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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의 100만 달러 내기, 승부는 수수료가 갈랐습니다

2007년 여름, 뉴욕의 한 헤지펀드 운용사로 제안 하나가 전해졌습니다. 제안을 건넨 쪽은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 사는 일흔을 훌쩍 넘긴 노년의 투자자였고, 내용은 단순했습니다. 앞으로 10년 동안 미국 주가지수를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는 값싼 펀드 하나가, 세상에서 가장 비싼 보수를 받는 헤지펀드 여러 개를 묶어놓은 것보다 성적이 좋을 것이다. 만약 틀리면 100만 달러를 내놓겠다. 그렇게 월스트리트 역사상 가장 유명한 내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유는 누가 이겼느냐 때문만이 아닙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두 진영의 격차를 벌린 것이 대단한 종목 발굴 능력도, 시장의 방향을 읽는 눈도 아니었다는 점 때문입니다. 격차를 만든 것은 매년 계좌에서 조용히 빠져나가던 숫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숫자는 1년만 떼어놓고 보면 거의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야기는 어떤 상품을 사라는 권유가 아닙니다. 비용과 시간이라는 두 가지 평범한 요소가 10년이라는 기간을 통과하고 나면 결과를 얼마나 다르게 만드는지, 그 과정을 숫자로 천천히 따라가 보는 기록에 가깝습니다.

오마하에서 날아온 도전장

워런 버핏은 오래전부터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 왔습니다. 시장에 참여한 모든 투자자의 수익률을 전부 합치면 결국 시장 평균과 같아질 수밖에 없는데, 비싼 비용을 내고 자주 사고파는 쪽은 그 평균에서 비용만큼을 미리 빼고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평균에서 비용을 뺀 자리에서 시작하는 사람이 평균을 이기려면, 그 비용보다 더 많은 초과 수익을 매년 만들어내야 합니다. 버핏은 그 일이 집단 전체로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습니다.

그가 겨냥한 상대는 헤지펀드였습니다. 헤지펀드는 소수의 큰손 자금을 모아 주식과 채권은 물론 파생상품까지 자유롭게 사고팔면서, 시장이 오르든 내리든 수익을 내겠다고 표방하는 사모 형태의 펀드를 말합니다. 여기서 파생상품이란 주가나 금리 같은 기초 자산의 가격 움직임에 따라 가치가 정해지는 계약을 뜻합니다. 남들이 못 하는 일을 하니 보수도 비싸게 받는다는 것이 이 업계의 오랜 논리였습니다.

당시 업계의 관행적인 보수 체계는 이른바 2와 20이었습니다. 맡긴 돈의 2퍼센트가량을 해마다 관리 보수로 떼고, 거기에 더해 벌어들인 이익의 20퍼센트를 성과 보수로 가져가는 구조입니다. 게다가 버핏이 겨냥한 대상은 개별 헤지펀드가 아니라 헤지펀드 재간접펀드였습니다. 여러 헤지펀드에 자금을 나눠 담아주는 펀드인데, 그 서비스에 대해 한 겹의 보수가 더 붙습니다.

버핏은 2006년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 자리에서 이 생각을 공개적으로 꺼냈습니다. 자신 있으면 돈을 걸어보라는 취지였습니다. 그런데 1년이 넘도록 아무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업계 전체가 비싼 보수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었지만, 정작 10년이라는 시간표를 놓고 자기 이름을 걸겠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응한 사람, 테드 사이즈

2007년, 프로테제 파트너스라는 운용사의 테드 사이즈가 손을 들었습니다. 프로테제는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력 있는 헤지펀드를 일찍 발굴해 자금을 배분하는 일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사이즈는 자신의 승률을 85퍼센트 정도로 봤다고 훗날 밝혔습니다. 그는 버핏의 논리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좋은 운용사를 골라낼 수 있다면 추가로 내는 보수 이상을 벌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사이즈의 계산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었습니다. 헤지펀드의 진가는 지수가 계속 오르는 시기가 아니라 시장이 무너지는 시기에 드러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수를 그대로 따라가는 펀드는 시장이 내리면 똑같이 내릴 수밖에 없지만, 헤지펀드는 현금을 쌓아두거나 하락에 베팅해 손실을 줄일 수 있습니다. 2007년은 이미 미국 주택시장에 균열이 보이기 시작하던 때였고, 그 점에서 시점 선택은 오히려 사이즈 쪽에 유리해 보였습니다.

조건은 이렇게 정해졌습니다. 기간은 2008년 1월 1일부터 2017년 12월 31일까지 꼭 10년. 버핏 쪽은 뱅가드의 S&P500 지수 추종 펀드 하나, 사이즈 쪽은 그가 직접 고른 헤지펀드 재간접펀드 다섯 개였습니다. 다섯 펀드의 이름은 끝까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비교 기준은 모든 보수와 비용을 다 뺀 뒤 투자자에게 실제로 돌아가는 순수익률이었습니다.

내기는 장기 예측을 공개적으로 기록해두는 롱벳츠라는 사이트에 정식으로 등록됐습니다. 판돈은 진 쪽이 상대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이긴 쪽이 미리 지정해둔 자선단체로 전액 넘어가는 구조였습니다. 버핏은 오마하 지역 소녀들을 지원하는 걸스 잉크 오브 오마하를, 프로테제는 아동 지원 단체인 앱솔루트 리턴 포 키즈의 후원 조직을 지정했습니다. 이기든 지든 돈은 두 사람의 주머니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첫 해, 버핏은 크게 졌습니다

시작하자마자 세계 금융위기가 터졌습니다. 2008년 한 해 동안 버핏의 지수 펀드는 약 37퍼센트 하락했습니다. 반면 사이즈가 고른 다섯 펀드의 묶음은 약 23.9퍼센트 하락에 그쳤습니다. 1년 만에 13퍼센트포인트가 넘는 차이로 사이즈가 앞섰고, 그가 내세웠던 논리가 그대로 증명되는 듯 보였습니다.

실제로 헤지펀드들은 하락장에서 제 역할을 했습니다. 주식 비중을 줄이고 현금을 늘리거나, 공매도로 손실을 상쇄했습니다. 공매도란 주식을 빌려서 먼저 팔아둔 뒤 값이 떨어지면 싸게 되사서 갚아 그 차액을 남기는 거래를 말합니다. 시장이 무너질 때 돈을 버는 몇 안 되는 방법이고, 2008년에는 이 방법을 쓴 쪽이 확실히 덜 다쳤습니다.

하지만 그 뒤가 문제였습니다. 미국 증시는 2009년 봄을 바닥으로 길고 완만한 회복에 들어갔습니다. 지수 펀드는 시장이 오르는 만큼 그대로 따라 올랐지만, 방어에 무게를 둔 펀드들은 올라가는 속도에서 뒤처졌습니다. 버핏은 내기 5년 차에 마침내 앞서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단 한 번도 순위가 뒤집히지 않았습니다.

10년 뒤, 숫자는 이렇게 남았습니다

2017년 말 기준 최종 성적표는 이렇습니다. 버핏이 고른 지수 펀드의 10년 누적 수익률은 125.8퍼센트였습니다. 사이즈가 고른 다섯 개 재간접펀드의 평균 누적 수익률은 36.3퍼센트였습니다. 다섯 개 가운데 가장 성적이 좋았던 펀드가 87.7퍼센트, 가장 나빴던 펀드는 2.8퍼센트였습니다. 다섯 개 가운데 단 하나도 지수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연 단위로 환산하면 지수 펀드는 해마다 평균 8.5퍼센트가량, 헤지펀드 묶음은 3.1퍼센트가량 불어난 셈입니다. 한 해 차이로 보면 5퍼센트포인트 남짓입니다. 어느 해에도 극적인 사건은 없었습니다. 그저 매년 조금씩 뒤처졌고, 그것이 10년 동안 복리로 쌓이자 최종 누적 수익률이 세 배 넘게 벌어졌습니다.

사이즈는 기간이 끝나기도 전인 2017년에 패배를 인정하는 글을 먼저 발표했습니다. 승부가 사실상 결정된 시점이었습니다. 그는 높은 보수가 결정적이었다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하면서도, 한 가지 단서를 달았습니다. 이 10년은 미국 증시에 유난히 좋았던 기간이었고, 다른 10년이었다면 결과가 달랐을 수 있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새겨들을 만한 반론입니다.

매년 2퍼센트가 10년 뒤에 하는 일

왜 이렇게까지 벌어졌을까요. 재간접펀드 구조에서는 보수가 두 겹으로 붙습니다. 개별 헤지펀드가 관리 보수와 성과 보수를 떼고, 그것들을 모아놓은 재간접펀드가 다시 자기 몫을 뗍니다. 투자자가 실제로 손에 쥐는 것은 그 모든 단계를 통과하고 남은 금액입니다. 반면 지수를 그대로 복제하는 펀드는 사람이 판단할 일이 거의 없으니 비용이 극히 낮습니다.

숫자로 감을 잡아보겠습니다. 100이라는 돈이 매년 8퍼센트씩 불어나면 10년 뒤 약 216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매년 2.2퍼센트포인트씩만 비용으로 빠져나가 5.8퍼센트로 불어난다면 10년 뒤에는 약 176입니다. 40의 차이입니다. 원금의 40퍼센트에 해당하는 금액이, 단 한 번의 잘못된 판단 없이 그저 매년 2퍼센트포인트씩 새어나간 것만으로 사라진 셈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비대칭이 더 있습니다. 성과 보수는 이익이 났을 때만 붙지만, 관리 보수는 손실이 나도 꼬박꼬박 나갑니다. 수익은 불확실한데 비용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확실한 쪽이 불확실한 쪽을 잠식하는 힘이 커집니다. 버핏이 10년이라는 긴 기간을 고집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판돈에도 뜻밖의 반전이 있었습니다

판돈을 마련한 방식에도 이야깃거리가 있습니다. 두 사람은 각각 318,250달러씩을 제로쿠폰 국채에 넣었습니다. 제로쿠폰채란 이자를 따로 주지 않는 대신 액면가보다 훨씬 싸게 발행해서, 만기가 되면 액면가를 돌려주는 채권을 말합니다. 10년 뒤 두 사람 몫을 합치면 정확히 100만 달러가 되도록 설계한 것입니다.

그런데 금융위기 이후 각국이 금리를 끌어내리면서 채권 가격이 크게 올랐습니다. 2012년 11월 무렵 이 채권은 이미 100만 달러에 가까운 값이 되어 있었고, 남은 5년 동안 기대할 수 있는 수익률은 연 1퍼센트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버핏은 이 상태로 만기까지 들고 가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두 사람은 합의하에 채권을 팔고 그 돈으로 버크셔 해서웨이 B주 11,200주를 샀습니다. 판돈 자체를 주식에 태운 것입니다. 남은 5년 동안 이 주식은 크게 올랐고, 내기가 끝났을 때 판돈은 약 220만 달러가 되어 있었습니다. 원래 약속했던 100만 달러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이었습니다.

그 220만 달러는 전액 걸스 잉크 오브 오마하로 전달됐습니다. 오마하 지역의 소녀들에게 방과 후 교육과 진로 지원을 제공하는 비영리 단체입니다. 10년에 걸친 논쟁의 실질적인 결과물은 어느 쪽 이론이 옳았다는 선언이 아니라, 한 지역 단체의 예산이 두둑해진 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남는 것

이 이야기의 교훈을 어느 한쪽 상품이 우월하다는 결론으로 정리하면 오히려 핵심을 놓치게 됩니다. 사이즈의 반론처럼 표본은 딱 하나였고, 하필 미국 증시에 유난히 우호적이었던 10년이었습니다. 다른 10년을 잘라냈다면 숫자는 달라졌을 수 있습니다. 한 번의 내기로 세상의 모든 운용 방식에 등수를 매길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지워지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수익은 끝까지 가봐야 알지만, 비용은 첫날부터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경로로 얼마를 비용으로 내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라면, 10년 뒤 성적표에서 그 부분을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비용은 예측의 영역이 아니라 확인의 영역입니다.

또 하나는 시간의 단위입니다. 2008년 한 해만 놓고 보면 사이즈의 압승이었고, 그때 승부를 끝냈다면 세상에 전해지는 교훈도 정반대였을 것입니다. 1년짜리 성적표와 10년짜리 성적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숫자가 어느 쪽 시간표 위에 놓인 것인지 한 번쯤 되물어보는 일, 이 내기가 남긴 가장 값싼 교훈은 아마 그것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