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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는 왜 비쌌을까

드비어스 그룹이 발표한 2025년 실적표에는 이런 숫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매출 35억 달러, 원석 판매 30억 달러, 기초 영업이익은 5억 1,100만 달러 적자. 원석 생산량은 2,170만 캐럿으로 1년 만에 12% 줄었습니다. 모회사 앵글로아메리칸은 장부상 가치를 거듭 깎아내린 뒤 이 회사를 팔거나 분리하는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한때 세계 다이아몬드 값을 혼자 정하다시피 했던 회사의 성적표라기에는 초라합니다. 귀한 물건을 파는 회사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싶지만, 순서가 반대입니다. 다이아몬드는 귀해서 비쌌던 것이 아니라, 비싸게 유지되도록 관리되었기 때문에 귀해 보였습니다.

킴벌리 프로세스 집계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세계에서 캐낸 원석 다이아몬드는 약 1억 1,650만 캐럿이었습니다. 결코 극단적으로 희소한 광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지난 100년 동안 다이아몬드가 인간이 사는 가장 비싼 작은 물건으로 남아 있었던 이유는 지질학이 아니라 경영 전략에 있습니다. 그 전략의 이름이 드비어스입니다.

땅을 파자 너무 많이 쏟아져 나왔다

19세기 중반까지 다이아몬드는 정말로 희귀했습니다. 인도와 브라질의 강바닥에서 조금씩 건져 올리는 것이 전부여서, 유럽 왕실과 극소수 부호의 물건이었습니다. 희소성이 진짜였던 시절입니다.

그 균형이 1860년대 말 남아프리카에서 깨졌습니다. 오렌지강 유역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고, 1870년대 들어 킴벌리 일대에서 거대한 광맥이 터져 나왔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채굴꾼들이 땅을 파헤치면서, 예전에는 몇십 년에 걸쳐 나올 양이 몇 달 만에 쏟아졌습니다.

광부들에게는 노다지였지만 경제 논리로 보면 재앙의 예고편이었습니다. 공급이 폭증하면 값은 떨어지는데, 다이아몬드는 곡물이나 석유처럼 반드시 써야 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값이 싸지면 신비감이 사라지고, 신비감이 사라지면 아예 사지 않게 되는 상품입니다. 채굴업자들도 서로 먼저 팔겠다고 덤비면 다 같이 망한다는 계산을 곧 했습니다. 문제는 수백 개로 쪼개진 광구를 누가 묶어내느냐였습니다.

세실 로즈가 만든 것은 광산이 아니라 수도꼭지였다

세실 로즈는 처음에 광구를 사들인 사람이 아니라 광부들에게 배수 펌프를 빌려주던 사람이었습니다. 구덩이가 깊어질수록 물이 차오르니 펌프가 필요했고, 그 임대료로 광구를 사 모았습니다. 라이벌이자 동업자였던 바니 바나토와의 격돌 끝에, 1888년 드비어스 컨솔리데이티드 마인스가 세워집니다. 회사 이름은 그 땅을 갖고 있던 데 비어 형제의 농장에서 왔습니다.

로즈가 한 일의 본질은 채굴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남아프리카 생산을 한 회사 아래로 모은 뒤, 캐낸 돌을 전부 시장에 내놓지 않았습니다. 수요에 맞춰 조금씩만 흘려보내고 나머지는 금고에 쌓아두었습니다. 광산이 아니라 수도꼭지를 소유한 셈입니다. 이렇게 소수의 사업자가 생산량과 가격을 짜맞추는 구조를 카르텔, 우리말로는 담합이라고 부릅니다.

이 구조를 제도로 완성한 사람은 다음 세대인 에른스트 오펜하이머였습니다. 그는 1926년 드비어스 이사회에 들어가 1929년 회장에 올랐고, 생산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이 사업의 핵심이라는 원칙을 회사의 뼈대로 심었습니다. 여러 나라 생산자와 계약을 맺어 물량을 한곳에 모으는 중앙판매기구, 이른바 CSO 체제가 그때 자리를 잡습니다. 드비어스는 사이트홀더라 부르는 소수의 지정 구매자에게 회사가 골라 담은 원석 상자를 정해진 값에 내밀었고, 값을 깎거나 돌을 고를 수는 없었습니다.

1947년 어느 밤에 쓰인 한 줄

공급을 잠그는 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1930년대 대공황으로 미국에서 수요가 주저앉자, 드비어스는 광고대행사 N.W. 에이어에 일을 맡깁니다. 목표가 특이했습니다. 브랜드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다이아몬드라는 물건 자체에 대한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이었습니다.

1943년 이 대행사에 들어온 카피라이터가 메리 프랜시스 제레티였습니다. 1916년에 태어나 1999년에 세상을 떠난 그는 1947년 어느 날 밤늦게까지 카피를 붙들고 있다가, 잠들기 직전 종이에 한 줄을 적어두고 다음 날 아침 회의에 들고 갔다고 전해집니다. 그 문장이 A Diamond Is Forever,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였습니다. 광고에 처음 실린 것은 이듬해인 1948년입니다.

이 한 줄이 무서운 이유는 감성이 아니라 계산에 있습니다. 영원하다는 말은 곧 되팔지 말라는 말입니다. 산 사람이 중고로 내놓지 않으면 시장에 흘러드는 물량이 줄고, 잠가둔 수도꼭지의 효력이 유지됩니다. 사랑의 증표를 되파는 사람은 드무니, 결혼 예물이라는 용도를 붙이면 더 확실해집니다.

반지에 얼마를 써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선도 광고가 제시했습니다. 월급 몇 달치라는 그 유명한 공식은 전통이 아니라 카피에서 태어났습니다. 약혼반지에 다이아몬드를 박는 관습이 서구에서 보편화된 것도 이 캠페인 이후입니다. 광고 전문지 애드에이지는 1999년 이 문장을 20세기 최고의 슬로건으로 뽑았습니다. 정작 제레티 본인은 평생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없던 전통을 수입한 나라, 일본

이 전략이 문화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사례가 일본입니다. 일본에는 원래 약혼할 때 다이아몬드 반지를 주는 풍습 자체가 없었습니다. 드비어스가 일본 시장에 본격적으로 광고를 집행하기 시작한 1967년, 다이아몬드 약혼반지를 받은 일본 신부는 스무 명 중 한 명 수준인 5%에 불과했습니다.

광고 전략은 노골적이었습니다. 다이아몬드를 전통이 아니라 현대적이고 서구적인 삶의 상징으로 그렸습니다. 서양식 옷을 입은 젊은 부부, 세련된 실내, 그 옆에 반지. 일본의 고도성장기와 정확히 겹쳤고, 미국에서 월급 두 달치였던 기준선은 일본에서 석 달치로 제시되었습니다.

결과는 광고사에 남았습니다. 다이아몬드 산업을 오래 취재한 미국 언론인 에드워드 제이 엡스타인의 기록에 따르면, 캠페인 시작 14년 만에 그 비율은 60%까지 올라갔습니다. 한 세대도 지나기 전에 없던 관습이 당연한 관습이 된 것입니다. 공급을 잠그는 쪽과 수요를 키우는 쪽을 한 회사가 동시에 쥐면, 가격은 시장이 아니라 회의실에서 정해집니다.

수도꼭지가 여러 개로 늘어난 20년

카르텔은 참가자가 전부 들어와 있을 때만 작동합니다. 구소련 시베리아에서 대규모 광맥이 나왔을 때 드비어스는 그 물량을 사들여 체제 안에 묶어두었지만, 소련이 무너진 뒤로는 통제가 새기 시작했습니다. 호주에서는 대형 아가일 광산이 1996년 계약을 끝내고 4,200만 캐럿을 직접 팔겠다고 선언했고, 1990년대에는 캐나다가 새 산지로 떠올랐습니다.

물량을 사들여 값을 떠받치는 방식에는 대가가 따랐습니다. 최후의 구매자 노릇을 하느라 쌓인 재고는 1990년대 후반 25억 달러에서 50억 달러 수준까지 불어났습니다. 결국 드비어스는 1998년을 전후해 노선을 바꿉니다. 점유율을 일부 내주더라도 브랜드와 수요를 키워 이익을 남기겠다는 방향이었고, 2000년에는 사이트홀더를 120곳에서 80곳으로 줄였습니다.

법의 압박도 동시에 들어왔습니다. 드비어스는 오랫동안 미국 반독점법 때문에 미국에서 직접 영업을 하지 못했습니다. 2004년 공업용 다이아몬드 가격 담합 혐의를 인정해 1,000만 달러의 벌금을 냈고, 2008년에는 소비자 집단소송에서 2억 9,500만 달러를 물어주기로 합의해 2013년 최종 확정되었습니다.

숫자는 정직합니다. 1980년대에 세계 원석의 대부분이 드비어스 판매망을 거쳤다면, 2000년에는 63% 수준, 2019년에는 29.5%, 2021년에는 25%까지 내려왔습니다. 러시아 알로사가 물량 기준 세계 1위 생산자로 올라섰고, 2024년 세계 원석 생산은 러시아가 3,730만 캐럿으로 32%, 보츠와나가 2,820만 캐럿으로 24%를 차지했습니다. 2011년 오펜하이머 가문의 지분 40%가 앵글로아메리칸에 51억 달러에 넘어가면서 한 가문의 시대도 끝났습니다.

실험실에서 자란 균열

그런데 점유율 하락은 예고편이었습니다. 진짜 충격은 땅속이 아니라 공장에서 왔습니다. 고온고압이나 화학증착 방식으로 탄소를 결정으로 키워내는 실험실 재배 다이아몬드, 이른바 랩그로운입니다. 유리 모조품이 아니라 원자 배열까지 천연과 같은 진짜 다이아몬드이고, 전문 감정 장비 없이는 구분이 어렵습니다.

드비어스의 초기 대응은 영리해 보였습니다. 2018년 라이트박스라는 브랜드를 내놓고 랩그로운을 캐럿당 800달러라는 단순한 정찰가에 팔았습니다. 저 돌은 값싼 액세서리일 뿐이고 진짜 예물은 천연이라는 선을 소비자 머릿속에 긋겠다는 의도였습니다. 희소성 서사를 지키려고 스스로 경쟁 제품을 만든 셈입니다.

그 선은 오래 버티지 못했습니다. 중국을 비롯한 생산자들이 뛰어들면서 랩그로운 도매 가격은 라이트박스 출범 이후 90% 가까이 무너졌습니다. 값싼 물건이라는 자리를 지키려 값을 계속 낮추다 보니 사업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습니다. 드비어스는 2025년 5월 라이트박스를 접겠다고 발표했고, 계열사 엘리먼트식스는 보석 대신 반도체와 양자 기술 같은 산업용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소비자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미국 결혼 정보 업체 더낫이 1만 쌍 넘는 커플을 조사한 2025년 결과를 보면, 약혼반지 중앙 보석으로 랩그로운을 고른 비율이 61%로 2020년 대비 239% 늘었습니다. 평균 지출은 랩그로운 반지가 4,300달러, 천연 다이아몬드 반지가 7,000달러였습니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하고 희소하다는 이야기는 그 돌이 땅에서만 나올 때 성립합니다. 같은 성분의 돌을 몇 주 만에 키워낼 수 있게 된 순간, 희소성은 관리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남는 것

이 이야기에서 챙길 만한 첫 번째 교훈은 희소성이라는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말자는 것입니다. 어떤 자산이 비싼 이유가 물리적으로 적기 때문인지, 누군가 적게 보이도록 관리하고 있기 때문인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후자라면 관리하는 주체가 사라지거나 관리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순간 값은 무너집니다. 드비어스는 그 비용을 수십억 달러의 재고로 치르다가 결국 노선을 바꿔야 했습니다.

두 번째는 이야기가 만든 프리미엄은 이야기와 함께 흔들린다는 점입니다. 다이아몬드 값의 상당 부분은 광물의 물성이 아니라 그 돌에 붙은 서사가 떠받치고 있었습니다. 서사가 붙은 가격은 올라갈 때 가파른 대신 내려올 때도 가파릅니다. 어떤 자산의 가격표에서 얼마만큼이 실제 쓸모이고 얼마만큼이 이야기인지 나눠보는 습관은 꽤 쓸모가 있습니다.

세 번째는 진입장벽의 수명입니다. 드비어스의 해자는 광산 소유였고, 100년 가까이 아무도 넘지 못한 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벽은 경쟁사가 더 큰 광산을 찾아내서가 아니라, 광산이 필요 없어지는 기술이 나오면서 허물어졌습니다. 지금 튼튼해 보이는 해자도 같은 방식으로 우회당할 수 있습니다. 경쟁자를 볼 때 같은 업종만 들여다보면 놓치는 것이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소비자의 습관은 만들어질 수도 있고 바뀔 수도 있습니다. 1967년의 일본인들에게 다이아몬드 약혼반지는 낯선 물건이었고 14년 뒤에는 당연한 물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수십 년이 지나 지금의 젊은 세대는 같은 자리에 실험실에서 자란 돌을 올려두고 있습니다. 영원하다고 믿었던 관습도 결국 한 시대의 선택이었던 셈입니다. 시장에서 당연해 보이는 것일수록 언제부터 당연해졌는지 한 번쯤 되짚어볼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