랐습니다. 2025년 1월 16일 채권자들에게 116억 달러를 줄이는 구조조정안을 제시했고, 그해 8월 수정 합의를 바탕으로 채권자를 두 그룹으로 나눈 안을 만들었습니다. 2025년 12월 4일 홍콩 고등법원이 177억 달러 규모의 해외채 구조조정안을 인가하고 12월 30일 발효됐습니다. 표결에 참여한 채권액 기준으로 1그룹은 83퍼센트 이상, 2그룹은 96퍼센트 이상이 찬성했습니다. 그리고 2026년 2월 16일, 홍콩 법원은 비구이위안에 대한 청산 신청을 기각했습니다.

헝다와 비구이위안을 갈라놓은 것은 회사의 크기나 빚의 크기가 아니었습니다. 채권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구체적인 안을 기한 안에 만들어냈는지 여부였습니다. 다만 위기 자체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2025년 12월에는 중국 최대 개발사 가운데 하나이자 선전시 지하철공사가 대주주인 완커가 디폴트 직전까지 갔습니다. 국유 주주를 둔 회사까지 이런 상황이라는 점이, 이 사태가 특정 회사의 방만 경영 문제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2026년, 다섯 번째 해

지금 중국 부동산 시장이 어떤 상태인지가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일 수 있습니다. 2025년 연간 신규 상업용 주택 판매액은 8조 3,900억 위안으로 전년보다 12.6퍼센트 줄었습니다. 201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판매 면적은 8억 8,100만 제곱미터로 8.7퍼센트 감소했습니다. 부동산 투자는 17.2퍼센트, 신규 착공 면적은 20.4퍼센트, 준공 면적은 18.1퍼센트 줄었습니다.

비교 기준이 있으면 체감이 달라집니다. 2021년 정점의 판매액은 17조 위안을 넘었고 판매 면적은 16억 제곱미터였습니다. 4년 만에 판매액은 절반 수준, 판매 면적은 55퍼센트 수준으로 내려앉은 것입니다. 한 나라의 경제에서 4분의 1을 차지했던 산업이 반으로 줄어드는 과정을 우리는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셈입니다.

가격은 더 끈질깁니다. 2026년 8월 70개 도시 신규 주택 가격은 전년 같은 달보다 3.0퍼센트 낮았고, 이는 38개월 연속 전년 대비 하락이었습니다. 기존주택 쪽은 지역 차이가 큽니다. 2021년 중반 고점과 비교하면 상하이는 8.7퍼센트, 베이징은 9.3퍼센트 내렸지만, 선전은 22.5퍼센트, 광저우는 26.8퍼센트 떨어졌습니다. 전망도 아직 반등 쪽이 아닙니다. 피치는 2026년 신규 주택 판매가 11퍼센트에서 13퍼센트 더 줄고 가격도 2퍼센트에서 3퍼센트 더 내릴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업계 지형도 바뀌었습니다. 중국부동산정보공사 집계로 연간 계약판매 1,000억 위안 이상을 기록한 본토 개발사는 2020년 43곳이었습니다. 이 숫자가 2022년 20곳, 2023년 17곳, 2024년 11곳, 2025년 10곳으로 줄었습니다. 5년 만에 4분의 1 이하로 쪼그라든 것입니다. 2025년 상위 10개 회사 가운데 전년 대비 판매가 늘어난 곳은 한 곳뿐이었습니다.

제도도 바뀌었습니다. 2026년 8월 말 중국 당국은 선분양 제도 자체를 손보는 대책을 내놨습니다. 앞으로는 건물의 핵심 구조와 골조가 완성된 뒤에야 분양을 시작할 수 있고, 선분양 대금은 별도 계좌에 묶어 준공 때까지 꺼내 쓸 수 없으며, 주택담보대출 자금도 준공 전에는 개발사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금융도 회사 단위가 아니라 개별 사업장 단위로 바뀝니다. 그 사이 집을 넘겨주는 일은 계속됐습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2023년 한 해에만 약 300만 채의 미완공 주택이 완공돼 인도됐고, 당국이 승인한 사업장 대출은 2024년 10월 기준 2조 2,300억 위안이었습니다. 다만 이 돈의 대부분은 새 집을 짓는 데가 아니라 이미 판 집을 끝내는 데 쓰였습니다.

왜 중국판 리먼은 오지 않았는가

2021년 가을 전 세계가 두려워한 것은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의 재연이었습니다. 이 사이트에 리먼 편이 따로 있으니 여기서는 대조에 필요한 만큼만 적겠습니다. 리먼 사태의 핵심은 집값 하락 자체가 아니라, 집값에 연동된 파생상품, 즉 다른 자산 가격에 따라 가치가 정해지는 금융계약들이 금융기관끼리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누가 얼마나 물렸는지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금융기관들이 서로 돈을 빌려주지 않았고, 시장은 며칠 만에 얼어붙었습니다.

헝다는 구조가 달랐습니다. 맥쿼리의 래리 후는 당시 헝다가 가진 것은 토지와 아파트이고 그 가치가 약 1조 4,000억 위안, 2,200억 달러 수준이라고 추정했습니다. 신용부도스와프나 부채담보부증권 같은 사슬이 헝다를 중심으로 엮여 있지 않았습니다. 토지 가격은 금융상품 가격보다 변동이 느리고 투명하며, 무엇보다 중국에서는 지방정부가 토지 공급 자체를 통제하고 토지 가격을 떠받칠 유인이 있습니다. 2014년과 2015년에 지방정부가 토지를 되사들인 전례도 있었습니다.

규모 대비 비중도 생각보다 작았습니다. UBS는 당시 헝다의 해외 달러채가 약 190억 달러로 중국계 달러채 전체의 9퍼센트 정도이고, 총부채 약 3,130억 달러는 중국 부동산 업종 전체 부채의 6.5퍼센트 수준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세계에서 빚이 가장 많은 부동산 회사였지만, 중국 부동산 업계 전체로 보면 15분의 1 정도였다는 뜻입니다. 외국 채권자에게 돌아간 몫은 전체 부채 중 수십억 달러 수준에 그쳤습니다.

법적 구조와 은행도 전염을 막았습니다. 오토노머스리서치의 샬린 추는 중국 부동산 회사들의 디폴트가 대부분 역외에서 발생했고, 역외 계약의 교차 디폴트 조항이 본토에서 그대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차이나베이지북의 셰자드 카지는 중국의 금융 시스템이 상업적 판단보다 정부 지시를 먼저 따르는 구조라고 설명했습니다. 즉 중국에서 대형 회사의 파산은 금융 사건이 아니라 정책 결정에 가깝습니다. 신용 경색은 금융기관들이 각자 판단으로 동시에 몸을 사릴 때 생기는데, 그 전제가 성립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터지지 않았다는 말이 아프지 않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리먼식 급성 발작 대신 중국이 겪은 것은 5년 넘게 이어지는 만성 수축입니다. 부동산과 관련 수요가 경제의 4분의 1이었다면, 그 산업이 반으로 줄어드는 동안 사라진 소득과 일자리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2021년 9월 중국판 리먼이라는 헤드라인을 보고 급하게 판 사람도, 곧 정부가 다 막아줄 테니 기회라고 판단한 사람도 결말을 맞히지 못했습니다. 급성 위기는 끝내 오지 않았고, 동시에 중국 부동산과 연결된 자산들은 그 뒤로도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남는 것

첫째는 돈의 시점입니다. 헝다 이야기의 뿌리는 결국 하나였습니다. 아직 받을 자격이 없는 돈을 미리 받아 이미 써버린 것입니다. 장부에는 그 돈이 부채로 적혀 있었지만 현금은 이미 다른 사업장의 땅값으로 나간 뒤였습니다. 어떤 회사의 숫자를 볼 때 금액의 크기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은, 이 돈이 언제 들어오고 언제 나가느냐입니다. 들어올 시점과 나갈 시점이 어긋나 있는 회사는, 장사가 잘되는 동안에만 안전합니다.

둘째는 규제 뉴스를 읽는 법입니다. 많은 사람이 3대 레드라인을 헝다를 무너뜨린 원인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 규제가 한 일은 빚을 더 늘리지 못하게 막은 것뿐이었습니다. 빚을 더 늘려야만 유지되는 회사였기 때문에 멈춘 것입니다. 규제 기사를 볼 때 유용한 질문은 이 규제가 누구를 혼내는가가 아니라, 이 규제가 어떤 흐름을 멈추게 하는가입니다. 그리고 그 흐름이 멈추면 못 버티는 회사가 어디인가입니다.

셋째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손실입니다. 이 사건에서 가장 크게 다친 사람들은 주식이나 채권을 들고 있던 투자자가 아니었습니다. 정저우에서 9년을 기다려 받은 집에 조명도 변기도 없던 사람, 난징 외곽에서 문도 창문도 없는 집에 가구를 옮겨 넣은 사람, 분양 때 약속된 수영장이 끝내 지어지지 않은 단지에 입주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손실은 어떤 지수에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금융 위기를 숫자로만 읽으면 정작 가장 큰 피해를 놓치게 됩니다.

마지막은 너무 커서 망하지 않는다는 말에 관한 것입니다. 헝다는 망했습니다. 다만 하루 만에 망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2020년 8월 규제부터 2021년 12월 디폴트, 2024년 1월 청산 명령, 2025년 8월 상장 폐지, 2026년 8월 창업자 선고까지 꼬박 6년이 걸렸습니다. 어떤 회사의 성장 속도가 그 회사의 현금 흐름보다 빠를 때 무슨 일이 생기는지, 그리고 그 결말이 생각보다 훨씬 느리게 온다는 것. 헝다가 남긴 것은 그 두 문장 정도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