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 두 판에 1만 비트코인을 낸 날
2026-09-12 · 8분 읽기
2010년 5월 22일, 미국 플로리다의 한 주택 앞에 파파존스 배달원이 도착했습니다. 라지 사이즈 피자 두 판, 하나는 치즈 피자였고 다른 하나는 슈프림이었습니다. 주문자는 라스즐로 하니예츠라는 이름의 프로그래머였고, 피자 두 판의 값은 41달러쯤이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날 미국에서 벌어진 수십만 건의 평범한 피자 배달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른 점은 결제 방식 하나였습니다. 하니예츠는 피자값을 달러로 내지 않았습니다. 대신 인터넷 게시판에서 만난 낯선 사람에게 비트코인 1만 개를 보냈고, 그 사람이 자기 신용카드로 피자를 주문해 하니예츠의 집 주소로 배달시켜 주었습니다. 기록으로 남은 최초의 비트코인 실물 거래는 이렇게 성사됐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 코인 투자자들이 매년 5월 22일을 '비트코인 피자데이'라고 부르며 기념하는 이유입니다.
그 1만 개가 지금 얼마쯤 되는지는 잠시 뒤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만 먼저 짚어둘 것이 있습니다. 2010년 5월의 하니예츠에게 비트코인 1만 개는 전혀 아까운 돈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거저 얻은 숫자로 저녁 한 끼를 해결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이야기가 오래 회자되는 진짜 이유는 누군가 큰돈을 날렸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 값어치도 없던 숫자가 어떻게 값을 갖기 시작하는지를 이 한 장면이 통째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41달러짜리 주문서
시작은 5월 18일이었습니다. 하니예츠는 비트코인 초창기 이용자들이 모이던 인터넷 게시판 비트코인토크에 글을 하나 올렸습니다. 요지는 간단했습니다. 비트코인 1만 개를 줄 테니 라지 피자 두 판을 보내 달라, 직접 만들어 갖다줘도 좋고 배달 주문을 대신 넣어줘도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으면 다음 날 아침으로 먹으면 되니 양이 많은 편이 좋겠다는 말까지 덧붙였습니다.
나흘 동안 아무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5월 22일, 당시 열아홉 살이던 제러미 스터디번트가 응했습니다. 게시판에서는 '저코스(jercos)'라는 아이디를 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카드로 파파존스에 주문을 넣어 하니예츠의 주소로 보냈고, 하니예츠는 약속대로 1만 개를 송금했습니다. 피자 두 판이 41달러 안팎이었으니, 비트코인 한 개의 값은 0.004달러 남짓으로 계산된 셈입니다.
왜 굳이 이렇게 번거로운 방식을 썼을까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때는 비트코인을 받아주는 가게가 지구상에 단 한 곳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코인을 현금으로 바꿔주는 제대로 된 거래소도 없다시피 했습니다. 그래서 '비트코인을 받은 사람이 자기 돈으로 대신 결제해 준다'는 우회로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니예츠가 증명하고 싶었던 것도 가격이 아니라 바로 그 가능성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받은 쪽의 뒷이야기입니다. 스터디번트는 그 1만 개를 금고에 넣어두지 않았습니다. 여자친구와 함께 떠난 자동차 여행 경비로 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이 거래의 두 당사자는 모두 자기 몫을 오래전에 써버렸습니다. 훗날의 가격을 알았다면 누구도 그러지 않았겠지만, 몰랐기 때문에 그 거래가 성립했다는 점이 이 이야기의 묘미입니다.
그때 비트코인은 그저 흘러넘치는 숫자였습니다
비트코인 네트워크는 2009년 1월에 처음 돌기 시작했습니다. 새 코인을 얻는 방법은 '채굴'이라고 불렀는데, 컴퓨터로 정해진 계산 문제를 반복해서 풀고 가장 먼저 답을 찾은 사람이 보상으로 코인을 받는 방식이었습니다. 지금은 전용 장비를 갖춘 대형 업체들이 경쟁하지만, 2010년에는 참여자가 워낙 적어서 평범한 가정용 컴퓨터로도 하루에 수십, 수백 개씩 쌓였습니다. 말하자면 주우면 주워지는 상태였습니다.
하니예츠는 그중에서도 남달랐습니다. 그는 2010년 5월, 일반 중앙처리장치 대신 그래픽카드를 채굴에 쓰는 방법을 커뮤니티에 처음 알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픽카드는 화면을 그리기 위해 단순한 계산을 한꺼번에 많이 처리하도록 설계돼 있어서, 채굴 같은 반복 계산에 훨씬 유리했습니다. 이 방법으로 그는 채굴 능력을 단숨에 열 배 수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흥미롭게도 비트코인을 만든 사토시 나카모토는 이 발견을 반기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래픽카드 채굴이 퍼지면 좋은 장비를 가진 소수에게만 보상이 쏠려 초기 생태계가 기울어진다는 이유였습니다. 사토시는 이메일로 확산을 자제해 달라는 취지의 뜻을 전했지만, 기술은 곧 윈도와 맥, 리눅스로 번져나갔습니다. 오늘날 거대한 채굴 산업의 출발점이 바로 그 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니예츠에게 1만 개는 지갑에서 꺼낸 현금이 아니라, 며칠이면 다시 채워지는 숫자였습니다. 실제로 그는 2010년 한 해 동안 피자를 사는 데에만 대략 10만 개를 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흔히 '피자 두 판에 1만 개'라는 한 장면만 기억되지만, 그것은 단발성 실수가 아니라 여러 차례 반복된 소비의 일부였습니다. 당시의 감각으로는 지극히 합리적인 행동이었던 셈입니다.
1만 개의 값어치는 어떻게 변했을까
2010년 5월의 환산가 0.004달러는 사실상 '값이 없다'는 말과 같았습니다. 정식 시장가라기보다, 채굴에 들어간 전기요금을 어림해 만든 참고용 숫자에 가까웠습니다. 그해 여름 거래소가 문을 열면서 비로소 시세라는 것이 생겼지만, 그때도 한 개에 1센트가 되지 않았습니다. 피자 두 판이 이 코인으로 살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물건이었습니다.
이후의 경로는 널리 알려진 대로입니다. 2017년 강세장의 고점 무렵, 그 1만 개의 값어치는 2억 달러 안팎으로 불어났습니다. 그러니까 7년 만에 피자 두 판이 웬만한 중견기업 시가총액이 된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피자데이'는 기념일이자 농담이 되었고, 동시에 초기 투자자들의 무용담을 떠받치는 전설이 되었습니다.
그 뒤로도 기록은 계속 갈렸습니다. 비트코인의 사상 최고가는 2025년 10월 6일에 기록한 한 개당 12만 6천 달러 선입니다. 그 시세를 그대로 적용하면 1만 개는 12억 달러를 넘어섭니다. 다만 이 숫자는 '그날의 최고가'라는 특정 시점의 값일 뿐이라는 점을 기억해 두시는 편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요. 이 글을 쓰는 2026년 9월 초 기준으로 비트코인은 한 개에 7만 달러대 후반에서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단순 계산하면 1만 개는 8억 달러 언저리입니다. 물론 이 값은 이 글을 읽으시는 시점에는 또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정확한 자릿수가 아니라, 41달러와 지금의 자릿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화폐가 화폐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경제학 교과서는 화폐의 조건으로 보통 세 가지를 꼽습니다. 첫째는 교환의 매개입니다. 물건을 사고팔 때 중간에서 오갈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둘째는 가치의 저장 수단입니다. 오늘 받아둔 돈이 내일도 비슷한 값어치를 유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셋째는 회계의 단위입니다. 세상의 물건값을 재는 자로 쓸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2010년 5월 22일 이전의 비트코인은 이 셋 중 어느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무도 그것으로 물건을 사지 않았고, 값이 없으니 저장할 가치도 없었으며, 무엇의 값을 재는 단위도 되지 못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완성돼 있었지만 경제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피자 거래는 그 세 조건 중 첫 번째, 곧 교환의 매개라는 자리에 비트코인이 처음으로 발을 들인 사건이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하니예츠가 아니라 스터디번트입니다. 무언가가 돈이 되는 순간은 누군가 그것을 내미는 순간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받아주는 순간입니다. 값어치는 물건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합의에서 생겨납니다. 그 합의가 단 두 사람 사이에서 처음 성립한 날이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비트코인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갑 속 지폐 한 장도 그 자체로는 특수 용지에 잉크를 입힌 종이일 뿐입니다. 그 종이가 돈으로 작동하는 것은 발행 기관에 대한 신뢰와, 무엇보다 '다른 사람도 이걸 받아줄 것'이라는 기대가 사회 전체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화폐의 역사는 결국 그 기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무너지는지에 관한 기록입니다.
오르는 돈은 쓰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고약한 역설이 생깁니다. 어떤 돈이 앞으로 계속 오를 것이라고 사람들이 믿으면, 그 돈은 오히려 잘 쓰이지 않게 됩니다. 오늘 피자 두 판과 바꾸는 대신 그냥 들고 있으면 내년에 피자 스무 판을 살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 뛰어날수록 교환의 매개로서는 불리해지는 구조입니다.
16세기 영국에서 나온 그레셤의 법칙이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흔히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번역되는데, 금 함량이 낮은 나쁜 동전과 함량이 높은 좋은 동전이 같은 액면으로 통용되면, 사람들은 나쁜 동전부터 먼저 쓰고 좋은 동전은 녹이거나 장롱에 넣어둔다는 뜻입니다. 결국 시장에는 나쁜 동전만 돌아다니게 됩니다. 좋은 돈일수록 유통에서 사라진다는 역설입니다.
비트코인 결제가 기술적으로 가능해진 지 십수 년이 지났는데도 일상에서 좀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보유자 다수가 그것을 지불 수단이 아니라 장기 보유 자산으로 다루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이지만, 피자데이가 매년 기념되는 것 자체가 그런 거래가 얼마나 드문 일이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반대 방향도 마찬가지로 곤란합니다. 값이 하루가 다르게 무너지는 돈은 아무도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아침에 받은 돈이 저녁에 반값이 되는 초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현지 화폐를 버리고 달러나 물건으로 도망칩니다. 화폐가 화폐로 작동하려면 지나치게 오르지도, 지나치게 내리지도 않는 어정쩡한 안정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생각보다 까다로운 조건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남는 것
정작 하니예츠 본인은 이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밝혀 왔습니다. 그는 당시 자신이 인터넷을 상대로 한 수 이겨서 공짜 밥을 얻어낸 기분이었다는 취지로 회고했습니다. 손실이 아니라 정당한 상거래였고, 자신은 비트코인을 직업이 아니라 취미로 대해 왔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피자를 먹은 사람이라는 별명에도 그는 담담한 편입니다.
'그때 안 팔았더라면'이라는 문장은 언제나 사후적입니다. 2010년 5월의 정보만 가지고 있던 사람에게 1만 개를 계속 들고 있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값이 오른 뒤에야 알게 된 결말을 과거의 자신에게 소급 적용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주식이든 무엇이든 지나간 차트를 볼 때 늘 이 착시에 빠집니다. 차트의 오른쪽 끝이 가려져 있을 때 어떤 선택을 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또 하나 기억할 것은 값과 값어치가 같은 말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2010년의 41달러와 오늘의 자릿수 사이를 메운 것은 기술의 개선만이 아니라, 받아주는 사람이 두 명에서 수천만 명으로 늘어난 과정이었습니다. 어떤 자산이든 가격은 마지막 거래 한 건이 찍은 숫자일 뿐이고, 그 숫자를 떠받치는 것은 결국 그것을 받아줄 다음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피자데이가 매년 소환되는 것은 누군가의 손실을 구경하기 위해서가 아닐 것입니다. 값이 정해지지 않은 것을 두고 사람들이 값을 만들어 가는 과정, 그 어수선하고 우연에 가까운 첫 장면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시장에서 뜨겁게 거래되는 것들 역시 언젠가는 누군가의 '피자 두 판' 이야기로 남을지 모릅니다. 그 결말을 미리 아는 사람은 그때도 지금도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