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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빚을 갚지 못하면 누가 받아내는가

2012년 10월 2일, 서아프리카 가나의 테마항에 흰 돛을 세 개 세운 범선 한 척이 들어왔습니다. 이름은 리베르타드, 아르헨티나 해군의 훈련용 범선이었습니다. 사관후보생과 승조원을 합쳐 300명이 넘게 타고 있었고, 매년 하는 연례 실습 항해의 한 기항지에 들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배는 예정된 날에 떠나지 못했습니다. 가나 법원이 출항을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배를 붙잡은 것은 가나 정부가 아니었습니다. 케이맨제도에 등록된 NML 캐피털이라는 투자 펀드였습니다. 이 펀드는 11년 전 아르헨티나가 갚지 못하겠다고 선언한 국채, 즉 나라가 돈을 빌리면서 써 준 차용증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 돈을 받아내기 위해 아르헨티나 정부 소유 자산이 해외에 나오면 어디든 찾아가 압류를 시도하는 중이었고, 마침 군함 한 척이 자기들이 소송을 걸어 둔 나라의 관할권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펀드가 배를 풀어 주는 조건으로 부른 금액은 2,000만 달러였습니다.

회사가 부도를 내면 법원이 재산을 팔아 채권자들에게 나눠 줍니다. 그런데 나라가 부도를 내면 어떻게 되는지는 훨씬 애매합니다. 나라를 청산해서 팔 수는 없고, 국토를 경매에 넘길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돈을 빌려준 사람은 무엇을 근거로, 어디에서, 어떻게 돈을 받아내는 것일까요. 아르헨티나가 15년 동안 뉴욕 법정과 세계 곳곳의 항구에서 치른 싸움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가장 생생한 답입니다.

2001년 12월, 나라가 손을 들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1990년대에 자국 화폐 페소의 가치를 미국 달러와 1대 1로 묶어 두는 제도를 운영했습니다. 물가가 해마다 몇 배씩 뛰던 나라에 안정을 주기 위한 선택이었고, 한동안은 실제로 효과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고정 환율을 지키려면 나라 안에 달러가 끊이지 않고 들어와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정부는 부족한 달러를 국채를 팔아 메웠고, 높은 이자를 주는 아르헨티나 국채는 뉴욕과 런던의 투자자들에게 인기 있는 상품이었습니다.

1990년대 말부터 사정이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이웃 브라질이 자국 화폐 가치를 크게 떨어뜨리자 달러에 묶여 있던 아르헨티나 제품은 상대적으로 비싸져 수출길이 막혔습니다. 경기는 3년 넘게 가라앉았고 실업률은 치솟았습니다. 정부는 만기가 돌아온 빚을 갚기 위해 더 비싼 이자를 주고 새 빚을 냈고, 그렇게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었습니다. 2001년 말에는 사람들이 은행에서 돈을 빼기 시작했고, 정부가 예금 인출을 제한하자 거리에서는 냄비를 두드리는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2001년 12월 26일, 아르헨티나는 대외채무에 대한 지급을 정지한다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대상이 된 빚은 약 930억 달러 규모였고, 그때까지 세계 역사상 가장 큰 국가부도였습니다. 2주 남짓한 사이에 대통령이 여러 차례 교체되는 정치적 혼란이 뒤따랐고, 이듬해 페소의 고정 환율도 무너졌습니다. 은행에 달러로 넣어 둔 돈이 페소로 바뀌어 돌아온 사람들의 분노는 오래 남았습니다.

선언 자체는 한 문장으로 끝났지만, 그 뒤에는 세계 수십 개 나라에 흩어진 수십만 명의 채권자가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얼마를, 언제, 어떤 조건으로 갚을지를 정하는 일은 그때부터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국제 파산법정 같은 곳이 아니라, 채권을 발행할 때 적어 넣은 계약서와 그 계약서가 지정한 나라의 법원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원금을 깎아 주는 합의, 그리고 거부한 7퍼센트

2005년 1월, 아르헨티나 정부는 채권자들에게 교환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부도난 헌 채권을 가져오면 새로 발행하는 채권으로 바꿔 주겠다는 방식입니다. 다만 조건이 가혹했습니다. 액면 100달러짜리 채권을 대략 30달러 수준의 새 채권으로 바꿔 주는 셈이었고, 만기도 한참 뒤로 밀렸습니다. 원금을 깎는 이 조치를 금융권에서는 헤어컷, 즉 머리를 자른다고 표현합니다.

가혹한 조건이었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대상이 된 약 820억 달러어치 채권 가운데 76퍼센트가 교환에 응했습니다. 협상이 몇 년 더 끌리면 30달러조차 못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을 것입니다. 2010년 4월 아르헨티나는 남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번 더 교환을 제안했고, 두 차례를 합쳐 전체 부도 채권의 약 92.6퍼센트가 정리되었습니다. 남은 7퍼센트 남짓이 끝까지 거부한 채권자들이었고, 이들을 홀드아웃이라고 부릅니다.

홀드아웃 가운데 가장 집요했던 쪽이 폴 싱어가 이끄는 엘리엇 매니지먼트 계열의 NML 캐피털, 그리고 아우렐리우스 캐피털 같은 펀드들이었습니다. 이들 상당수는 2001년에 아르헨티나 국채를 정상가로 산 원래 투자자가 아니었습니다. 부도 뒤 값이 폭락한 채권을 시장에서 헐값에 사 모은 쪽이었습니다. NML 캐피털의 경우 2014년까지 액면 8억 3,200만 달러어치 채권을 시장에서 약 4,900만 달러에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부실 채권을 싸게 사서 법정 싸움으로 액면 전액을 받아내려는 이런 펀드를 두고 세상은 벌처펀드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벌처는 썩은 고기를 먹는 독수리입니다. 아르헨티나 정부와 시민단체들은 이들이 위기에 처한 나라의 곤경을 이용해 폭리를 취한다고 비난했습니다. 반대편의 논리도 있었습니다. 계약서에 적힌 금액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채권자의 정당한 권리이고, 나라가 마음대로 원금을 깎는 것을 용인하면 앞으로 어떤 나라에도 돈을 빌려줄 수 없게 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압류할 것을 찾아 세계를 돌다

판결을 받아 내는 것과 실제로 돈을 받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펀드들은 미국 법원에서 아르헨티나가 돈을 갚아야 한다는 판결을 여러 건 확보했습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의 재산은 대부분 아르헨티나 안에 있고, 그 재산에 미국 법원의 판결을 집행할 방법이 없습니다. 게다가 국가가 공적인 목적으로 쓰는 자산에는 주권면제라는 보호가 붙습니다. 다른 나라 법원이 한 나라의 공적 자산을 함부로 붙잡지 못하게 하는 국제법상의 원칙입니다.

그래서 펀드들은 아르헨티나 정부 자산이 국경 밖으로 나오는 순간을 노렸습니다. 해외 계좌, 대통령이 타는 전용기, 해외에 보관된 중앙은행 자금, 심지어 박람회에 출품된 전시물까지 압류 대상으로 거론되었습니다. 결과는 대개 실패였습니다. 법원마다 주권면제를 인정했고, 아르헨티나 정부도 압류 위험이 있는 자산을 해외에 내놓지 않는 쪽으로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 전용기 대신 민항기를 이용한 것도 이 시기의 풍경입니다.

그러던 중 리베르타드가 가나에 들어왔습니다. NML 캐피털은 즉시 현지 법원에 출항 금지를 신청했고, 가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아르헨티나는 군함은 주권면제의 가장 핵심적인 대상이라고 항의했지만 현지 법원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승조원 300여 명이 서아프리카 항구에 두 달 넘게 발이 묶였고, 함장은 군수품 보급이 끊긴 상태로 배를 지켰습니다. 사건은 아르헨티나 국내 정치의 뜨거운 쟁점이 되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함부르크에 있는 국제해양법재판소로 사건을 가져갔습니다. 재판소는 2012년 12월 15일, 군함은 다른 나라 항구에서도 주권면제를 누린다는 취지로 가나에 배를 즉시 풀어 줄 것을 명령했습니다. 리베르타드는 12월 19일 테마항을 떠나 2013년 1월 9일 아르헨티나 마르델플라타 항으로 돌아왔습니다. 부두에는 수만 명이 모여 배를 맞이했습니다.

돈의 관점에서 보면 이 사건으로 펀드가 받아낸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효과는 있었습니다. 나라가 빚을 갚지 않으면 해군 범선조차 외국 항구에 붙잡힐 수 있다는 장면이 전 세계 뉴스에 실렸습니다. 펀드가 진짜로 노린 승부처는 다른 곳이었고, 압류 시도는 그 승부를 압박하는 수단이었다고 보는 시각도 많습니다.

동등 대우라는 한 줄의 위력

진짜 승부는 뉴욕의 법정에서 벌어졌습니다. 아르헨티나가 부도낸 국채 상당수는 뉴욕 주의 법을 적용하고 분쟁이 생기면 뉴욕 법원에서 다투기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돈을 빌리는 나라가 신용을 얻기 위해 자국 법이 아니라 금융 중심지의 법을 따르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흔한 관행입니다. 그 계약서 안에는 파리 파수라는 라틴어 표현으로 적힌 조항이 있었습니다. 우리말로는 동등 대우 조항이라고 옮깁니다.

원래 이 조항은 채권자들의 순위를 같게 둔다는 정도의 형식적 문구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뉴욕 연방법원의 토머스 그리에사 판사는 여기서 훨씬 강한 의미를 끌어냈습니다. 아르헨티나가 교환에 응한 채권자들에게 새 채권의 이자를 지급하려면, 교환을 거부한 채권자들에게도 같은 순위로 지급해야 한다는 해석이었습니다. 자산을 압류하는 방식이 아니라, 아르헨티나가 다른 채권자에게 돈을 보내는 통로 자체를 막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해석은 항소 단계에서도 살아남았습니다. 연방 제2순회항소법원은 2012년 10월 26일과 2013년 8월 23일 판결로 하급심의 논리를 지지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미국 연방대법원에 사건을 올려 보려 했지만, 대법원은 2013년 10월 7일과 2014년 6월 16일에 각각 심리를 거부했습니다. 사실상 그리에사 판사의 명령이 최종 결론으로 확정된 것입니다.

아르헨티나 입장에서는 빠져나갈 길이 좁았습니다. 의회는 2005년 교환 당시, 교환에 응하지 않은 채권자에게 더 유리한 조건을 주는 재협상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교환에 응한 다수와의 신뢰를 지키기 위한 장치였지만, 이제는 홀드아웃과 합의하려면 국내법을 먼저 고쳐야 하는 족쇄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홀드아웃에게 전액을 주면 이미 깎아 준 다수도 같은 대우를 요구할 수 있다는 공포가 겹쳤습니다.

2014년의 이상한 부도, 그리고 15년 만의 마무리

2014년 6월, 아르헨티나는 교환에 응한 채권자들에게 줄 이자 5억 3,900만 달러를 뉴욕멜론은행에 입금했습니다. 갚을 돈을 실제로 마련해 보낸 것입니다. 그러나 법원 명령 때문에 은행은 그 돈을 채권자들에게 전달할 수 없었습니다. 돈은 계좌에 그대로 남아 있는데 받을 사람에게 가지 못하는 기이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채권 계약에는 보통 30일의 유예기간이 있습니다. 그 기간이 지난 2014년 7월 30일, 아르헨티나는 다시 채무 불이행 상태로 분류되었습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법원이 지급을 막아서 생긴 부도였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를 기술적 부도라고 불렀습니다. 국가부도의 원인이 나라의 지불 능력이 아니라 계약서 해석과 판사의 명령일 수 있다는 사실이 이때 분명해졌습니다.

국면이 바뀐 계기는 정권 교체였습니다. 2015년 말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아르헨티나는 국제 금융시장 복귀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고, 홀드아웃과의 합의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2016년 2월 말과 3월에 걸쳐 주요 펀드들과 합의가 발표되었습니다. 합의 금액은 약 46억 5,000만 달러였고, 의회는 재협상을 금지했던 법을 폐지했습니다. 4월에 아르헨티나는 국제 채권시장에서 대규모 신규 채권을 발행해 그 돈으로 합의금을 지급했고, 그리에사 판사의 지급 금지 명령도 해제되었습니다.

숫자만 보면 결말은 명확합니다. 원금을 크게 깎아 주고 일찍 합의한 다수보다, 거부하고 15년을 버틴 소수가 훨씬 많이 받았습니다. 헐값에 채권을 사 모은 펀드들은 매입가의 몇 배에 달하는 수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결말은 다음에 부도를 맞을 나라의 채권자들에게 강력한 신호였습니다. 합의하지 말고 버티는 편이 유리할 수 있다는 신호입니다.

국제 금융계는 이 구멍을 메우는 쪽으로 움직였습니다. 이후 발행되는 국채 계약서에는 집단행동조항을 넣는 것이 사실상 표준이 되었습니다. 정해진 비율 이상의 채권자가 조건 변경에 동의하면 반대한 소수도 그 결정을 따라야 한다는 조항입니다. 아르헨티나가 뉴욕 법정에서 15년 동안 치른 소송이 세계 국채 계약서의 문구를 바꿔 놓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남는 것

이 이야기에서 가장 오래 곱씹을 만한 대목은 무기의 정체입니다. 펀드들이 결국 이긴 것은 군함을 붙잡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계약서의 한 줄, 형식적인 문구로 취급되던 동등 대우 조항이었습니다. 시장은 늘 숫자와 전망을 이야기하지만, 승패를 가르는 것은 종종 아무도 안 읽는 조항 속에 숨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시간의 무게입니다. 2001년에 시작된 분쟁이 2016년에야 끝났습니다. 그 15년 동안 아르헨티나는 국제 자본시장에서 정상적으로 돈을 빌리기 어려웠고, 그 비용은 결국 그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눠 냈습니다. 부도라는 사건은 하루로 끝나지만, 그 사건이 만든 상태는 세대 단위로 이어집니다.

세 번째는 다수의 합의가 끝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채권자의 90퍼센트 이상이 동의한 결정도, 동의하지 않은 7퍼센트가 계약서와 법정을 근거로 흔들 수 있었습니다. 다수결이 아니라 계약이 지배하는 영역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경계선을 정하는 것이 결국 어느 나라 법원이라는 사실은 국제 금융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입니다.

마지막으로, 뉴스에서 어느 나라의 디폴트라는 헤드라인을 볼 때 한 가지를 함께 떠올려 볼 만합니다. 그 선언은 결말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입니다. 누가 얼마를 깎아 주고 누가 버티는지, 그 계약서가 어느 나라 법을 따르는지, 그 나라가 다시 시장으로 돌아오는 데 몇 년이 걸리는지가 그 뒤에 이어집니다. 투자자에게 필요한 감각은 헤드라인의 공포에 반응하는 능력이 아니라, 그 뒤에 무슨 절차가 남아 있는지를 가늠해 보는 습관에 가깝습니다.